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숨을 대신 쉬어 달랬는가?

정광설 2008.10.29 16:00 조회 수 : 444



부대가 발칵 뒤집혔다.


느닷없이 내려진 비상 때문에,
"무슨 일인가?" 하는 궁금증과, 편히 쉬다가 주섬 주섬 옷 줏어 입고 나오는 불편에,
여기 저기서 궁금증과 나름대로의 유비통신을 발송하는 사람들로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차츰 소동이 가라앉으며, 부대로 긴급전문이 날아들었다.
"반드시 살려야 하는 환자가 곧 도착할 것이니,
응급수술 준비하고, 전 군의관 은 정위치에 대기하라!"였다.
그 뒤로 응급 헬기 수송이 있을지 모르니, 그 준비도 하고 있으라는 것 이었다.


돌아가는 눈치가, 평소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 상급부대에서도 수시로 병원장에게 전화가 오는 것 같았다.
"뭔가 일이 터졌어도 큰게 터졌구나!"하는 생각과,
최전방이라는 지역의 특성과 맞물려, 불안감에 부대는 뒤숭숭했다.


그 뒤로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하여 들려오는소식에,
사건의 전말이 서서히 윤곽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월북사건이 일어났다는 것 이었다.


월북하는 장교가 DMZ안에서, 자기 운전병을 등 뒤에서 총격을 가하고,
쓰러진 것을 죽은 줄 알고 월북한 뒤에,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하여 죽은척 하고 있던 운전병이,
차에 비치되어 있던 전시 구급낭에 들어있던 아편주사를 찾아 군복위로 찌르고는,
힘을 조금만 줘도 배 앞으로 삐집고 밀려 빠져 나오는 창자를 한 손으로 틀어 막은채,
타고간 찝차를 되돌려 몰고 나오면서 철책 근무자를 만나,
벼락(사단장에게로 직접 보고되는 최고위 비상연락 체계)을 때리는 바람에 일어난 소동이었다.


그 병사가 흘러나오는 창자를 한 손으로 틀어막고, 전방 산길 50여 키로를 운전해 오고 있다는 것 이었다.
그 운전병이 꼭 살려야 하는 환자였던 것이다. 그래야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있을 것이란 것 이었다.
그래선지 미군 헬기도 평소와는 비교도 안되게 협조가 잘 되어서,
그 병사와 거의 비슷한 시간에 부대에 도착할 것 이라는 것 이었다.


그런데, 그날 그 헬기를 타고, 생판 본적도 없는 산만한 등치의 흑인 위생병과 함께,
서울의 수도 통합병원까지 환자를 살아있는 상태로 수송할 책임감 충일한 군의관으로,
하필 그 날의 당직이었던 내가 선택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책임감도 투철하지 못한, 제대를 불과 몇개월 남겨놓지도 않은,
군기는 이미 거의 반납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말년의 군의관에다가,
영어는 읽고 이해해서 책보는 데 필요한 것이지, 내가 언제 미국가서 환자볼 일 있냐면서,
듣고 말하는 영어는 배운바 없는 , 영어 회화에 별 관심조차 없었던 내가,  
서울까지 미상의 시간 동안 미군 헬기를 타고, 미군과 연합작전으로 함께 가야 하는 것이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그 부상당한 병사의 상태가, 우리 병원 도착시는 거의 인사불성인 상태였었다.  
비상 구급낭에 있던 몰핀 주사를 옷위로 스스로 찔러 맞고는,
진짜 군인 정신과, 살아야 한다는 정신력으로 버티다가,
내가 근무하던 군병원 근처의, 자기네 사령부에 도착하고는 정신을 놓은 것 이었다.


숨을 잘 못 쉬는 상태인데, 6.25 전쟁 때 쓰던 것인 듯 싶은, 완전 수동식 인공호흡기를 주고,
헬기 뜨는데 수고하라며 거수경례로 병원장님은 날 떠나 보내는 것 이었다.
밤샘 응급 후송 값(?)으로 준 외박증과 함께.....


