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석에 깔려 느꼈던 죽음의 공포!

정광설 2008.08.14 10:34 조회 수 : 650


  "이리 오련?"

  울 엄마는 정색한거라고 하시지만, 우리들(누나들과 나)은, "비상!! 엄마 또 똥색
한다!"고 뒤에서만 꿍시렁거렸다. 말 내용은 웃으면서 할만한 말인데, 표정이 없는,
강시같은 무표정으로 엄마 얼굴이 변하면, 재빨리 비상상황임을 눈치채고 알아서
기어야지, 밍기적 거리고 어물거리다간, 맞는 것 보다도 훨씬 비참한, 제껴짐(투명
인간 취급?)을 경험하게 되고, 방석 밑에 깔려, 꼼지락 거릴 엄두도 못 내고, 찍소리
못하고, 콕 처박혀 있어야 되는 모멸을 맛보게 되는 것이었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그때 생각에 소름이 돗는 느낌이다.

  그럴수 없이 사랑이 넘치는 엄마신 것은 분명한데, 어느 기준을 넘으면 사람 취급을
그 순간 만큼은 단념하는 것 이었다. 좀 커서 안 것은, 이럴 때 쓰는 적절한 표현이
''인구조사에서 뺀다!''는 말이었다.


  그때도, 예배시간에 내가 졸리고 지루해서, 칭얼거리고 꼼지락 거리며, 투정을 좀
부렸던 것 같다. 조그만 개척교회 수준의 교회를 아버지가 담임하고 계셨을 시절이었
다. 저녁예배가 끝나고 교인들 인사하고 간 다음에야, 그 자리를 정리하고, 예배보던
곳에다가 이부자리 깔고 자야하는 형편이었다.

  그날따라 아버지가 저녁 설교를 길게 하셔서, 나의 참을성이 한계에 달했었던 것이
었다. 그러니, 6살 짜리 꼬마 아닌가? 뭘, 어떻게, 얼마나 더 알아서 참을 수 있단 말
인가?


  "이리 오련?"하고 속삭이 듯 말씀은 하시지만, 손아귀의 힘과 분위기는 강제연행이
나 진배없었다. 팔을 잡아 끈 엄마는, 나를 엄마 오른 쪽에 눕히고, 방석을 덮어주며,
엄마 옆에서 자게끔 다독거려 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순전히 남의 눈에 보인 모습일 뿐이었고, 실제 사정은 방석으로 덮
고, 오른쪽 무릎으로 슬쩍 찍어 누르고, 오른손으로는 다독거림을 빙자하여, 내가 삐
집고 나가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이었다.

  그 이전의 박해(?)는 기억에 없지만, 몸은 알아서 반응을 하고 있었다. "아이코! 또
넘었구나! 비상상황이다!", 모면할 방법이 딴거는 없다! 울 엄마의 의도대로, 찍 소리
없이, 꼼짝도 안하고, 완촌히, 복지부동하고 엎어져 있었다. 그 길만이 사는 길인 것을
몸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러다 죽나보다!"하는 공포의 시간이 얼만가 흐르고, 예배가 드디어 끝나, 친절히
교인들을 배웅하고, 나를 돌아보는 엄마는 아까의 공포 분위기 연출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나만이 혼자 잠시 꿈나라(?) 다녀오기라도 한 것인듯, 
"왜! 무슨일 있었어?"하는 분위기인 것이었다. 칭얼거리거나, 뗑깡 놀 근거가 되는
사건이, 원래 없었던 것 처럼 명랑하게 서둘러서 잠자리를 챙기시는 것이었다.

  그리곤 끝 이었다! 나의, "이렇게 긴 저녁예배는 어린 나에게는 무리다! 너무 지루
하다!!"는 항거(?)는, 그렇게 끝나고(초전박살?) 만 것이었다.      


  용납될 수 없는 것은, 결코 용납해선 안된다는 것을, 이론은 나이 들어서야 알았지만,
몸은 그때 이미 확실히 알았던 것이다. 남들은 나를, "역시 목사님 아들이라 다르다!",
"착하고, 예배시간에 나이에 맞지 않게 얌전하다!"고 칭찬들 했지만, "오 천만의 말
씀!", "아줌마가 나의 그 방석에 깔린 공포를 알기나 하세요?"가 나의 답변(속으로만)
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나이보다 정제되고, 칭찬들을만한 모습은, 나의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었던 것이다. 어떻게 안 지루할 수 있고, 껄쩍거리고, 왔다갔다, 해찰부릴 충동이 안
일었겠는가?  겨우 6살이었는데.....  


