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폭탄!!!

정광설 2008.05.14 09:05 조회 수 : 559



  요즘 컬럼을 열심히 쓰면서도, 내가 지금 글을 제대로 쓰고 있기나 한 것인지, 내가
의도하는 뜻이 제대로 전달되고 있기는 한 것인지, 영 쫄밋거려 어떨 때는 글이 꽉 막
히면서, 그럴 때 마다 떠오르는 말이 있다.

  대학만 가면, 그곳 상아탑 안에는 낭만의 세계가 펼쳐져 있고, 고등학교 생활의 지긋
지긋한, 책상머리에 앉아 있어야만 되는, 엉덩이의 끊이지 않는 종기로 부터 해방될 줄
알았는데,

  막상 대학이라고 들어와 보니, 하루 8시간 수업에 두 반으로 나누어 출석 부르고, 어
쩌다 휴강이라도 있을라치면 정성을 다해 보강을 해주시는 사랑인지 학대(?)인지가
넘치는 교수님들의 등쌀에, 대학생활에 대해 품었던 파란 꿈은 송두리채 어디론가 날
라가 버리고 말았다. (완벽한 고등학교 4학년이었다!)


  몇몇 친구들과 이러한 고등학교 4학년의 갈등을 승화시키고자 봉사써클을 조직하여,
열심을 다해 부모님과 형님의 "의대생(아직은 의대생이 아니라 의예과생인데)이 공부
는 안하고, 어딜 그렇게 씨잘데없이 쏘다니냐?"는 박해(?)를 극복하며,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써클 발족 첫 해를 활발하게 잘 지내고, 활동의 일환으로 회지를 발간하자는 의견이
나와, 1호 회지를 발간하게 되었다. 자칭 등사 전문가임을 외치며 온 얼굴에 검은 잉크
를 칠하면서 몇날 며칠의 피나는고생 끝에, 드디어 지게들(써클 이름을, 세상의 어려움
과, 우리 자신들의 모든 문제를, 각자가 등에 지자는 의미로, '지게들'이라고 명했었다.)
1호 회지가 발간 되었다.

  감개무량하여, 비록 삐뚤 빼뚤하게 쓴 글씨지만(철필로 써서 지렁이가 "성님"할만
했음), 그래도 내용은, "그거 누가 썼는지 참 감동적이구나!" 하면서, 내가 쓴 서간문인
"보고 싶은 학기 형!"을 읽고 있었다.


  1967년 어느날 새벽, 전학년이 동원되어 대전역으로 월남 파병 군인들 환송 나갔을
때, 눈이 마주친 어떤 병사가 휙 던져준 종이에 쓰여 있던 부대주소로, 그 뒤 2년여 동
안 중간 중간 전투가 없을 때면 편지를 주고 받으며 펜팔하다가, 제대가 이제 한달 정도
남았다며, 귀국하는 대로 만나자는 내용과 함께 헬기에 비스듬이 걸터 앉은 사진을 보
내주고는 소식이 끊긴, 그 군인 형이 궁금하고 그리워서 쓴 편지를 회지에 원고로 냈었
던 것이었다.

  마지막 편지 받을 즈음 형의 부대 근처에서 대단위 전투가 있었다는 뉴스가 있었던
터라, 혹여나 잘못됐을까봐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쓴 글 이었다.


  짤막한 두 페이지의 글 이지만, "짜식 괞찮게 썼는데!"하며 혼자 흐뭇해 씩 웃고 있는
데, 청천하늘에 날벼락이 '말 폭탄'의 형태를 띠고 느닷없이 나에게 떨어지는 일이 벌
어졌다.

  "야!  너 이거 뭐 쓴거냐? 야 이걸 편지 글 이라고 썼냐?"하더니, "쓸려면 나 정도는
써야지!"하고 공격하는 전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담배 예찬에 관해 글을 썼던 것
으로 기억된다. 대학생 돼서, 그리도 동경(?)하던 담배를 맘대로 필 수 있게 되고, 스트
레스 받을 때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을 수 있는 것이 그렇게도 좋았던지, 담배가 좋아도
너무 좋다는 내용의 글이었던 것 같았다.

  암만 생각해봐도 내가 더 그럴듯하게 쓴 것 같은데, 그 친구는 나에게, 글쓰는 기본이
안되어 있다고 일장 연설을 하는 것이었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직격탄을 머리 꼭대기에 정통으로 맞은 느낌이었다.

  사실 나에겐 남 모르는 자신감이 있었다. 내가 중2였을 때 베스트 쎌러 소설 쓴다면서,
동네를(그랬어야 우리집 담을 넘지는 못했지만) 떠들썩 하게 하며, 글 몇 페이지 쓰고는,
"싸랑하는 동생아! 형(우리 큰 형은 울엄마의 전폭적인 응원과 지원 하에, 하던 공부
거의 때려치다 싶이하고 소설쓰기에 매진 중 이었다.)이 쓴 소설 읽어 줄께"하고, 친절
하게(안 들으면 무슨 일 날 것 같은 위기감이 나에게는 있었지만...), 내 사정은 아랑곳
하지 않고, 여기는 왜 이렇게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 등, 도통 못알아 듣겠는 말
로, '특별 소설 쓰기 수업'을 받은 바가 있어서, 지겨워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전염되어,
나도 소설쓴다고 학교가는 새벽길의 아름다움을 글로 옮기느라, 중간고사를 몇번 왕창
조진 전력이 있는, 전직 소설가 지망생(?)의 경력 소유자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그만 그 친구는, 그런 나의 마음을 알고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 하옇튼 단 한 방의
말 폭탄으로 완벽하게 나의 얄팍한 자부심을 초토화 시켰던 것이다. 그리고는 글쓰는
일과는 거리가 멀어도 아주 먼, 글 쓰기에 학을 뗀 사람으로 지내왔던 것이었다.


