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때 일이다. 드디어 고3이 되어 마지막 종착역을 향해 라스트를 뽑아야 할 때가
왔다는 각오로, 평소에는  겨우 지각 면할 정도로 학교에 가던 내가, 오지게 결심을
하고 새벽같이 일어나 6시 쯤 집을 나서게 되었다.

  안그래도 2교시 끝나면서 부터 도시락을 한 숟갈 두 숟갈 씩 몰래 먹다가 정작 점심
시간에는 먹을 밥이 없어서 도시락 뚜껑에 한 숟갈씩 돌아다니며 동냥(?)으로 연명하
던 시절인데, 아침은 꼭 챙겨 먹어야 했었다.

  아들의 비장한 결심을 보고 받고 엄마는 고개를 갸우뚱 하시더니, 일단 며칠 해보자
하시곤 새벽밥을 해주셨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하루는 나를 부르시더니 "너 땜에 일찍 일어나는 바람에 내 생활
리듬이 깨져서 낮에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문제다. 아침에는 밤에 밥 차려서 부뚜막에
올려 놓고 담뇨 덮어놓을테니 찿아 먹고 가라. 대신 저녁밥은 별 일 없으면 학교로 가
져다 주마, 어떠냐?"하시는 것이었다.

  낮에 많은 활동을 하시는 어머니셨기에 충분히 말씀이 이해가 되었고, 당연히 그래야
겠다고 생각하고, 그러겠다고 말씀드리니까 한마디를 더 하시는 것이었다.

  "내가 요즘 예민해서 작은 소리에도 잠이 깨고, 한 번 잠이 깨면 다시 잠들기 어려워
고생이니, 아침 먹을 때 딸그락거리는 소리 나지 않게 조심해라."하시는 것이었다.

  "넵!"하고 그 다음날 부터는 그렇게 했다. 행결 마음이 편했다. 엄마를 돕는 의미에서
이기도 했지만, 다소 농땡이를 부려도 될 것 같은 마음에 상당히 안정감이 들었었다.


  저녁 6시경, 아버지와 두분이 자전거 뒷자리에 쟁반에 저녁을 담아 오시면, 농구장
스탠드에 앉아 부모님 보시는 데서 한그릇 떨거덕하고 먹고 나면 물을 꼭 챙겨 먹게 하
시곤 하였다.

  전교에서 부모님이 학교로 저녁 배달하는 놈(?)은 나 하나 밖에 없었다. 덕분에 소문
이 나서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기도 했다. 나도 속으로, "나는 아침  혼자 먹고 온단 말
야."하며 넘어가곤 했었다.(전교에서 아침 못 얻어먹고, 혼자서 숨죽여 먹고오는 분(?)
도 나 하나였던 것이었다.)


  수험생 부모님 들과 상담할 때면, 아이가 안들어와, 1시, 2시 까지 못잔다느니, 아이
공부하는 책상 옆에서 애가 졸릴까봐, 나도 뜨게질하느라 잠을 못자서 정신없다는 식
의 말을 들으면서, 어머님이 담담하고 당당한 어조로 수험생인 아들에게, "밥 알아서
차려먹고 가서, 니 공부 니가 알아서 해라!"하시며,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이 어떤 것 인가를 가르쳐 주신 것과, 자신의 일을 스스로 알아서 처리했을 때 느낄 수
있는 뿌듯함 등, 여러가지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경험하곤 한다.

  아마 우리 엄마라면 당장 열쇠 새로 만들어서, "엄마는 시간 되면 잘테니까 조용히
딸그락거리지 말고 들어와, 준비해논 간식 적당히 먹고, 공부는 더 하든지 말든지 니가
알아서 해라."하고 주무셨을 것 같다.

  한 마디 더 하셨을 것이다. "딸그락거려 엄마 잠깨면 다음 날 힘 드니까, 너 조심해
라."하고...


  대학에 붙고 좋아서 말씀드릴 때 흐뭇해 하시며, "니가 알아서 너의 앞길을 잘 헤쳐
나가는 모습이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말씀하시며, 나의 노고를 치하해 주시던 엄마의
모습이 새삼 떠오른다.

  엄마가 아들을 대학에 들여 보낸 것이 아니라, 엄마는 최선을 다해 돕고, 대학은 아들
이 알아서 노력해서 들어간 것이다.

