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만!"하고 소년은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정광설 2008.05.13 09:09 조회 수 : 652


  소년은 산길을 부지런히 가고 있었다. 겁이 좀 나기는 했지만, "귀신 도깨비가 어딨
어!"하고 중얼 거리며 마지막 산등성을 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나 좀 구해주세요!"하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등골이 쭈
뼛해지며 다리가 후들거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평소 담이 세기로 유명했던 소년은 배
에 힘을 빡 주면서 오히려 큰소리로, "누구냐?"하고 외쳤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 좀 구해 주세요!"하는 소리가 발 밑에서 들리는 것이 아닌가.
가만히 발을 멈추고 아래를 내려다 보니 무슨 병 뚜껑 같은것이 조금 삐져나와 있었다.
뭔가하고 발로 툭 처보니, "네 맞아요! 나 좀 구해 주세요!"하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이었다.

  궁금해진 소년은 언제 무서워서 후들후들 떨었냐는 듯, 쪼그리고 앉아 딴딴한 흙을
파서 요상하게 생긴 병을 꺼내었다. 아니 이게 무슨일인가?  병 속에는 앙증맞게 생긴
아기 도깨비가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치고 있는 것이었다.


  "나 좀 구해주세요!"

  "너 였니?"

  "녜!",  "빨리 구해주세요."  

  "아니 쬐끄만 것이 어떻게 거기 들어가 땅 속에 처박혀 있었니?"

  "그건 나가면 말씀드릴께요.  빨리 꺼내주세요."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데."

  "뚜껑에 붙어있는 종이만 떼면 되요."


  보니까 병뚜껑이 단단히 종이로 막혀 있었다. 종이를 잡아 뽑으니 별로 힘들지 않게
쑥 빠지는 것이었다.

  아니 그런데 갑자기 눈 앞이 깜깜해지더니, 느닷없이 "우 핫 핫 핫하"하는 천둥소리
같은 웃음소리와 함께, 몸이 번쩍 하늘로 뭔가에 의해 들려 올라가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눈을 감았다 뜨니, 산만한 도깨비가 입 앞에 자기를 들어 올리고는 막 먹으
려는 판 이었다.


  "잠깐만!"하고 온 힘을 다하여 소리친 소년은, 정신을 가다듬으며,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날 구멍이 생긴다!"는 말씀을 생각하며 도깨비를 쳐다 보았다.

  "아니 아무리 인간이 아닌 도깨비라지만, 생명을 구해준 은인에게 이 무슨 짓이요?"
하고, 떨리는걸 참고 겨우 얘기하니, 도깨비가 잠시 소년을 삼키려던 행동을 멈추고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도깨비의 사연은 이러했다.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자기가 벌을 받아 병 속에 담겨
져 땅에 묻혔을 때, 처음에는 "나를 구해주는 사람에겐 무슨 소원이든지 다 들어주리
라!"하고 기다렸는데,

  시간이 가고, 또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도, 아무도 자기의 외치는 소리를 아랑
곳 하지 않고, 구해주지 않아, 언젠가 부터는, "이제는 누구든지 구해주면 확 잡아 먹어
버리고 말리라!"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기다릴 때는 안 구해주고, 좋은 세월 다 간 지금에야 구해주는게 약 올라서 확 잡아
먹어 버리기로 결심 했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곤 "이제 됐지?"하고 입으로 소년을 집어
넣으려는 것이었다.


  "잠깐만ㅡ!" 소년은 아까보다 더 크게 소리를 지르곤, "좋다. 도깨비가 날 잡아 먹는
다는데 내가 어떻게, 무슨 수로 빠져나갈 수 있겠냐? 그러나 죽을 때 죽더라도 궁금한
건 못참겠다. 너는 지독한 거짓말쟁이 도깨비다."라고 외치니,

  도깨비가 막 소년을 깨물려다 말고, 눈 앞으로 소년을 들어 올려 보며 말하는 것이었다.

  "이제 곧 죽을 놈이 뭐가 궁금해?"라면서, 원래 궁금증을 못참는 도깨비의 근성이
발동이 되어 묻는 것이었다.

