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앙원가요, 장ㅡ원..." 아이는 방 귀퉁이, 벽이 모이는 모서리에 이불을 깔고, 그
위에 벼개 가져다 고여 놓고는, 그 위에 머리를 밖고, 꺼꾸로 서서는 계속 "장원가
요..." 소리만, 크게, 길게 늘여 빼며 소리지르고 있었다. 오늘 낮에 본, 큰소리로 사
람들을 부르며 외치던, 뻐스 차장의 우렁찬 목소리가 인상적이었었나 보다.

  아이의 엄마는 밖에서 뭔가 하시다 말고, 방문을 열고 들여다 보시더니, "아이고!
우리 막둥이 목청도 좋네!"하고 웃으시는 것이었다.

  아이는 오늘 서울엘 갔다 왔다. 아이는 어쩌다 한번 서울만 가면 기분이 좋았다. 앞
이 훤히 내다보이는 뻐스 앞쪽에, 엄마는 항상 자리를 잡고, 아이를 꼭 무릎에 앉히고
는, 집에 다 올 때 까지, 엄마 무릎을 무슨 놀이기구라도 되는 것 처럼 굴르면서, 되지
도 않는, 냅다 크게 부르기만 하면 잘하는 줄 생각하는 아이의 힘껏 부르는 노래소리
에 한술 더 떠서, 무릎을 더 굴르고 추켜주며 아이의 흥을 돋궈주곤 하였던 것이다.

  아이는 엄마가 "옳지 잘한다!"하면서, 무릎을 들썩 들썩 하며 흔들어 주는게 너무
좋았다. 뻐스가 비포장 길에서 움푹 팽긴 곳을 지나며, 덜커덩하는 날이면, 아이는 버
스 천정까지 반은 떴다, 쿵 하고 엄마 무릎에 떨어지곤 하였다. "아구구구... "하면서
도, 엄마는 그럴 때 마다 같이 신나하며, 아이의 기쁨을 더해 주었다.

  그러다 아이가 지쳐 잠이들면, 가슴에 꼭 안고, 무릎을 흔들흔들, 흔들의자가 되어
주셨다. 그렇게 버스놀이를 하다 지쳐서 잠이들어, 한숨 자고 나면 어느새 엄마등에
업혀 집에  돌아와 있곤 하였던 것이다.


  그뒤로 30여년이 흘러, 그 목청 좋은 아저씨가 있던 차부는 마장동 시외버스 터미
날이고, "장원가요ㅡ"하며, 버스 차장 흉내 내며 부르짖던, 그 "자아ㅇ ㅡ원"은 장호
원이란 도시고, 아이가 살던 곳은 경기도 이천 부발읍의 가산이란 시골 동네고, 서울
서 그 곳 까지 두어 시간 동안 독짝같은 4살짜리 사내놈이, 그 위에서 뛰놀지 않으면,
늘어져 잠자던 운동장이요 침대였던 것이 엄마의 무릎 팍 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가 뻐스 운전수 아저씨께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아저씨도, 주위분들도, 다
아이를 칭찬해 주어, 아이는 지가 잘난줄 알고 마냥 신이 나서 떠들어 대곤 하였던 것
이다.

  그날도 그런 흥이 채 가시지 않았는지, 아이는 혼자서, 방구석에 꺼꾸로 쳐박혀, 장
원가요 놀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와서 생각해 보면, "엄마는  무릎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아비되어 아들, 딸들을 안아줘 보니 알 수가 있었다. 두어 시간 비포장 길 달리
는 버스 속에서, 아이를 무릎 위에서 뛰게 하는 것이 어떤 어려움인지를.....


  엄마는 왜 그랬을까?????


  내가 내 나이 또래 아이들 보다 말도 잘하고, 노래도 곧 잘 하며, 아는 단어 가짓 수
도 많아, 자랑스런 마음도 없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더욱 크게 생각되는 것은,
"내가 신나서 우쭐해 하는 것을 격려하기 위함이 더 컷던 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뒤로 나이가 한 살, 한 살 더 먹어 가며, "너는 할 수 있어!", "너는 시키지 않아도
뭐든 잘해!", "9살이면 보물섬도 혼자 찿아나설 나이야!"하고 자존감을 붇돋워주시
던 것이나, "얘는 공부도, 노래도 다 잘해요!" 하고 과하게, 남 앞에서 내 칭찬해서,
내가 뭐라 투정하면, "앞으로 그렇게 되면 거짓말 한게 아닌게 되잖니?"해서, 날 기를
죽이자는 건지, 살리자는 건지 헷갈리게 만든적도 있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엄
마는 아이의 기를 살리는데 더 큰 목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어머니의 노력이, 원래 강력한(?) 내성적 기질을 갖고 태어난 나를, 그래도 이만
큼이나마 활발하게 사회생활 할 수 있게 만든 힘의 원천이란 생각이 들고, 멋적고,
수줍고, 나서기 겸연쩍어 하다가도, 막상 판이 벌어지면, 그래도 왠 만큼 따라하고,
크게 뒤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 내 자긍심과 사회성의 뿌리가, 울 엄마의 퍼렇게 멍든
무릎팍에 내려져 있음을 요즈음에야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내가 잘나서 인줄 알았는데, 사실은 내가 아니고 울 엄마의 사랑과 헌신이었고,
울 엄마의 퍼렇게 멍든 무릎팍이었던 것이다.

  "난 없고, 울 엄마의 사랑이 뭉쳐진 그게 바로 나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어머니 무릎 한번 쓰다듬어 드리고, 찜질이라도 한번, 50년도 훨씬 지난 지금이지
만, 이제라도 해드리고 싶은데, 형편은 그러하지 못하니, "부모님 살아계실 제 잘해드
려라!"가 아니라, "함께 계실 제, 근처에 계실 제 잘해라!"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어머니의 시퍼렇게 멍든 무릎의 기억이, 그때 본 기억의 잔상인지, 지금 그때를 그
리며 보는 환상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모습이 엄마의 사랑이고,

엄마의 자식 교육이고,

엄마의 자식 기살림이고,

엄마의 자아실현이고,

엄마의 사명감당이었던 것이 중요한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엄마!!!

감사드립니다!!!








































@#$*+0ㅅㄱㄷㅈ
작성자 : 공감의  at 2008-08-18 16:53 Mod.  Del.
어머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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