  "대학 알아서 들어가는 것 보니 이제 다 키웠구나 싶고, 어디 내놔도 지 앞가림 할 수
있을 것을 믿을 수 있겠고, 그야말로 이젠 보물섬도 찿아갈 수 있겠구나!" 하시며, 나를
인정해 주시던, 어머님의 아들에 대한 무한한 신뢰의 표현이 나의 자존심을 얼마나많이
고취시켰었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엄마가 다 알아서 해줄테니 너는 딴 짓 말고 공부만 해라."하다가, "엄마가 그때 너
를 더 열심히 깨웠어야 하는데, 엄마가 더 모질게 깨우지 못해서, 니가 공부를 더 못하
게 되어 대학에 떨어졌으니 엄마가 미안하구나!"라는 어머니를 보고, "엄마가 그때 왜
때려서라도 안 깨웠어."하며, 엄마를 맘놓고 원망하는 자녀들을 볼 때, 울 엄마 생각이
다시금 떠오르게 된다.


  어디까지 해야 되는 것인가?

  자식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내 불안을 떨치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내 맘에 드는 작품으로, 상품으로 사육하기 위해선가?


  아이가 성공하면 누가 제일 기뻐할까?

  아이가 실패하면 누가 제일 힘들어 할까?

  누구 인생인가?


  자식들이 자신들의 삶을,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스스로 일구어 가는 모습을 안타까움
을 참으며 지켜봐야 하는 것이 부모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는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된다. 
































