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먹이 활동을 하는 것이다.
위장이 음식물을 소장으로 내려 보내기 위해 연동운동을 하듯,
먹이를 입에 집어 넣기 위해 먹이 활동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인식하고 하는 행동이 아니라,
홀몬과 신경계의 연합기능으로 일어나는, 단지 한가지 형태의 자연현상, 생명현상인 것이다.

언젠가 누군가가 사자를 닮으라고 외치면서,
사자는 하루 2시간 일하고, 다음 일을 위해 22시간의 나머지 시간 동안 에너지를 비축하는데,
이를 보고 배우고 닮아 시간 활용을 잘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사자는 음식을 배불리 먹은 후,
다음 사냥을 위해 에너지를 충전하는라 22시간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먹이 활동을 더이상 할 필요가 없어서, 즉 홀몬의 기능을 통한 움직이라는 싸인이 오지않아서,
그냥 그대로 있는것 뿐이다. 즉 자연계의 싸인이 아직 안와서 그냥 그러고 있는 것 뿐이다.

하품하며 뒹굴거리고 있는 것이 어떤 계획하에 통제되는 자유의지의 산물인 행동이 아니라,
그냥 단지 살아있는 상태로 존재하고 있는 현상일 뿐인 것이다.
사자가 깔고 누운 바위가 현상인 것 처럼.

사람이 사람 입장에서, 마치 그것도 사람의 행위인 것 처럼 표현해서그렇지,
사자는 행동을 안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발동이 안걸려,
인간에게 있어서의  일처럼 보이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 뿐인 것이다.

기분이 나뻐서, 바쁜 일이 있어서, 더 중요한 가치를 이루기 위해,
우선 순위를 재 조정해서, 행동의 순서를 바꾸는 것은 동물에게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우선 순위의 결정은,
자유의지에 의한 가치판단에 의하여 결정인 것이 아니라,
본능에 의한, 홀몬의 작용에 의해 정해지는 동작이 순서대로 나타나는 현상일 뿐인 것이다.

그 먹이 활동이거나, 종족 보존과 관련된 동작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따라서 자기 자신의 온전한 판단에 의한 거절이나 취소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낳는 알마다 닭 주인이 속속 꺼내다가 먹어 치워서 빈 둥지인데도,
충혈된 눈으로 열심히 알을 품은 듯 둥지를 지키고 내려오지 않고,
먹이도 거의 먹지 않고, 알 품는 폼을 유지하고 있는 암탉을 보면,

본능에 의한 동작과, 자유의지에 의한 행동이 구분되어야 함을 깨달을 수 있다.

먹이 활동을 임의로 할 수도, 연장할 수도, 거부하고 안할 수도, 양보할 수도,
아무 능력도, 자기의사 결정의 능력도, 자격도 짐승은 없는 것이다.

그냥 자연 현상의 서로 다른 모습일 뿐인 것이다.

생명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숨을 쉬거나, 배설을 하거나, 수면을 취하게 되는 것과 같은,
자연적인 생리현상의 한 종류로서의 음식을 섭취하는 동작이라 봄이 마땅할 것이다.



사람이 하는 것은 먹이 활동이 아니라, 일인 것이다.
스스로 판단하여 그 행동을 할 것을 결정한 결과로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생명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일해야 함은 마땅한 일이고,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는 말씀처럼, 일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이 세상에 살아있기 위하여 반드시 그래야 하는 당연한 의무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일이 짐승의 먹이 활동과 다른 것은,
인간을 그 일의 의미를 알고, 느끼고, 나누며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것의 가치를 알고, 그것에 나름대로의 가치를 부여하며 그 일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치의 우선 순위에 따라서는,
그 일의 종류가 바뀔 수 도 있고, 콩 반쪽도 나눌 수 있고,
사르밧 과부처럼 하나님의 종을 위해서라면, 굶어 죽기 직전의 마지막 먹을꺼리 조차 양보할 수 있는,

자유의지의 결단으로 이루어지는, 인간만이 가능한 의미가 깃들인 행위라는 것이다.



가치기준에 입각한 자유의지의 결단에 의해,
자신의 이성에 의해서 통제되며 이루어 지는 일련의 책임감있는 행동이, 일인 것이다.

먹이활동이란,
생명체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의 여지가 없는 행동인 것이다.

짐승은 이 먹이활동을 거부할 수 없고,
즉 먹이 활동을 스스로의 판단과 결정으로 능동적으로 안할 수 없고,

못할 수 있는 경우가 발생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먹이활동을 못하는 상태가 되면,
당연히 그 결과는 죽음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소멸되고 마는 것이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고 원리이고, 그에 따르는 드러난 현상인 것이다.

먹을 능력이 없으면,
굶어 죽거나, 잡아 먹히는 것이 자연의 법이고 당연히 기대되는 현상인 것이다.

겨울에 나뭇잎이 떨어져 밟히고, 썪어, 다시 그 나무의 거름이 되듯, 잡아 먹히고, 잡아 먹는 것은,
어떤 의미와 감정이 담긴 것이 아닌, 마치 파도가 바람에 의해 넘실거리는 것과 같은,
자연현상의 또 다른 한가지 형태인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은 다른 것이다.
사람은 자연 가운데 존재하고 살아가고는 있지만, 자연의 일부가 아니듯,

인간의 행위는, 어떤 의미와는 관계없이 그냥 있는 것 뿐인 자연현상이 아니라,
가치를 추구하고, 실현하는 방편으로서, 자기 책임 하에 이루어지는 목적있는 행동이고 행위인 것이다.

