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지금 같으면 어림없는 일 일 것 같은데, 우리 아버지는 되게 강심장 이셨던 게 틀림없다.
2키로는 족히 더 되는 통학거리를, 초등 일학년 짜리를 한번 데리고 갔다 오시고는,
그 다음 날 5학년 작은 누나랑 같이 보내 버리시는 것 이었다.


등교 첫날 갈 때야, 누나랑 갔으니까, 학교를 찿아갈 수 있었지만,
1학년은 12시면 끝나고, 누나는 점심 먹고도 두 시간은 더 해야 끝나는데, 기다릴 수 없어,


"저기 저 탑만 보고 가면 돼, 저 탑 바로 아래가 우리집이야!"하는, 어제의 아버지 코치,
그리고 서울서 전학 후 등교한 첫날, "나를 기다릴 것 없이, 너 먼저 가!"라고 하며,
작은 누나가 해준 코치 따라 집에 오다가,


탑만 보고 걸을 수 있나,
새로운 동네, 이것 저것 구경하다가, 시장이 있어 그리로 지나 가다가는,
국화 빵 냄새에 끌려 시장에 들어가서, 도라무통 꺼꾸로 세워 놓고,
그 바닥 판 위에서 지글 지글 방금 구어낸 호떡, 국화 빵 사먹다가,
용코 없이 집에 오는 길을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정신을 쥐어 짜서 학교로 되짚어 가서,
작은 누나 기다렸다가, 일장연설을, 바보 소리 양념으로 섞어가며,
집에 올 때 까지, 철저히 교육받던 생각이 난다.


"다시는 이 악몽(?)같은 잔소리 듣지 말아야지!"결심 하고,
그 다음 부터는 집을 제대로 찿을 수 있었다.



그 뒤의 하교 길은 행복의 길 이었다.
그때 미로처럼 생겨서 나를 골탕 먹였던 그 시장 길이,
사귀고 보니까 재미있는 놀이동산 같은 것이 나에게 되버린 것 이었다.


작은 누나의 잔소리 없이,
넉넉한 시간을 시장 골목 휘젓고(?) 다니며 눈으로 싫컷 즐기고, 놀다,
출출하면 아버지가 아침에 주신 10환(지금의 1원)으로,  
그 띵띵이 아저씨 호떡이랑, 국화빵을 사먹고 실실 집으로 오면 되는 것 이었다.



그 아저씨는 참 좋았다.
맘도 무지 좋아서,
이쁘다며 어떤 때는 하나 더 줄 때도 있었다.


나는 그 도라무통 옆에서 호떡이 탄생되어가는 과정을,
그 눈부신, 그 아저씨의 호떡 뒤집는 손놀림을,
그리고 조금 있으면 풍겨오르는,
그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호떡의 맛있는 내음을 사랑했었나 보다.



그날도 한참을 그렇게 서서 행복해 하고 있을 때 였다.
"꼬마야, 너는 이담에 커서 뭐 될꺼니?"하고,
그 마음 좋은, 나의 선망의 대상인, 그 띵띵이 호떡집 아저씨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너무도 쉽게 즉각 답변을 하였다.   "성경박사요!"
눈은 노릇 노릇 익어가는 호떡에,
몰씬 몰씬 풍겨오르기 시작하는 호떡 내음에, 정신은 팔린 채,


지극히 당연한,
나의 외통수 인생길에 대한 대답을 건성으로 하였다.



그런데 그 아저씨의 반응은, 나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였다.
"뭐?".... (처음엔 무슨 소리인지 잘 몰랐었나보다. 잠시 머뭇거리다간)

"뭐라? 성경박사? ㅎㅎㅎ 에라! 이눔아! 나 처럼 빵박사나 돼라!
빵 박사 되면 맨날 빵먹고 좋찮아?"하고는 웃는 것 이었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저씨가 나의 말에 대하여 놀리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나의 가야 할 외길이고,
어려서 부터 울 엄마에게 귀에 목이 밖히도록 들은,
그 귀하고 거룩한, 그렇기 때문에, 특별히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실인으로 서원하여 태어난 내가, 가야하는 그 길을, 아저씨가 비웃고 있는 것이란 느낌은 들었다.



아저씨를 한 번 쳐다보고는,
무거운, 김샌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엄마를 만났을 때 그 이야기를 하였다.
"엄마! 아저씨가 나 보고, 아저씨 처럼 빵박사나 돼라 그랬어!"하고,
내가 시무룩해서 얘기 하니 뭐라 하시면서,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나를 열심히 달래주셨던 것 같다.


서운함과, 뭔지 모르는 배신감이,
어린나이에도 진하게 느껴졌었던 것을 기억한다.


물론 그 뒤로 그 아저씨는 매일 출근(?)하던 10환짜리 단골 하나를 잃었다.



지금까지도 어머님의 사랑 담긴 위로의 말씀은 하나도 기억에 없고,
그 아저씨의, "에라! 이눔아! 나 처럼 빵 박사나 돼라!"하고,
놀리며 웃는 아저씨의 모습은, 잡힐 듯 생생한 것으로 보아,


어려서의 충격적 경험이,
얼마나 오랬동안 한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장난스레 하는 말이,
어떤 아이의 장래에, 내 아이들의 장래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자칫 망각하고,
말을 함부로 하고 있지는 않은 지, 더욱 조심할 것을,
옛 생각을 하며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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