@#*+0ㄱㄷㅅ
맨날청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많은 걸 느끼게 해준 글이었어요. 이 글을 읽으면서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08.08.06  |  라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 이군요.. 08.08.06  |  천사들의 어무이 반성합니다..나는 과연..우리 아이들을 너무 내의지대로 좌지우지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과연 아이들은 나없이도 이 여름방학을 지혜롭게 잘 보낼 수 있을까? 다시한번 심각하게 고민하게 하는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08.08.06  |  이명박 자랑글이시군요 ㅋㅋㅋ 08.08.06  |   돈독 자랑글 맞습니다...어머니 자랑글.....댓글보고 순간 정말 쥐새낀줄 알았습니다...물론 그분은 이너넷을 못하시지만요... 08.08.06  |   이명박 우리나라 상황에서 대다수가 그러는 건 ... (그들을 모두 변화시킬 대안을 제시해주세요... 그래야 찬성을 누르겠습니다... 반대 누른 1人) 08.08.06  |  밤비 자기스스로 알아서 공부하고 대학가고 자립적으로 성공하는사람은 바로 저런 어머니가 후광에 계시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자신의인격을 당당히 지키시는분으로 정말 이상적이다. 그러면서도 저녁엔 밥을 학교로 갖고오시는 ,그것도 별일이 없을경우에..ㅎㅎ자식에 대한 깊은 사랑은 여느 부모와 같으면서도 .이성을갖고 자식을 대할수있는 위의어머니방식이 정말 현명하시고 멋지다.분명 저런 어머니는 집에서 독서도 많이하실것이다. 08.08.06  |  신창훈 반성하게 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08.08.05  |  sniff 진짜 지금 생각하면 요즘 중고생 자녀를 둔 어머니들은 10여년전의 어머니들에 비하면 상당히 편해졌다는.....7시 30분에 등교해야 하는데...늦어도 6시엔 일어나서 정성껏 도시락을 만들고 아침밥까지 챙겨주시고 출근하시던 어머니, 주말에도 도서관가서 공부한답시고 농땡이만 부리던 아들을 위해 다시금 도시락을 챙겨주시는 수고를 마다 않으시던 우리 어머니....꼭 효도 할게요 ㅠㅜ 08.08.05  |  마우스 지금 이글을 쓰신 주인공분이 성공을 하셨으니 다행이고 그 어머니의 태도가 옳으시다고 하는거지, 바꿔서 그 아들이 잘못되서 그저그렇고 그런 인생을 살고있다면...아마도 그어머니를 비난하게 될겁니다. 자기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분이라고...자식교육에 있어선 정도가 없다고 봅니다. 어떤 경우에든 본인(자식)이 하기나름이죠. 08.08.05  |  마우스 지금 이글을 쓰신 주인공분이 성공을 하셨으니 다행이고 그 어머니의 태도가 옳으시다고 하는거지, 바꿔서 그 아들이 잘못되서 그저그렇고 그런 인생을 살고있다면...아마도 그어머니를 비난하게 될겁니다. 자기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분이라고...자식교육에 있어선 정도가 없다고 봅니다. 어떤 경우에든 본인(자식)이 하기나름이죠. 08.08.05  |   산울림 동감~ 08.08.05  |   간이역 동의 못함 자식교육에 정도는 없지만 글쓴이의 어머님 교육방식이 참 현명한 방식이라고 생각된다. 부모도 사람이다. 무조건 사랑으로 자식 교육 망치는 부모가 되지말기를 바란다. 08.08.06  |   Consequences 맞아요. 부모님도 자식들 대학보내려고 부모님 된거 아니고 자식들 뒷치닥거리하다 인생 끝내려고 태어나신거 아니잖아요? 부모님들도 자신을 위해 살 자격이 충분히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만 즐기자고 자식을 내팽겨 쳐도 안되겠지만 과다한 사랑으로 자식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아무런 결정도 못내리는 바보로 만들어서도 안되겠지요. 여러모로 참 훌륭한 어머님을 두셨네요. 아울러 엄마의 교육지침에 묵묵히 따라준 아버지도 참 좋으신 분인것 같습니다. 08.08.06  |  우엥 GOOD!!!!!!!!!!!!!!!!!!!!!!!!!!!!!!!!!!!!!!!!!!!!!!!!!!!!!!!!!!!!!!!!!!!!!!!!!!!!!!!!!!!!!!!!!!!!!!!!!!!!!!!!!!!!!!!!!!!!!!!!!!!!! 08.08.05  |  쪼이 우와~ 정말 좋은 글입니다~ㅣ 08.08.05  |  아가딜 정말 배우고 싶은 엄마의 당당함 존경합니다 저 오늘부터 당장 해 볼랍니다 08.08.05  |  무적 가슴에 와닿는 글이네요...스스로 일어서게 만들어 주는게 부모 역활인거 같아요..대신 살아줄수 없듯이... 08.08.05  |  야니하니 참으로 멋진 어머니셨군요. 저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보면 요즘엔 과보호를 넘어서 아이들의 모든 생활을 부모의 손바닥안에 두고싶어 하나 봅니다. 하지만 그것은 애완용 강아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도 누구랑 결혼해야 할지, 직장은 어디로 선택해야 할지, 아파트는 어디로....결국 나이먹어도 나이값 못하는 반 송장상태로 양육한다는 것을 모릅니다. 다시금 자녀의 양육에 신경을 써야 겠습니다. 08.08.05  |  gurung 찔리는 구석이 있네요... 08.08.05  |  



작성자 : 슬픈의  at 2008-08-05 12:06 Mod.  Del.
자식 상전모시는 우리집, 마눌 찌개 끓이면 내쪽이 아닌 애들 쪽에 놓습니다. 내 팔이 길으니까 했지만 한 두번이지 이게 뭡니까?
어젠 그깐 찌개 안먹는다. 손도 안내고
김치에 마른 반찬 밥먹고
속쓰려 죽는 줄 알았습니다.  


작성자 : 감사.  at 2008-08-05 12:06 Mod.  Del.
마눌아에게 꼭 읽히고 싶네요.


작성자 : 골퍼  at 2008-08-05 12:06 Mod.  Del.
좋은 글...고맙습니다.


작성자 : 감사  at 2008-08-05 16:13 Mod.  Del.
공감하는 글 감사합니다



외로운윤홍중
2008-08-05 11:22 난 고1때부터 아니 16살부터 지금까지 객지생활이라 모든걸 내 스스로 해서 산게 벌써 40년이 넘었는디 거기다가 내 망했다고 마누라가 애들 버리고 도망갔으니 나혼자 아침에 일어나면 쑥절편5입하고 사과 1개와 알도마토 20개쯤 먹고 똥싸고 샤와하고 한시간 걸어서 회사에 출근하니 나의 엄마 아빠가 돌아가실때도 눈물한방울 안 흘린 후라들 놈이 되었지만 부모님과 같이 산 광설이가 부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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