  그러나, 그 어린 나이에도, 죽는 것 보다는, 참는 것이 남는 장사(?)임을 몸은 알았
던 것이었다. 그때는 너무나 힘들고, 싫은, '강제된 참음'이었으나, 지금은 그게 나의
모습으로 완전히 정착해 버린 것이다.

  오늘의 나는, 이렇게, 생사의 갈림길에서, 이 길을 택하지 않으면 죽임 당할 것 같아,
살아남기 위한 노력 끝에 태어났지만, 동시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하는
막둥이가 공포감에 떨고 두려워하는 것을, 그러면서 살아남는 길을 택하고, 그 길에
적응하려 애쓰는, 피눈물 나는 인고의 행로를, 위로하고, 달래주고, 대신해주고 싶은,
안타까운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면서 지켜봐 주셨던, 울 엄마의 인내 덕분임 또한 부인
할 수 없다.

  그때 그렇게 '강제된 절제'의 체득노력을 나에게 행하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는 천하
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싸가지 없는 놈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사람은 이렇게 '만들어 지는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사람이란 포유동물은 태어나지만, 존귀할 수 있는 사람은 만들어 지는 것이다.

  가르침을 통해, 그리고 그 가르침으로 인한 깨달음을 통해, 동물의 수준에서 존귀한
사람으로의 탈피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진리를, 울 엄마에 의해 생각 이전에 몸으로 체득을 한 것이다. 아니 체득이
강제된 것이다.


  두가지는 분명했다.

  하나는, 울 엄마는 말 잘 들으면, 나한테 무지 잘 해준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울 엄마는 말 안 들으면, 나를 사람 취급도 안하고 짓 뭉개버린다는 것
                 이었다.


  그리고 나이 들면서 느끼는 것은, 그 기준을 정하는 것이 차츰 내 몫이 되어가고 있다
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나도 내 아이들의 기준을, 나에게서 그들에게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ㄱㄷㅈㅅ0
작성자 : 팬  at 2008-08-15 09:18 Mod.  Del.
규율이 자율이 돼가는 과정, 사회화....저의 얼굴을 거을에 비춰보고 있답니다


작성자 : chobo  at 2008-08-18 19:51 Mod.  Del.
목사의 아들... 순간 공감대 형성 확실히 됩니다.  




송규정
2008-08-15 03:27 좋은글 자주 올려줘서 고맙네
정광설  감사!!
같이 생각을 나눌 수 있어 행복합니다!! 8/16 15:40
  
      




인산김형중
2008-08-14 12:14 오매!!

정원장은 왜그리 머리가 좋아???


엄마가 정원장한테 하신것은 목회중이니까 당연한 것이고,
끝났을때 평상으로 돌아가신것도 당연한것인디,
6살어린 나이에 어머님의 당연한 일이 공포였겠지~~

그당시 목사님들 대부분이 밥도 잘 못먹으셨지.
고생 많이 했구먼~~~~  
    

목이균
2008-08-14 13:06 나 목이균이다. 어릴때 (서대전 국민학교다닐때) 용두동 솔말 지나 송점화집 가는 도중에  산으로 조금 올라가 너희 집에 놀러갔던 기억이 난다.  큰 버터깡통에 땅콩을 담아놓고 먹던 기억,  변을 보는데  기생충(지금 생각으로는 편충이 분면함)이  변에 섞여나오던 너(ㅋㅋ)가 기억나는데 중고등학교에가면서  소원하게 지냈었지.  여하튼 반가운 정광설(정송재) ,  한번 보세...  
    

목이균
2008-08-14 13:14 그리고는 대전고다니면서 네가 영어 웅변대회에서 멋있게 스피치하는 것을 보고 들으며, 대단한 정광설이구나..하고 속으로 자랑스러움을 느꼈었지.  
    

