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전개하기 전에 두가지의 전제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첫째는, 야단을 치는, 쳐야하는 위치에 있는사람들,
           즉, 부모, 스승, 도우미(멘토), 사회적 리더들의 마음이,
           마땅히 행할바를 가르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전제와,

또 하나는, 자신은 평생 야단 맞을 일 없다고 생각하는,
           야단 맞기를 거부하거나, 납득되지 않는 야단은 맞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해당이 안되는 주제요, 내용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전제를 수용하고,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이 시대를 살아있음으로 인해, 책임지고 있고, 책임지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에 대하여,
이 시대를 책임지는 것 중 가장 중요한 일에대한 공감과 동참이 이루어 질것을 기대하며 이 글을 쓴다.  




야단은,
야단이 그 야단을 맞는 사람에게,
유익한 것일 수 있다는,


근거와,
확신과,
신념을 갖고 행해야 하리라!


그러나,
그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야단을 거부해서 안 맞고,
야단의 의미는 모른채 신간만 편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야단의 의미를 바로알고,
깨닫고, 극복하고, 초월하여,


야단맞을 이유를 제거 함으로써,
야단을 안 맞는 것이 바람직하고,


그러라고 야단치고,
야단맞음을 통해,
성숙하고 발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또한 야단은,
외부로 부터만 있는 것이 아니고,
타인에 의해서만 나에게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하고, 자신의 싦에 보다 큰 영향을 주는 야단은,
자신의 내부에서 부터 들려오는 소리,
깨달음으로 부터일 수 도 있을 것이다.


외부로 부터이든,
내부로 부터의 울림이든,


중요한 포인트는,
나를 힘들고, 어렵고, 아프고,
괴롭게하는 일이 나에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는,
내뜻이나 의도와는,
다르게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야단치고, 야단 맞음을, 누가 주관해야 할 것인가?


부모로서, 바른 길로 양육하고,
스승으로서, 올바로 훈육하고,
멘토로서, 행복의 기회를, 왜곡된 인식과,
              잘못 형성된 성격으로 인해 축복을 저버리지 않도록, 깨달음을 일깨우며,
사회의 리더로서, 앞선자로서, 선각자로서,무지한 대중이 보지 못하는,
              저 언덕 너머의 바람직한 사회의 비젼을 제시하며,


오늘에 안주하려는 군중의 게으름을 나무래고,
틈만나면 무리지어 붕당을 만들고 수근거리고,
말초의 만족만을 게획하며,
작은 불편을, 큰 불평으로 쏟아내어,
이 사회의 흐름을 흐뜨리는 줄도 모르며,


비 이성적, 탈 인간적인,
그냥 떼지어 노는,
'한낱 무리'가 되려고 하는 군중의 속성을,


다잡고, 이끌어,
비젼을 성취하는 노력을,
누가 주관하고, 결제(?), 결정할 것인가?




야단은 어른이, 스승이, 지도자가 쳐야 할 것인가,

아니면, 야단맞는 위치에 있는 자가, 헤아려, 구미에 맞는 것을 취사선택할 문제인가?



삶의 어느 과정에 있든지,
누구든지,
야단을 칠 수도, 맞을 수도 있는 위치에 있는 것임을 감안해 볼 때,
"나는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물음에 봉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랑과, 신념과, 위하는 마음으로, 야단을 치는 자가 될 것인가?

사랑과, 신념과, 위하는 마음임을 믿고, 야단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그 무엇도,   거부하는 자 일 것인가?



항간에서는,
야단치고, 때리는 것을,
인권적 차원에서,


무조건 나쁜 것인 양,
비 도덕적이고,
비 교육적인 것인 양,


매도하고,
백안시하고,
거부하며,


만에 하나,
야단치고,
혼나야 될,
맞아야 될 일이 있다면,


때리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하고 때려야 할 것 아니냐를,
주장하기도 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자녀가 부모를 고소하고,
제자가 스승을 신고하면, 신고받은 사안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선생님을 강단에서 연행하는 일도 벌어지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어느 사회에나, 문제는 있는 법이고,
어느 방법도 다 옳을 수 만은 없으며,
어떠한 이론도 모든것을 다,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문제의 본질을 바로 보고,
나아갈 방향이 바른 것 인지의 성찰보다는,


말초적 불편함과 괴로움에 촛점을 맞추고,
그 무엇보다 본인의 마음에 받아들일 수 있는냐의,
선택적인 부분에 촛점을 맞추는 경향이 너무 지나쳐,


아이의 허락을 득하고 나서야,
그 아이를 나무랠수 있는 세상이 온것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야단치고, 혼내고, 때리고, 교육하는 이가,
야단맞고, 혼나고, 지적받고, 비판받는 이에게,
그 방법과 정도를, 이유를, 납득할 수 있도록, 납득할 수 있을 때 까지 설명하고 ,
드디어, 납득할 만한 수준에서의 야단침을 허락받고, 야단 치는 것도 야단일 수 있을까?


교육효과가 있을까,
아니면, "에이! 선생 갈아야지, 맘에 안들어서, 원!"소리가 나올까?


맞는 이유를 먼저 가르쳐 주어야 할까?
자꾸 왜 혼나는지를 생각하다, 하다, 깨달으면 다행이고,
도저히 못 깨달아 애태울 때, 넌지시 힌트 줘서,


드디어, 야단 맞지 않아도 되는 길을 찿은 기쁨을,
그러한 생존의 지혜를, 몸으로 체득 할 수 있도록 해야,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 아닐까?


그래야, 인생 길을 가면서,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에 봉착하여,
어려움의 나락에 빠져들 때에,


"무슨 소리야!"하면서,
헤쳐 나올 수 있는 생존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아닐까?


이딴 고생하면서,
이딴 엄한 소리 들으면서,
이딴 엉터리 대접받으면서도,
"꼭 살아야 된다는 법이 어디있어요?"하면서,


힘든 것을 이겨내고, 극복할 생각보다는,
도망가고, 원망하고, 심지어 생을 포기하는 생각이 앞서는 사람으로,
키우지 않으려면 어떻게 키워야 되는 것일까?


가르침은 베푸는 것인가,

아니면, 가르침을 제발 받아 달라고 사정해야 되는 것인가?

아니면,  비싸게 파는 것인가?



공자님 말씀에,
"세사람이 가노라면, 필히 스승이 있다!"는 말씀은,
배움이 본인의 능동적인 노력과,


문제의 핵을 발견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본인에게 있어야 함을, 
겸손한 마음으로 배움에 임하여야 하는 자세를 가르치신 말씀이 아닐까?


나는 내 아이를 가르치나,  배워 주기를 빌고있나?
누구를 위한, 누구의 만족을 위한 인고인가?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하여 채찍이 있나니,
채찍은 아이의 영혼을 구하느니라!"라는 말씀의 진의가 어디에 있는 것 인가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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