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부리 영감님

정광설 2009.02.10 10:04 조회 수 : 479


75세 할머니 이시다.
큰 아들 집에 있으면서 며느리와 사이가 원만하지 못해, 우울에 빠져, 딸네 집으로 옮겨 오신 후 내원하신 분이다.

힘들고, 괴롭고, 불편하고, 억울하고, 서럽고, 지난 세월이 후회스럽고,
살고 싶지 않고, 허무만 쌓여가는, 보통 우울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모든 우울증상을 호소하며,

거기에 덧붙여, "예수 믿는 사람이 이 모양이니..." 하는 부담까지 더해서,
"나는 가망이 없습니다!"를 노래처럼 되뇌이는 분 이었다.

딸이 지성으로 모시고 다니며 사랑을 쏟아 붓고,
병원에도 열심히, 엎고오다 싶이 모시고 다니면서 많이 회복되어,
이제는 그전처럼 감사할 줄 아는, 명랑하고 행복할 줄 아는,
본래의 모습으로 얼추 비슷하게 회복된 상태에 있었는데, 며칠 전 부터 새로운 고민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무릎이 너무 아퍼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딸네 형편도 어렵고, 작은 아들네도 나를 병구완 해줄 수 있는 형편이 못되어,
다시 큰 아들네로 가야할 사정이 생겼다는 것 이었다.

큰 며느리와 드러내 놓고 불편한 것은 아니었지만,
뭔지 모르게 냉기가 감돌아, 큰 아들네서 있기가 어려워 대전으로 왔었는데,
그 곳으로 도로 돌아가야 하게 생긴 것 이었다.

몸은 아프고, 자식들이 그런 것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나는 갈 곳 없는 나그네 처럼,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렸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었다.

지내 놓고 보니 영감과 지지고 복고 지내던,
그 힘들었던 시절이 가장 행복했던 세월이었음을 알겠다고 말씀하신다.

영감님이 남겨주고간 연금이라도 있기에 망정이지,
그것마져 없었으면 너무나도 비참한 꼴 일 수 밖에 없는 처지라는 말씀이었다.



말씀을 나누면서 불현듯 혹부리 영감님 생각이 났다.
어려서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단골 옛날 얘기 가운데 하나이다.

턱 밑에 주먹만한 혹을 달고서도,
항상 웃으며, 노래부르고 살던 어느 산골마을의 영감님에 대한 이야기다.

같은 마을에 사는 비슷한 처지의,
항상 화난 얼굴로 턱 밑에 달린 주먹만한 혹을 원망하며 사는, 또 한 혹부리 영감님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날 노래 잘하는 혹부리 영감님이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날이 저무는 바람에 어찌하다 보니 도깨비 굴에 들어가게 되어 도깨비에게 붙들렸는데,
그 멋진 노래 솜씨로 겨우 위기를 모면했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렇게 노래를 잘할 수 있느냐고,
먹고 떠들고 노래하길 좋아하는 도깨비들이 부러워하며 물었을 때,

그 멋진 노래의 창고가 바로 이 축복의 덩어리인 혹이라고 자랑하는 바람에,
그 혹을 도깨비가 도깨비 방망이와 교환해 줄 것을 사정 사정 매달리고 애원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바꿔주고 혹 대신에 도깨비 방망이를 어깨에 둘러메고 마을로 살아 돌아온 이야기였다.

화쟁이 또 한 혹부리 영감이, 그 소문을 듣고 자기도 혹 떼러 갔다가,
중요한 방망이 대신 겨우 사정해서 얻어 턱 밑에 부친 혹을,
아무리 구슬르고 쓰다듬으며 노래를 해봐도 도저히 그 영감 만큼은 안되어,
그제서야 속은 줄 알고 화가 단단히 나있던 도깨비들에게 붙잡혀 치도곤을 당하고,
오히려 도깨비가, "이거나 가져라!"하고 다른 쪽 턱 밑에 붙쳐준 혹까지 붙치고 돌아온 이야기였다.



될 성 싶으면 한번 붙어서 해결을 위한 노력을 한다지만, 안될 성 부른 일은 부인하고, 거절하고, 원망할 것이 아니라,
적응하고, 그나마 그만한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수용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유익함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도 며느리가 대놓고 반대하지 않는 것이 어디냐는 말씀도 나누었다.

싫으면 싫다고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온 세상의 며느리들이 주장을 하고,
이를 탓했다가는 온 세상이 들고 일어나 악풀을 다는 세상인데,

그래도 며느리가 직장생활하면서, 남편과 주야간을 교대로 일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시어머님 병구완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디냐는 말씀을 나누었다.

"그렇죠?  이것만 해도 감사해야 겠죠?"하면서 웃으며 진료실을 나서는 할머니의 뒷모습에서,
인생을 달관한, 받아들일 줄 아는 자의 평안함이, 여유가 느껴졌다.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안되는 것을 받아들이고 수용할 수 있음도 중요한 삶의 지혜이고 적응인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0ㅅㄱㄷㅈ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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