정광설
2008-08-14 13:27 글씨를 너무나도 빨리 잘써서, 나도 이균이 흉내 내려고 냅다쓰다 생긴 세번째 손가락 끝마디 굳은살이 지금도 있어서 그걸 볼때면 니 생각했는데, 너는 어떻게 그좋은 머리 가지고 하필 똥싼거 기억하고 있냐. 하옇튼 그때 엄청났었지. 똥통 바닥까지 콰이강의 다리가 놓여졌었으니까.ㅎㅎ 건강하지?
행복하시게나!!!  
    

仁山김형중
2008-08-14 19:47 그런디, 내가 한마디헐껴,,,
정원장허구 한글루 종씨인 정덕영이는 홈페이지를 본다며,
한번두 글을 안 올리네? c,,bel,,,,,

돈벌이가 잘되서 시간이 없는겨?

광서리엉아는 우리고삐리홈피에 주인공이 되셨는디?,,,,,  
    

뼉쨍이윤홍중
2008-08-15 11:37 그려 마져유!비뇨기과 의살 수십년한 정더경엉아는 뼉애길 존나게 써 주어쓰면 조갠는디 이개 뭐여!
글구 산부인괄 하는 엉아드른 평생을 여자 보지를 보면서 사는거잔여유!그람 울 홈피에 보지 야길 좀 해주지 어지간히 인색카구먼 그려!
자기들만 보질 보고 마려
내가 조수처럼 힌 까운을 입고 산부인과 진료실에서 여자들 보지를 보면 안될까?
근디 평생을 보지 찌른내를 마터보는거떠 또한 변태가 될껴?
울 8반 경인지역 반창회하는디 김호철칭구가 식당에 드러오닝깨 식당아줌마가 반가운건지 아니면 호철이가 그 여자 보지를 만져주어서 반가운건지 그 여자가 존나게 반가이 하면서 아애 너머지더만
아이 호철아 부럽다!근디 호처리는 나뿐놈인겨!나보고 와서 힌까운을 입고 보지를 진료하는걸 토요일마다 수백번은 보라고 해써야는겨!
보지에 고름자핀거 써근거 알배긴거등등 호처리는 여자 보지만 봐도 이여자는 창녀구나 룸싸롱이구나 안마사구나 수처녀구나 남편이 고추내,남편이 고추가지네,아이고 남편이 존나게 빠는구만,아이고 시짐만 가찌 이여자는 처녀나 다름업구만,등등 보지의 종류를 장 알껀디
조또 수심년 지나봉깨 충남의대에 가서 산부인과를 전공하여 평생 여자들 보지만 보고 주글껄! 후회스럽구나!
이게 다 팔자인겨 뭐여!
인산인해엉아는 내가 산부인과 의사면 여자 보지를 만져도 당연한거처럼 생각하고 지금 내가 빠구리 야길하면 변탠줄 알고!아이 조깐네!
근디 재하엉아가 나보고 정신과에 가보라고 핸는디 광서리 엉아야 난 진짜 간거여유?  
    

박재하
2008-08-15 11:56 내가 광설이 한테 부러운게 몇가지 있었지. 아버지가 목사님이란거,엄마의 지극정성,음악회 4중창에서 베이스,그리고 귓가의 구렛나루등...그런데 오늘 이균이의 댓글본후 환상은 깨졌네.ㅋ ㅋ ㅋ.그리고,홍중인 정작 만나면 인품이 훌륭한 친군데 인터넸상에서만 웃기지.  
    

仁山김형중
2008-08-15 20:04 덕영이는 B.G. 구경은 잘 못허지~~~
그건 몇천명두 더 구경한 홍정의 원장헌티 물어봐야지,,
그아저씨두 아직두 팔팔헐껴,,

아직두 바쁘신모양인디,,,
홍중이엉아가 부탁을 혀봐,,,,]

나는 지금 글을 잘쓰시는 宗賢巨士 홍운기형님헌티,
홈피에 들어오시라구  말씀을 드리는디, 아직두 안오셨네???  
    

정광설
2008-08-16 15:46 뭘, 똥 싼 얘기 한번에 그러시나?!  
    

목탁
2008-08-18 13:14 어릴때 구충제먹으면 하늘이  노랗고 어지럽던 시절의 그리움으로  45년이나 지난 얘기를 보고 환상이 깨지면 안되죠. 재하씨~~  난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고 내가 광설이랑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동창인 것이 자랑스러워 옛 추억을 떠 올린것일 뿐인데...  지울까봐 위에 쓴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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