서울까지의, 깜깜한 하늘 위,
생전 처음 타보는 헬기 속,
그 소음 속에서,


자기들 매뉴얼에 따라 열심히 바이탈 싸인 체크하며,
외국군 이지만, 장교에 대한 예우로, 써ㅡ를 붙치며,
뭐라고 환자상태에 대하여 보고 하는 산만한 덩치의 흑인 위생병과,


잠깐 잠깐 들어오는 달빛을 빌어,
오만가지 바디 랭귀지와,
나만의 뜻이 담긴 콧소리를 동원하느라,


필설로 형용 못 할,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는 것 보다 더 어려웠던 것은,
점점 약해져 가는 환자의 호흡을 돕고 유지시키는 일 이었다.


인공 호흡기구는,
자동은 요즘의 얘기이고,
탄력있는 쥬브식도 아니고,


자전거에 바람 넣듯이,
일일히 잡아 뽑았다가 밀어 넣어야 되는 아코디온 식이었으니.....


지금 생각해 봐도, 그때 내 손이, 내 아귀가, 내 팔이 어떻게 견딜 수 있었는지,
불가사이한 일을 겪었던 것 같은 기억이다.


이렇게 한 두어시간, 대신 숨을 쉬어 주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었다.
아무 생각 없었다.
숨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생각 외에는.....


"옛썰!"해 가며, 극진히 대우하던 미군 병사는,
수통에 도착 하자 마자 나는 거들떠도 보지 않고, 환자 인계하고는 떠나버리고,
수통 군의관들은 나는 그만 두고라도, 띵띵 부은 듯한 내 팔에도 일별도 안주고, 수고했다는 말도 없이,
"어디 매쉬에서 온 환자 맞죠?"하고는, 환자를 데리고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아는 이 하나 없는 무지공터에,
녹초가 되어 혼자 남겨져 아픈 팔 주물르며,


그래도 살려서 후송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을 감사하며,
그나마 부대에 하나 밖에 없는 인공호흡기구 잃어버릴까봐,
전투복 허리춤에 비끌어 매고는 터덜터덜 걸어서 집으로 향하던 기억이 새롭다.


너무 너무 팔이 아펐지만,
말해 봐야 알아 듣지도 못하는 미국 사람 뿐이고,
아프다고, 포기하고, 안 할 수도 없는 임무를,


그래도 무사히 수행하고,
훗날 듣기로 그 용감한 병사가 무사히 생명을 구하고,
그때 일어난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고,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아무도 모르게 나혼자 팔을 주무르며 느꼈던 흐뭇함이 떠오른다.




두시간 대신 숨을 쉬어 주기도 이렇게 어려운데,
평생을 대신 숨 쉬어 주듯,
인생을 대신 살아 주듯이 사는,


왜곡되고 변질된 사랑을,
그렇게도 열심히, 그게 무슨 엄청난 사랑인 줄 알고,
인생을 다 바쳐 노력하다,


그렇게 난리치며 키운 아이가,
쓱 저 갈 곳으로 날아가 버리고 나면, 허탈해 하고,
누군가에게라도 푹 빠져 희희낙낙하면, 배신감에 치를 떨고,


성적이 떨어지거나, 입시에 잘못되기라도 하면,
내 평생의 수고가 이리도 허무할 수가 있느냐면서,
같이 죽자를 외치는 부모들이 많은 것이 보통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반대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무슨 엄청난 업보를 등에 메워주기라도 하는 것 처럼,
원망부터 준비하고 대드는 것이 또한 오늘날의 다분한 풍조인 것 같다.


아버님 쓰러지셨을 때,
아버님을 24시간 혼자서 돌보아 드리면서,
효도라는 말에 얽매여,
효도하는 줄 알고 지내다,


한달만에 도저히 더는 못견디겠어서,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옛 말이 빈 말인 줄 아냐?"면서,
"나 효도 못해!",  "나 효자 안할래!"를 "으악!"하고 소리치기 직전에,


아버님이 이부자리에 소변을 보시는 바람에,
마른자리에 아버님 뉘여드리고,
진자리에 내가 수건 다섯장 깔고 누워 잠을 청하는 데,


오라는 잠은 오지 않고,
허리 아래 엉덩이가 뜨뜻해지면서,
축축한 느낌이 점점 더해져 올라올 때 불현듯 든 생각이 있었다.