  "다 좋다. 그런데 이렇게 큰 당신이 저 조그마한 병에서 나왔다는 거짓말은, 내가 죽
는 한이 있어도 절대로 못믿겠다."고 하니,

  도깨비는 답답해 죽겠다는 듯이, "그러니까 도깨비지, 이 바보야! 그럼 어떻게 하면
니 궁금증이 풀릴 수 있겠니?"하는 것이었다.

  소년은 더욱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당신이 저 병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기
전에는 절대로 믿지 못하겠다." 하니,

  도깨비는, "이런 바보같으니, 도깨비의 능력을  뭘로 보는 것이야!" 하고 갖잖타는
표정을 지으며, "자 잘 봐라. 한 번 뿐이다."하면서 검은 연기로 변하여 병 속으로 빨려
들어 가는 것이었다.


  "이때다!"하고, 소년은 옆에 떨어져 있던 종이마게를 집어서 후딱 병 뚜껑을 꽉 꽉
있는 힘껏 틀어막았다. 그리고는 크게 숨을 한 번 내 쉬고는 병을 들어 병속에 든 도깨
비에게 말하였다.

  "도깨비님! 신경질 고만 내시게, 도로 땅에 묻어 드릴께요."하고 병을 아까 그 위치에
묻으려고 하니, 도깨비가 그때서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파악하고 통사정을
하는 것이었다.

  "아이고 소년님, 아까는 너무나 오랬동안 혹시나 하면, 역시나 안 구해주고, 그래서
홧김에 그랬던거구, 정말 잘못했으니 제발 구해주세요! 그 은혜는 절대로 잊지않겠습
니다."하고 사정 사정하는 것이었다.

  원래 착하고 남을 잘 믿는 성격의 소년은, 도깨비가 울며 사정하는 것이 불쌍하기도
하고, 또 진정으로 반성하는 것 같아서 약속을 단단히 하고 풀어 주었더니, 도깨비가
진짜로 은혜를 갚아서 잘 살았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어려서 작은 형에게 들은 옛날얘기가, 진료를 하다 보면 문득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이 소년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바로 이 도깨비처럼 그렇게 바라던 상황이 왔는데도,
"왜 이제서야 오는 거야! 그동안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이제와서 뭘 어쩌라는 말이
야!  다 필요없어!"하면서, 찾아온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고, 오히려 그럴 수
있는 것을 진작 안했다고 원망하며, 상대방의 변화도 반성도 뭉개버려서, 도깨비가 땅
속에 도로 묻히는 것 같은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특히 남편이 나이 먹어 좀 조심하며, 아내 비위를 맞추려 할 때, "너도 맛 좀 봐라!"하
면서, 이제는 아내가 판을 깨는 행위를 과거에 대한 앙가픔으로 하는 경우를 볼 때 마다,
문득 문득 이 옛날 얘기가 생각이 나곤 한다.


세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도깨비의 마음이다.  
                    이제라도 구원 받은 것을 감사히 여기며, 이제 이후로 행복할 생각을
                    할 것인지, 아니면 약 올른 생각에 구해준 사람 잡아먹으려 들 듯 상황
                    을 악화시킬 것이냐 이다.

          또 하나는 슬기롭고 착한 소년처럼,
                    상황을 바로 인식하고, 그 상황에 가장 적절한 행동을 보일 것이냐 하는
                    것이다.

          나머지 한가지는,
                    대인관계에 있어서, 내 행동이 얼마나 적절한 때에, 적절하게 작동하느
                    냐의 문제이다.


  원할 때 척하고 반응이 나오는 것은 백점이고, 조금 미리 알아서 반 박자 빨리하면
120점이 되지만, 반박자 늦게 하면, "이제하면 뭐해!"라든지, "이렇게 할 수 있는 걸
왜 이제까진 안했어" 소리 들으며 야단맞거나, 심하면 싫컷 하고서도 뚜드려 맞거나,
사회에선 냉정한 거절과, 실패와 좌절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이제라도 했잖아!"하고, 성난 사람 앞에서 주장하고 변명하는 것은, 자칫 그야말로
매를 버는 어리석은 행위가 되고 마는 것이다.