인간은 자연 현상과는 관계가 없는 존재라는 의미가 아니라,
인간은 자연 현상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우연과 우연이 겹치고 겹쳐서,
우연이 반복될 때는 결과적으로 무질서를 초래한다는 지극히 기초적인 과학적 사고를 무시하고,

우연과 우연이 무수히 반복적으로 겹치면서 혼돈이 초래된 것이 아니라,
현대의 발달된 과학적 사고와 방법을 아무리 동원해도 도저히 헤아리고 추측할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오묘 불가사의하고 복잡하고 정교하기 짝이 없으며,
동시에 더 이상 정밀할 수 없을 정도로 정밀하기 짝이 없는 질서를 낳았다는,
지극히 비 과학적인, 망상이든지 아니면 공상만화 같은 이론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질서가,
시간이 흘러가고,
범위가 넓어지고, 관리가 부실하면 무질서가 된다는 말은 수긍이 가나,

무질서와 무질서가 충돌하고,
관리는 아무도 안하고, 오히려 방해만 하는데도 불구하고,

점점 더, 더욱 더 질서가 잡혀가고, 체계가 세워져서, 작금에 와서는 상상불허의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는,
몽상이든지 아니면 거짓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이론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없다는 의미인 것이다.



모르면 차라리 그냥 모른다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닐까?
모르는 것을 아는 것 처럼, 엉터리, 거짓으로 꿰어 맞추어 설명하는 것과,

자연현상을 초월하고 인간의 과학 수준을 초월하는,
절대자를 믿는 것은 사뭇 다른 것 이라는 의미이다.



나는 나를 우주의 티끌 같은,
있으나 마나한, 의미없는 존재로 인식하는 이론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고,
이런 어처구니 없는 발상을 단호히 거부한다는 의미이다

나는 내가 본래 존귀한 존재이며, 내가 그 존귀한 존재임을 바로 깨닫고 믿는 순간,
죽임 당하기 위해 태어난, 멸망을 향하여 자연의 흐름따라 흘러가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권세를 부여 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믿는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짐승과 같은 자연이라는 시공 속에 함께 존재하면서도,
서로 구분이 되고, 분별되어야 하는, 서로 그 질에 있어서 완전히 다른 존재인 것이다.

짐승이 자라서, 진화(?)해서, 돌연변이 현상에 의해서 인간이 된 것이고,
단세포 동물의 어떤 것은 자라서 인간이 되고,
또 다른 동료들은 아직 그냥 단세포 동물인 채로 남아 있는 것 같은 존재일 수 없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이 인간이 짐승과 구별됨을 생각해 볼 때,
인간은 먹이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자유의지로 선택하여 하는 것 이라는 의미이다.

일함을 선택할 수도 있고, 일하지 않음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할 수 있으니까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한 것이다.

일을 해야 함은 마땅한 것 이나,
인간은 짐승과 달리, 악을 행할 수도 있는 존재로서, 일을 거부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럴때는 성경의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는 말씀 처럼, 굶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만일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면서도 아직 살아있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기생한다는 것으로 밖에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짐승만도 못한 벌레같은 인생인 것이다.
짐승은 그래도 지가 줏어서 먹고, 못먹으면 죽기라도 하는데,

벌레는 기생해서 뜯어먹고, 빨아먹으면서,
그 숙주의 생명을 갉아 먹으면서 자신의 생존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일을 내가 자유의지로 하는 사람과,
억지로 할 수 없이 밀려서 마지못해 억지 춘향으로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능동적으로 일을 하는 것은,
주인된 의식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것이라 할 수있을 것이나,

억지로 마지못해 질질 끌려서하는 것은,
노예의 마음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신나게 일을 할수도 있고,
질질 끌려서 노예처럼 부림받는 일을 할 수도 있고,

짐승처럼 자기 먹을 궁리만 하는 일도 있을 수 있고,
벌레처럼 남에게 기생하면서 생존하는 존재 이외에는 아무것도 못되는 인생도 있을 수 있다.



나는 어디에 속해 있나?

나는 어디에 속하려고 애쓰고 있나?

나는 어디에 속해야 할 것인가?
































@


댓글 0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64 위대한 백성의 나라 대한민국 ! 대한국민 만세!!!@ 정광설 2009.03.30 350
163 죽은 목숨, 산 목숨! 정광설 2009.03.18 349
162 사람은 생각의 자유가 없다! 표현의 자유도 없다! 정광설 2008.08.04 349
161 불의와의 타협과 적응은 다른 것이다! 정광설 2009.03.28 348
160 염병에 걸리고 싶어라!@ 정광설 2009.06.17 347
159 불면은 불편의 대상은 될 수 있을지언정, 두려움의 대상은 아닌 것이다! 정광설 2009.06.02 347
» 일을 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먹이활동을 하며 생존할 것인가? 그나마도 아닌 기생하는 자일 것인가? 정광설 2009.04.03 347
157 나는 항해중인가, 단지 표류하고 있을 뿐인가? 정광설 2009.01.08 347
156 영혼을 두드리는 노래 ! 정광설 2009.05.22 346
155 사행심 대박의 계절에 사행심을 생각해 본다!!!(딸 목을 귀신 세마리가 감고 있대요! 굿해야 된대요!) @#$*+0ㄱㄷㅈㅊ 정광설 2008.11.06 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