죽음이 뭐가 두렵냐고 하는 사람을 가끔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얘기를 나누다 보면 실은 안 두려운 척하고 있는 것이지 실제로는 매우 두려워하고 있으며,
그 두려움으로 인한 여러 증상을, 여실히 내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진짜 죽음이 두렵지 않다면, 위대한 위인이거나 아니면 바보일 것이라고.....
범인은 죽음을 두려워해도 된다.
두려워 할 만한 것을, 두려워 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손쉬운 것이 아니다.
두려우면, 두려워해도 된다. 억지로 아닌 척, 안해도 된다.
어려움을 어렵다고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두려움을 두렵다고 인정할 때,
비로서, 사실을 사실로 볼 수 있게 되고,
그래야 왜곡되지 않고 바르고 적절하고도 효과적이게 어려움에 대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힘든 것을 아닌 척 하느라고, 그렇지 않아도 힘든데 괜히 더 고생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힘든 일을 만나서 어렵고 괴로울 때, 그럴 때 도움을 청하고 도움을 주고 받고 하는 것이 순리이고 축복인 것이다.
아쉬운 소리도 안 하고, 듣기도 싫은 성격이라면,
스스로를 '자기'라는 성에 가둬두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사랑과, 관심과, 배려를,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사람인 것이다.
짐승은 그럴 수 없다.
사람만이 그럴 수 있고, 또 그래야 사람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몸과 마음과 영혼이 교통하는 사랑은,
본능이 허락한 기간 동안만 짝짓기가 가능한 짐승과는 달리,
인간만이 항상 가능할 수 있는 것이며, 인간만이 그 언제까지 가능한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체에게는 죽음은 끝이고, 절망이고, 멸망을 의미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그리 간단하고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죽음을 생각하고 느낄 수 밖에 없는 경우, 그것이 병이거나, 암이거나, 또는 다른 어떤 어려움일지라도,
억지로 태연한 척 하느라 더 힘들이지 말고, 가까운 사람과 주위 어른과,
또는 정신과 의사 처럼 상담을 통해서 도움을 주고자 하는 사람들과,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며, 문제를 바로 보고, 바로 대하는 것이,
죽음의 두려움을 다스릴 수 있는 바른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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