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을 짓은 있다!

정광설 2009.04.15 17:58 조회 수 : 304


  "왜 하필 맞을 짓을 하셨어요?"라고 물으면, "실수를 할 수 도 있는 것이지, 때린 것
이 문제지, 맞을 짓이라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면서 화를 내기도 한다. 어떤분들
은 그 '맛을 짓'이라는 말이나 생각은 바로 남존여비의 구태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다
는 아니지만 상당히 맞는 말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임상의사로서 현장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가지 사건과 사안들을 대하면서, 그
러한 생각이, 즉, "때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 맞을 짓이라는 것이 어디 있냐?"라는
생각이, 옳은 이야기 일 수 는 있어도 결코 현명하거나 적절하지 않은 생각일 경우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많이 있다.


  오늘도 40대 후반의 부인이 방문을 하였다. 25년가까이 결혼생활을 한 분으로, 다
큰 자녀들을 여러명 둔 분이다. 찿아온 이유는 남편이 무섭다는 것 이었다. 무섭고 두
렵고 겁나고 도망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요즈음은 아니지만, 10여년 전 까지만 해도
맞기도 많이 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선지 평소에는 잘 대하고, 가깝게 잘 지내다가도,
남편이 화난 모습을 하기만 하면, 주눅이 들고 위축되고 두려워서 많이 괴롭다는 것이
었다.


  왜 남편이 화를 내는 지를 물어보았다.

  "별것도 아닌 사소한 것 가지고 그래요. 왜 말을 안하냐고 그러면서 화를 내기도 하
구요. 그런데 내가 뭐라고 말만하면, 너 땜에 그렇다는 얘기를 자주해서, 더 말을 못하
겠어요."하면서 머뭇거리며, 의사의 질문인, "왜 남편이, 어떤 경우에 화를 내게 되는
가?"에 대한 답변 보다는, 본인의 생각만을 이야기하면서 머뭇거리고 있다.

  사소한 것에 화를 낸다는 것은, 남편이 화를 내는 상황에 대한 관찰과 인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그것은 사소한 것이다!"라는 자신의 판단과 가치관에 입각한 생각
인 것 아니냐고 이야기하니, 그제서야, "그렇겠군요!"하면서도, "하옇든 별 것 아닌
것을 가지고 화를 내요."라며 여전히 별 것 아니라는 본인의 판단과, 본인의 가치판단
기준에 입각한 결론을 이야기 하고 있다.


  어제 있었던 사건을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보자니까, 저녁을, 자신은 할 일이 있어서
그 일 열심히 하고 있는데, 남편이 그냥 딸아이 하고 먹는다길래, 그러라고 그냥 놔두
고 자기는 하던 일을 계속 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때 열심히 하고있던 일이 집안 일이고, 그때 서둘러 꼭 해야할 일이고, 남편에
게도 유익한 일인 것은 분명하긴 하지만, 그래도 평소에 배고픈 것을 못참는 성격이고,
아이들만 우선시하고 자기는 맨날 뒷전으로 제낀다고 불만을 토로하던 남편의 스타일
로 보아, 본인이 알아서 먹는다고는 했을지라도, 부인이 서둘러 차려줄 생각 안하고
딸하고 먹게 그냥 놔두면, 삐질 것이, 잠깐 이야기 들은 의사도 금방 눈치챌 수 있는 그
런 상황을, 이 아내는 그냥 별것 아닌 일로 치부하고 지나간 것이었다.

  그리곤 눈치로 보아 남편이 또 삐진 것 같으니까, 몸이 궂고 입도 얼어 붙어서, 평소
그럴 때 말을 안하면 더 삐치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자기 성격이 그럴 때는 말이 더
안나오는 것을 어쩌란 말이냐면서, 아무말 안하고 혼자서 새벽기도 갔다 오니 확실히
더 삐져 있었다는 것이었다.

  좀 달래주고 가지 그랬냐니까, 성격상 잘 안된다는 것 이었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힘들게 느끼며, 개선되기를 원하는 것은, 남편의 화내는 성격
에 대한 적절하고 현명한, 반응, 대처방법의 발견이었다. 그리고 그래서 남편이 화내지
않을 수 있게 만들수 있게 되는 것이 가장 큰 바램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리곤 끝이라는 것이다.


  자신은, 이제까지 그 남편의 화를 돋구던 자신의 행동패턴은, 자신의 성격이기 때문
에 계속 그럴수 밖에 없고, 남편은 성격이 잘못된 것이 틀림없으니까, 개과천선해서
고쳐야 될 것이라는 생각 뿐 이었다. 남자가 좀 대범해져서, 그깟 사소한 일에 화내지
않는 성격으로 변화하는 것이,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에 머
물러 있었다.

  그리고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남편을 화나게 만드는 자신의 그 행동을 고칠 의
사는 별로 없었다. 왜냐하면 말 그대로 사소한 것이고, 또 흔히 생활 중에 있을 수 있는,
아주 사소한 것을 어떻게 일일히 바꿀 수 있겠느냐는 생각에서인 것이었다.


  예를 들면, 남편이 아이들보다 자신의 우선 순위가 밀린다고 불평하고, 자신이 아이
들 먼저 신경쓰고 관심갖고, 아이들만 챙기거나 할 때, 화를내고 삐지곤 하지만, "그래
도 그렇지, 아무려면 애들을 먼저 챙기게 되는 것이 보통 엄마들 아냐?"라고 계속 생각
하고 있는 것 이었다. "어른이 참아야지, 뭘 그런걸 가지고 화를 내, 내기를!"하는 생각
을 하고있는 것이다.