  그 뒤로 40여년이 흘러, "이제는 내 삶의 마지막 고지가 저기 눈 앞에 보이는데, 까짓
거 한 방 더 맞으면 맞으라지!"하는 막가는(?) 심정으로 요즈음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매번 컬럼을 쓸 때 마다, 그 친구의 "이것도 편지 글이라고 쓴거냐?"
라는 우정어린 충고(?)가 떠올라 자꾸 기가 죽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 말 폭탄을 맞고 30년쯤 지났을 때, 그 친구에게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 내가 어딘
가에 쓴 글을 칭찬하길래 나도 물어볼 용기가 났던 것이었다.

  "야 너 지게들 1호 회지 때, 내 글보고 왜 그렇게 혹평을 했었니?"하고 물으니, "내가
뭘?"하더니,  "아 그 무슨 형...하고 시작했던거?" 하면서 기억을 살려내더니, "그때 너
글 참 잘 썼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내가 왜 혹평을 했겠니? 지금도 니 글 기억하는
거 보면 알잖아?"하는 것이었다.

  부러움 반, 장난 반으로 한 말을 순진한 나는 진짜로 하는 말인 줄로만 알아듣고, 그
뒤로 30여년을 혹여나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 때 마다, "내가 뭘 써, 쓰기는..."하고
지내왔던 것이었다.

  그리고, "정신과 의사로서 겪고 경험한 현장의 이야기를, 깨달음을 글로 써서 남겨야
할텐데...", "어떻게 해서든지 글을 쓰고야 말아야지!"를 꿈 속에서 까지 외치며, 몸부
림(?)치며, 지난 10여년의 투쟁 끝에, "이젠 나이도 좀 먹었겠다, 까짓거 얼굴에 철판
깔지 뭐!"하고 마음을 독하게 먹고, 요즈음 겨우 조금씩 조금씩 글을 쓰게된 것이었다.


  아이의, 무심코 던진 돌에 맞은 개구리는 사경을 헤맨다지 않던가? 무심코 하는 말  
한 마디가 말 폭탄이 되어, 상대의, 특히 크는 아이들의 무언가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
을, 그 싹은 물론 뿌리까지 단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음을 생각하며, 말을 조심하는
것이 대인관계의 첫걸음이고, 언제까지나 가장 중요한 덕목이란 생각을 되새기며,
나의 말 버릇을 다시 한 번 되돌아 본다.


  말로 벌어먹는(?) 직업인데, 나도 미쳐 제대로 신경쓰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새 말
폭탄의 발칸포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는 마음으로 나를 되돌아 본다!




















@#$*+0ㄷㅈㄱ


정일영 맞아요. 말 한마디가 사람의 운명을 바꾸기도 하지요. 그야말로 폭탄입니다.  2008.08.12


꿈돌이    2008년08월11일(22:41)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작성자 : **의  at 2008-08-12 09:42 Mod.  Del.
그런 깊은 뿌리가 있었습니다.

어리고 젊은 시절의 경험은, 긍정적이든, 부정적 이든
자신도 모르게 자라고 자라
훗날 무성한 잎과 열매를 맺는 것을 매일 진료실 일상에서 봅니다.

일상과 진료실이 다르기도 하지만
진료실에서 만큼은
듣는 말에는 '상'이 없어야 하고
하는 말에는 '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료실에서 하는 말은
무의식적 존재의 '삼세'에 강력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완두콩- 영감탱이님 글 읽어보니 진짜 솔내음같은 향기가 느껴지네요^^ 마음이 여유로워집니다. 그래서 그런데 이메일 주소도 기재해주세요^^ 08.08.12  |   영감탱이 실은 컴맹 겨우 면한 수준이라 아직 이메일 한번도 안써봤구요, 들어갈 줄도 모르거든요! 그냥 댓글로 주시면 정성껏 답변 드릴께요. 감사합니다. 08.08.12  |  동네김씨 '- 영감탱이 선생님 글 잘읽고 있습니다..... 참 순박한것 같은 글냄새에서 느껴짐,,, 나만그런가! 참!!! 얼굴도 귀여울것 같아요,,,,, 글 좋아요 꾸밈없고 쫀쫀하고,,,,뭐 부탁이 있다면 행간은 좀 붙여주세요,,,없는집 고추널어놓은것 같아요,,, 귀여운!!! 영감탱이선생님!!! 08.08.12  |   jd 비유법 잘 하시는 분들 무지 부럽던데 "없는 집 고추 널어 놓은 느낌 ", 재밌네요 08.08.12  |   영감탱이 정곡입니다.실제 없는 집 널어놓은 고추입니다.말씀대로 좀 있는 집 돼서, 충분해 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08.08.12  |  영불식악목음 -_-그런 대학도




        

仁山김형중
2008-08-12 08:04 이런 글을 쓸 수있는 능력도 대단허이~~~
이순이 가까워 오는 나이인데, 등단을 해보는것도 괜찮지 싶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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