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도깨비가 수호천사가 된 까닭은? @

정광설 2008.05.10 23:00 조회 수 : 657


벌써 여러해 전이다.



"야!  너 내동생 맞지? 내 동생!  안경 벗어봐!"   오랜만에 작은 누나네 집엘 갔는데, 대뜸 만나자 마자 하는 소리였다.



순간 어린시절부터 수시 때 때로, 지가 꾼 꿈 속에서 내가 속 썩였다면서, 나를 박해하던 생각이 순식간에 스쳐지나 갔지만, "이제 내 나이도 오십을 바라보는 시점에 무슨 별일이야 있겠나?" 하며, 안경을 벗고 누나를 쳐다 보았다.



"짜식, 많이 컸네!"하면서,  이 거룩한(?)  원장님 얼굴을,  나의 어부인(?)과 조카들 앞에서, 사정없이 위에서 아래로 내리 훑는 것 이었다.



"아니,  이 무슨 망발을! 거룩한 원장님 얼굴을 뭘로 보고."하니까,  씩 웃으며, "짜샤!  내가 이 세상에서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너 빼고 또 누가 있냐?"하는 것 이었다.



아들도 중학생 되더니 꿈도 못꾸게 한다는 것 이었다. 또 당한 것이다.  "한 두번 이었나  뭐."하고,  있을 수 있고,  일상적으로 있어 왔던 일이, 또 한번 일어난 것 뿐 이었다고 생각하며, 아내의 얼굴을 보니, 자기도 자기 남동생한테 하던 짓이 생각났는지 키득거리며 웃고 있었다.



4살위인 누나에게 구박 당하며 큰,  한 많은 사연이 내 피 속에 녹아 있다. 나의 불안의 원천은 작은 누나라는 귀신이었던 것이다.언제 무슨 말이, 폭탄처럼, 천둥처럼, 시도 때도 없이, 지 맘 내키면 날라올지 모르는, 그때는 그걸 뭐라고 부르는지도 몰랐던 두려움의 원천이, 바로 이 작은 누나라는 도깨비였다.



그런데,  중 1  어느 여름날 이었다.  



학교 끝나고, 원래 땀이 많았던 나는, 거의 물 빨래한 옷을 안 짜고 입은 것 같은 몰골로, 집에 들어왔다.나를 보신 엄마는 마침 먼저와 있던 작은 누나에게, "얘!  니 막둥이 동생 등목 좀 해주렴" 하시는 거였다.  



순간 "어림없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누나와 눈길이 딱  마주쳤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네"하면서, 그 귀신이 나에게 다가 오는 것 이었다. 그래서 얼떨결에 등목을 하고 났는데, "바지 걷어"하더니  발까지 닦아주는 것 이었다.



"아니 세상에 이럴 수 가!" 하고, 그뒤 몇날 며칠을 "무슨 일 안 일어나나!" 하고 불안에 떨었었다.  그런데 누나가 변한 것 이었다.  '나이 들면 철 난다'는 어른들 말씀이 증명된 것이었다.  그 뒤로 작은 누나는 나의 수호천사가 되었다.   지금까지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마다 누나와 상의했고, 물심양면으로 지금까지도 가장 큰 나의 응원군이고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다.



의대에 들어가 정신기제라는 단원을 공부하며, 어렴풋이 누나의 변화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형제 자매의 정은, '반동형성'이란 정신기제에 의해 설명이 가능하다는 이론이 있다.



나는 원천적으로 원수같은 동생일 수 밖에 없었다. 나라는 존재는,  5살이  되어 온갖 사랑을 독차지하던 누나에게는, 씰데없이 괜히 어딘가에서 나타나서 자신이 받던 사랑을, 홀라당, 몽땅 뺏어간  원수중의 원수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를 그렇게 구박했던 것이다.



그래도 누나는 양반이다.

우리 셌째 딸년은 세살 때,  동생 본지 두어 달 인가 됐을 때,지동생 이쁘다며 물고 빨고 귀여 귀여 하다가,  아무도 안 보니까,  꽉 깨물어 버리고는, 애기가 자지러지며, 죽을 듯 울어도, "모라"하고, 시침떼며 모른다고 잡아 떼다, 동생의 귀밑하고 턱밑에 지  이빨 자국이 뻘겋게 부어 오르는 바람에,  자기가 깨물은 것을  시인할 수 밖에 없었던 사건도 있었다. (그 아이도 역시, 지금은 그 깨물어 죽이고 싶었던 동생의 수호천사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지만...)



반동형성이란, 지나친 억압의 결과, 억압만 하고 있기가 너무 힘들어,  받아 들여질 수 있는 형태로, 그 미움이 변하여,  "차라리 사랑하여 고통을 면하자."며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할 때 쓰이는 정신기제를 의미한다.



미워하는 것을 그냥 버티다간, 제명에 못 죽을 것 같은 위협을 느끼면서,
바람직한 행동이나 정서의 형태로, 무의식 속에서 타협이 이루어 지는 것 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이때 중요한 것은, '안된다는 원칙에 대한 묵시적 합의'와, 이를 어길 때에는,  '혹독한 어려움'이 뒤따른 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요즘처럼 하고 싶은 대로 놔두고, 잘못을 벌하기 전에, 미리 그런 잘못을 할 수 밖에 없도록, 환경이나, 부모의 보호가 부족했음을 알아서 시인하고,  반성하며, "니가 무슨 죄가 있니!  너를 이렇게 되도록 방치한 엄마가,  이 사회가, 이 나라가,  그 놈의 법이 문제지!",  



"너 야 말로 희생자일 뿐이란다!"라는 식으로 대하면, 반동형성은 발동될 필요가  없어진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다.사회에서 받아 들일 만 한 행동양상을, 발달시킬 수 있는 기회가 없게 된다는, 원천 박탈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따라서 상황에 맞게, 그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적응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낙오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아이들을 잘 키운다고 생각하며, 우리 아이들을 그렇게 가능한한 낙오될 수 있는 후보로, 스스로 노력하고 고생하여 적응할려고 애쓸 필요를 느낄 줄 모르는, 낙오 후보자를 열심히 양산하고 있는 것이란 염려를 지울 수가 없다.



이것이 이 시대가 갖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청소년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들을 볼 때 마다 절실하게 느껴진다.



괜히 어른의 기분에 따라서, 일관성 없이, 무원칙하게 아이를 야단치는 것이 문제이지, 아이를 야단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성경에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해 채찍이 있나니"라는 말씀이 있다. 아이를 혼 내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혼나야 할 때 혼 내고, 칭찬들을 만 할 때 칭찬 하는 것이, 일관된 흐름 하에 이루어 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인 것이다.



작은 누나의 고마움이 떠오를 때 마다, 그런 원칙을 갖고 자녀를 훈육하고, 양육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나는 과연,  나의 자녀들이, 훗날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부모가 되어가고 있기는 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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