  싫컷 남편의 성격이 보편적인 성격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는, 막상 그 특별난 성격의
소유자인 남편을 대할 때는, 일반적인 기준에 입각하여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일로 인하여 어제도 남편은 화가 났고, 본인은 또 다시 반복하여 벌어진
비상상황에, 살얼음 위를 걷듯 조심하며, "이게 무슨 짓인가? 이게 사는 것인가?"라는
생각과 자괴감에 빠져드는 것이었다.


  사나운 개, 밥 먹는데 앞에서 알짱대다 물리고는, "그래도 그렇지 주인을 무는 개가
어디 있어!"하는 식인 것이다. 상대가 옳은 것 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상대의 특
성에 맞추어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 적응력을, 순발력을, 나 스스로가, 나 스
스로를 위해 키워나갈 책임이 나 자신에게 있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이, '능동적인 적응'이라는 것이다.

  "더러워서! 관둬! 안살면 그만 아냐!"하면서, 과감히, 적극적으로, 판을 깨는 한이 있
어도, 나는 그냥 내 성격을 고수하고, 상대가 성격을 고치기를 기다리는 것이 적극적이
고 능동적인 것이 아니라,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상황의 변화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
끌어 내는 것이 능동적 적응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내 인생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사안이고, 너무나 괴로운 사안이라고 말하면서도,
막상 그 대응, 대처에 투입되는 관심과 배려와 에너지는 상식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바라는 변화가, 결과가, 결코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아내를 때리거나, 남편을 때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은 이유가 무엇이든 정당화 될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것은 때리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고, 맞는 사람은 '또'
맞을 짓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맞을만한 잘못을 범하지 말아서 맞지 않을 수 있어야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각
없는 개가 주인을 먹이 먹을 때 얼쩡거린다고 무는 것처럼,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
서도, 사람이기 때문에 오히려 개만도 못한 나쁜 사람이, 자기 생각만이 옳다고 생각하
고, 자기만 챙기는 이기적인 사람이 있을 수 있어서, 그런 사람에게 때릴 수 있는 핑계
거리를 만들어 주지 않는 슬기가 필요하다는 의미인 것이다.

  또 하나는,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그만큼의, 그 중요성에 걸맞는 관심과
배려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가지를 이야기 나누었다.

  다른 환자의 경우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왜 때리는 남편이 문제지, 날보고
뭘 또 어떻게 하라구 그래요? 왜 나만 야단치세요?"하면서, 오히려 불평하고, 남편 편
들어 주는 것으로, 맞을 짓을 하지 말라는 소리를, 때려도 되는 경우가 있다는 소리로
왜곡해서 받아들여 화를 내는 경우도 있는데, 이 분은 고깨를 끄덕이며, 자신이 진짜
신경써서 바꾸고, 키워나가야 할 점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감사한 노릇이다.  

  환자를 위해 한다고 하는 이야기이지만, 잘 안 받아들이고, 못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
음을 생각할 때, 고맙고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틀림없이, "남편이 왜 별 것 아닌 사소
한 일에 잘 삐치는 것일까?"하는 이유를 찿아내실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그 이유 중 한가지는, 면담이 진행 되는 중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이들보다 우선 순위가 밀리는, 가장이고, 가정경제를 책임지는, 식구들을 먹여 살
리는 자의 외침을 듣고, 헤아리게 된 것이 그것 이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흐릿하게 떠오르는 것은, 건강한 남편의 왕성한 성욕에 대하여, 남
편이 그렇다는 것을 알기만 하고 있을 뿐이지, 그런 남편의 Sex Partner인 자신의 태
도에 대해서는 별 생각없이, 자신은 별로 원하지 않아 미온적이고, 거부적인 태도를
고수해 왔던 것도 혹시 영향이 있으려나 하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게 된 것이었다.


  "당연히 당신이 때려도 될 행동은 없다!"가 맞는 말 이리라!

  그러나, "맞을 짓은 있다!"라고 생각하면서, 조심스레 인간관계를 맺고, 발전시켜 가
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본다.  
  
  옳고 그름의 잣대가 아닌, "현명하고 효율적인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행동하는 것인
가?"라는 기준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느 한가지 기준에만 얽매이지 않고, 때와 상황에 따라 적절히 대응, 대처할 수 있는
성격의 유연성, 불의와 타협하는 것이 아닌, 서로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효과적으
로 대처할 수 있는 가치관의 확립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0ㅅㄱㄷㅈㅊ

댓글 0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64 왜!@ 정광설 2009.04.24 435
463 자책인가, 깨달음인가? 정광설 2009.04.23 351
462 "니가 상담이 뭔지나 알아 ?"@ㄱ 정광설 2009.04.23 367
461 유연한 성격이 행복을 불러온다! 경직된 성격이 불행을 불러온다! 정광설 2009.04.23 536
460 "난 전도자의 사명을 받았거든 !" 정광설 2009.04.22 516
459 나는 비난 받으러 온 것이 아니다! 정광설 2009.04.20 376
458 묘한 심리전이예요! 내가 이겨야 애가 공부를 해요! 정광설 2009.04.20 344
457 가정(假定)할 수 있는 능력은 축복이다! 정광설 2009.04.20 321
456 진짜 문제는 ? 정광설 2009.04.16 434
» 맞을 짓은 있다! 정광설 2009.04.15 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