오늘 나는 기막힌 효자로서,
마치 무슨 엄청난 위업을 달성이라도 하는 양,
속으로 뽐내며 아버지를 마른자리에 뉘어 드렸는데,


매일 밤마다 한두번씩 오줌싸대던,
나의 어린 시절에,
아버지도 지금의 나처럼 폼 잡으면서,
마른 자리에 아들 뉘이고, 아버지는 진자리에 누우셨을까,


아니면 지극히 당연하게,
숨 쉬듯이,
어린 아들을 마른자리에 뉘이셨을까를 생각하니,


나는 당연히 행하는 마음이 아니고,
마치 무엇인가를 해드리는 듯한 마음이 였음을 불현듯 깨닫고,
아버지를 간호하는 내 속 마음에 대하여 비로서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남들이 그것을 보고 효도니 아니니 하고 이야기 할 뿐이지,
아들이 나는 효도를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하는 것이 아님을,


아버지가 나를 마른자리에 뉘이실 때, 좋은 아버지 이기위해 하신 것이 아니라,
그냥 당연히 어린아이를 진자리에 뉘일 수 없으니 마른자리에 뉘인거고,
어른은 좀 참을 수 있느니 진자리에 누운 것 이라면,


이제 아들이 장성하여,
아버지 보다 강건하고, 아버지는 병들어 늙고 쇄약하시니,
당연히 내가 그냥 진자리에 눕는 것이지,


무슨 거창하게 효도를 하는 것이다 라는 생각이,
너무나 싸가지 없는 생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한다는,
효도를 한다는,
효도를 해야한다는 얽매임에서 자유해지고,


아버지가 어린 아들과 사셨듯이,
이제는 세월이 흘러, 입장이 바뀌어,
장성한 아들이 노쇄해지신 아버지와 사는 것일 뿐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무언가를 해드린다는 생각이 지배할 때는 감히 나올 수 없었던,
"아이구 힘들어!"소리도 저절로, 맘 편하게 나오고,
"아버지 힘들어 죽겠는데, 조금 있다 해드리면 안돼요?"소리도 스트레스 받지 않고 나올 수 있게 되니,


몸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무거워 짓눌렸던 것에서의  해방을 느낄 수 있었고,
몸도 훨씬 들 피곤함을 알 수 있었다.


아버님도 나의 변화가 반가우셨든지 더 편안해 하시는 것 같았고,
그러다 보니 병든 아버님을 간호하느라 힘든 아들의 고민도,
그 당사자이신 아버지에게 상의할 수 있는 자유함이 생길 수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이웃이 사촌이고, 지척이 천리라는 옛말이 있듯이,
효도는 그냥 남들이 하는 말일 수 있고,
중요한 것은 자식의 마음에, 관심에, 심중의 염려하는 문제들 중에, 부모의 이름이 있느냐 일 것이고,
부모의 심중에, 아이의 인격이, 독립된 개체로서 존재하는냐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부모 자식지간의 주고 받는 것은,
누가 누구에게 해주고 말고가 아니라,
그냥 같이 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옆 방에서 자는데,
눈 앞에 없으니 부모가 날 버리고 옆 방으로 간 것이 아니고,
자식이 미국에 있어도 항상 마음에 부모님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면,
부모님과 함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누가 무엇을 정답이라 말할 수 없는,
영원한, 인간이고자 하는 이들의 숙제요,
풀기 어려운 명제인 것은 익히 아는 바지만,


무언가를 해준다는 생각에서,
함께 사는 존재라는 생각으로 바뀔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내 자식을,
마치 내가 내 뜻대로 대신 숨을 쉬어 주고 있으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는,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말을,
마치 숨을 대신 쉬어 주라고 하는 말인 줄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때가 아닐까?


















@

댓글 0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44 있는게 좀 보이네요! 정광설 2008.10.30 442
343 천국에서 온 할아버지의 축의금! 정광설 2008.10.30 533
342 "그냥 이대로, 지금처럼 살고 싶어요 !" 정광설 2008.10.29 684
» 누가 숨을 대신 쉬어 달랬는가? 정광설 2008.10.29 444
340 행복의 나날들.....@0 정광설 2008.10.28 464
339 변화(變化)! 선택(選擇)인가? 정광설 2008.10.27 406
338 행복은 사실인가, 인식인가? 정광설 2008.10.27 413
337 무엇을 중요시 해야 할 것인가? 정광설 2008.10.23 472
336 "나를 돌아보며 오늘을 살리라!" 정광설 2008.10.20 514
335 I. M. F. 정광설 2008.10.20 5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