  똑같은 일도, 반박자 빠른 것과, 반박자 느린 것은, 단지 한 박자의 차이가 난 것이
아니라, 성공과 실패, 승리와 좌절, 절벽 이쪽과 절벽 바깥쪽, 하늘과 땅의 차이를 갖고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인간관계에 있어서, 반 박자 모자람으로 인한 좌절과 실패를 겪지 않기 위해
서는, 상대에 대한 관심을 제대로 갖고, 그리고 항상 갖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다.

  내가 필요할 때 비로서 상대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필요할 때 작동
가능하도록 항시 관심을, 헛다리 집는 것이 아닌, 상대가 꼭 필요한 것에 대한 관심을
바로 갖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항시 관심은 반박자 빨리 반응하고, 부정적, 충동적, 공격적 반응은 반박자 늦출 수
있다면, 대인관계가 보다 매끄럽고, 성공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ㄱㄷㅈ0ㅊ


작성자 : 우보  at 2008-09-25 12:44 Mod.  Del.
재밌어요






심정임 "Now and Here!" 이제라도 구원 받은 시점을 감사해야 되지요. 이론은 아는데 그 말이 실제 상황에서 무슨 의미인가를 모르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08.09.25 12:34
답글
정태성 항시 관심은 반박자 빨리 , 부정벅 반응은 반박자 늦게 ... 금강석 처럼 반짝 빛나는 금일의 금언 입니다. 08.09.25 13:50
답글
이영호 정광설 선배님..번뜩이는 글입니다..퍼갈께요.^^. 08.09.25 14:06
답글
전병구 정광설 선배님 옛날 대학시절의 추억이 생각납니다. 5회입니다. 충청남도 공주의료원장입니다. 극동방송 잘듣고 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샬롬~ 08.09.25 15:28
답글
이중화 맞아요, 맞아요. 우리 마눌이 이거 읽어야 하는데... 정말 소중한 사람은 떠났을 때 알게되죠. "너도 마찬가지야 이눔아" "니 마누라한테나 잘해!" 깨개갱~~~~~~~~~~~~~ 토껴라~ 08.09.26 09:53
답글




월리 재밌어요. 오랜만에 동화책 읽는 기분이에요. 교훈도 있고.. ^^ 08.09.26  |  가시고기 Good 입니다용 ^9^ 08.09.25  |  마트짱 탱큐 좋은글 감사 ㅋ ㅋ ㅋ 08.09.25  |  아로미 신뢰나 맘의 풀어짐은 쉽게 되는건 아닌듯합니다.강요해서도 안되구요 08.09.25  |  아로미 원래 때린사람은 잘 생각나지않지만 맞은 사람은 평생 생각나죠.그래서 그 한풀이를 하는건가봅니다.저같은경우 때리고 간 사람이 저에게 와서 잘하겠다고 하면 경계심부터 들지 평화로운 맘은 도저히 안 생기더근요 08.09.25  |  o미르o 조미료가 덕지덕지 들어가지 않은 천연재료로 양념된글 맛있게 먹고갑니다! 08.09.25  |  별 항상 좋은글과 좋은 댓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행복하세요~~정말 감사드려요^^ 08.09.25  |  진이 좋을글 잘읽고 갑니다. 08.09.25  |  

1  

          


서울총무
2008-09-25 09:28 고맙게 잘읽었네  








댓글 0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잠깐만!"하고 소년은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정광설 2008.05.13 652
133 "나는 당신을 너무 사랑하는 것 같아요! 당신하고 결혼하고 싶은 것 같아요!" 정광설 2008.05.12 751
132 "그런다고 내가 행복해 질 줄 알고?" 정광설 2008.05.11 651
131 귀신 도깨비가 수호천사가 된 까닭은? @ 정광설 2008.05.10 657
130 "우리 아들 죽을까봐 그랬어!" 정광설 2008.05.10 2098
129 여인은 두리번 거리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광설 2008.05.10 705
128 아내는 여자인가? 정광설 2008.05.09 638
127 남편의 어리광! 아내의 어린냥! 정광설 2008.05.09 1330
126 누가 먼저 할 것인가? 정광설 2008.05.09 551
125 바람직한 부부이기 위한 노력(3) ; 자식에게 보다는 꾸준히! 정광설 2008.05.08 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