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다! 이걸로 신혼여행가서 저녁 값 하려무나!"

정광설 2008.07.08 10:53 조회 수 : 454



  손주는 깜짝 놀라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짜기로 유명한 할아버지께서 금일봉을
하사하신 것 이었다.  30만원 이었다.

  그리고는 말씀이, "내가 아무래도 니 결혼까지는 못살 것 같은데, 이 돈이 많은 것
은 아니지만, 결혼하면 신혼여행 가서 니 처하고 저녁 먹을 때 쓰려무나. 손주 며느
리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구나. 할아버지가 축복하고 죽었노라고 전해다오. 행복
하게 살아야 한다."하시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평생을 가난한 목사님으로 사셔서, 돈하고는 거리가 먼 분이셨다. 손
주는 놀랍기도, 감격스럽기도 하여 아버지에게 달려가서 이 사실을 고하였다. 아들
은, 아들의 말을 들으면서, 아버님의 아들에 대한 축복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어려서 부터 가정조사서에 항상 동산;0, 부동산;0, 이라고 적어 내면서도, 그런 것
이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살아왔던 아들은, 아버님의 축하금은 다른 돈있는 사
람들의 천만금보다 큰 돈이고, 그만큼 큰 축복의 마음이신 것을 알겠기에, 손주에 대
한 사랑과 손주 며느리에 대한 그리움이 더없이 크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진짜 아버님이 한 번 통크게 쓰신 것이다.


  아마 1960년대 초였을꺼다. 서울서 대전까지 기차가 연착 안했을 때, 5시간 정도
걸리던 시절이었다. 하루는 아버지하고 서울서 기차타고 대전으로 내려오는데, 물론
평소에도 그 5시간 동안 간식은 없는 것이 정상이었지만, 그날따라 왜 그리도 "오징
어나 심심풀이 땅콩 있어요."하는 상인들의 말이 그렇게도 달콤하게 들리는지, 장사
가 지나갈 때 마다 자꾸 흘낏 흘낏 쳐다보고 있는데, 아버님이 한 말씀 하시는 것이
었다.

  "왜, 먹고싶니?  범인은 배가 고프면 미치느니라!  참을 줄 알아야지. 입이 하자는
대로 하다간 한이 없는 법이란다!"(아들은 목사님의 말씀이라, 성경 어딘가에 쓰여
있는 말씀인 줄 알았다. "세상에 성경에 그런 냉정한 말이 다 있나?"생각했었는데,
50여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찿아봐도, 성경 어디에서도 그런 말씀은 없었다.)하
시고는, 저만큼 지나간 장사를 부르셔서 삼각형 비닐 봉지에 든 땅콩을 한봉지 인심
팍 써서(?) 사주시던 기억이 난다. 아마 5원 이었으리라.....  

  어찌나 맛 있던지, "잔소리 또 하셔도 되니까, 하나만 더 사주세요! 네!"라고, 맘 속
으로만 외쳤던 생각이 난다.


  세월이 흘렀다지만, 아버님의 손주에 대한 마음 쓰심이, "손주 며느리에 대한 그리
움이 얼마나 크셨으면 그리하셨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20대 후반의, 한창 청춘 사업에 바쁠 나이의 손주가, 주말이면 할아버지 병 수발
드느라 병실에만 있는 것이 고맙기도, 대견스럽기도, 안쓰럽기도 하셨던 것  같다.

  "아버지 쓰러지시면 안되니까, 주말은 제가 할아버지 옆에 있을께요."하고, 거동
못하시는 할아버지를 매일 수발드는 아버지를 생각해서, 일년 반 동안이나, 주말이면
어김없이 아버지와 교대해 주는 아들을 나도 고맙고, 대견스럽고, 자랑스럽게 생각
하던 터였다.


  아버님 돌아가신지 벌써 8년이 지나고, 이제 그 손주는 할아버지가 축복하며 하사
하셨던, 그 저녁값을 쓸날을 기다리게 되었다.

  한번도 뵙지 못한 할아버지시지만, 8년전에 이미 오늘을 생각하시며 축복하신 뜻을,
며느리가 깊이 깨달아, 잘 살 것을 다짐하는 기분좋은 출발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
한다.

  할아버지의 축복이, 아들 내외에게 내려져서 행복한 가정을 꾸릴수 있을 것을 확신
한다.      


  나도 빨리 할아버지가 되면 좋겠다.

  우리 아버지 보다 더 멋있게, 내 손주 며느리에게 축복을 빌어주고 싶어서이다!ㅎㅎ





























김고환 하나님의 축복이 대대로 이여지기를 기도드립니다.  2008.08.22  




작성자 : 정말  at 2008-08-20 17:55 Mod.  Del.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훈훈해집니다.

선생님의 좋은 글들 계속 기대합니다.  


리셋 좋은글 감사합니다^^ 아버님 같으신분만 게시다면 더 흐믓하게 글읽고갈텐데 작금의 현실이 약간 아쉽네요^^ 건필 하세요^^ 08.08.22  |  wooripass 선생님글을 읽으면서 행복해집니다


이영훈
2008-08-20 17:24 그야말로 큰 축복일쎄....... 훈훈 하구먼~~~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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