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하게 나를 세상에 떨어놓은...

2003.04.15 23:18

정광설 조회 수:969

안녕하세요?

저는 벌써 서른을 넘긴 미혼 여성입니다.
대학졸업 후 직장생활을 핑계로 집을 나와 몇 년을 지냈지만 혼자서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도 만만치 않았고 어렸을 때부터 지속된 우울 혹은 신경증 때문에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친 상태였습니다. 할 수 없이 요양을 위해 일 년 전쯤 부모님 집으로 들어갔지만 하루하루 지옥과도 같았습니다.
저는 부모님을 싫어합니다. 증오하고 겁이 납니다.
그들이 나의 부모라는 것, 내가 그들의 자식이라는 것... 그 자체가 불행이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입니다.
배운 것 없고 가난에 찌들린 그들은 거의 매일같이 싸웠습니다.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욱하는 성질에 화가 나면 이성을 잃어버리는 아버지... 잠시도 사람을 편하게 내버려두지 않는 극심한 히스테리의 어머니... 특히 어머니는 그 모든 화풀이를 제게 해대며 아주 어렸을 때부터 미친년이란 말은 예사고 나가 죽으라는 말도 심심찮게 해댔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 힘든 얘기는 어린 딸을 붙잡고 할 말 안 할 말 가리지 않고 해대고 아버지가 화내는 것까지 제게 몰아붙이며 아버지 비위를 맞추고 애교를 떨 것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전 정말 방법만 있다면 아주 어렸을 때 죽어버리고 싶었습니다.
나에게 그들은 부모가 아니고 짐승같았습니다.
집이라는 자체가 내게는 지옥이었고 매일의 불안과 더러움 그리고 고통만이 존재하는 곳이었습니다.
아파도 아프다는 말을 할 수 없었고 내게 무슨 병이 있는지 알아볼 엄두조차 못 낸 채 무조건 참아야만 했습니다.
고등학교 초까지도 성적은 늘상 최상위권에 머물러있었지만 갈수록 열등감에 시달려 친구들 사이에서도 제대로 된 사람 구실을 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집을 떠나 있는 동안은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늘 허덕이고 불안했지만 그래도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것도 같고 과거의 기억들을 애써 잊어버리면 조금은 행복할 것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연고도 없이... 가족이라고는 하지만 힘이 들 때 맘편히 마음을 털어놓고 도움을 청할 존재도 없는 상황에서 절망과 고통은 커져만 갔습니다.
저는 다시 무작정 집을 나왔습니다.
집에 있는 동안 면담치료도 받았지만 별다른 방법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억눌렸던 부모를 향한 증오와 원망이 터져나오자 그들과 같은 공간에 숨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질식할 것만 같았습니다.
최소한의 경제적 도움을 받기 위해 죽도록 싫은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보아야 한다는 것도 더이상은 참기 힘들었습니다.
치료를 받는 사람이 환자이고 환자이기에 문제가 있다는 낙인으로 점점 천덕꾸러기가 신세가 되면서까지 가족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게 한심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 다시는 집에 돌아갈 생각도 없고 그렇다고 혼자서 힘겹게 생계를 꾸리며 살아갈 자신도 의지도 없습니다.
그저 마지막으로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즐기며 되는 대로 하루하루를 보낼 뿐입니다.
부모를 떠올릴 때면 욕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들이 어찌되든 말든 나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책임하게도 세상에 나를 떨어놓은 그들은 범죄자와 다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을 닮은 나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고 그들과 별다를 게 없이 흘러갈 나 또한 용서할 수 없습니다.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습니다. 다행인 건 이러한 분노와 증오가 더이상 밖으로 폭발하지 않게 그들의 곁을 떠나왔다는 겁니다.
* steelblue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4-03-13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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