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심리전이예요! 내가 이겨야 애가 공부를 해요!

정광설 2009.04.20 12:46 조회 수 : 344



"아이가 이기면 당연히 공부를 안하는 것이죠.
이번에는 공부를 하나도 안했어요. 애가 하기 싫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어요."

30대 후반의 외동 아들을 둔, 요즈음의 보통 엄마들처럼,
아이만을 위해 목숨 걸고(?), 인생 걸고, 남편은 안보고, 아이만 보면서 사는 엄마의 말이다.

엄마라는 존재는 그냥 그 아이를 자신이 낳았기 때문에 엄마인 것이 아니라,
즉 생물학 적으로 어미인 것 때문에 엄마라고 자타가 인식하는 그것 말고,

내 아이가 가진 것이나 능력보다는,
내 아이 차체에, 내 아이의 본질에, 내 아이의 속사람, 인격의 성숙도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럴 수 있어야 엄마라고 일컬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이를 사랑으로, 자신의 인생을 바쳐 양육하는 사람일 수 있어야,
엄마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양육은,

아이의 능력이 크도록 돕고,
옆에서, 아이가 시행착오의 과정을 경험하며 힘들어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바른 길에서 벋어나지 않게 끔 가끔 슬쩍 슬쩍 조금씩만 도와주며,

가치의 전수는 확실하게 시행하여,
마땅히 할 일에 대한 기준을 차츰 스스로 갖출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아닐까?



사육은,

아이의 능력을 키우고, 기술을 키우고, 지식을 키워서,
엄마가 원하는 수준에 걸맞는, 상대적으로 우월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들고,

공부는 다 때가 있는 것이니, 그 때를 놓치지 않고 능력을 습득하도록 독려하고, 강제하고, 사정하고,
그래서 그 아이가 상대적으로 높이 평가 받을 수 있는 그 조건에만 관심을 갖고,

정작 그 아이 자체에 대해서는,
"다 너를 위한 것이야! 다 앞으로의 니 행복을 위한 것이야!"라는 미명 하에,

아이의 인격은 무시되고, 아이의 판단력은 도외시 되고, 아이의 선택권은 말살되고,
아이의 인격형성은, "그딴 것이 밥먹여 주더냐?"는 천박한 자본주의에서도 주장 안할 것 같은 주장에 밀려 버리고,

조건과 환경의 변화와 확보를 위해 노력하는데 올인하는 것을 자식 사랑인 줄 착각하고,
아무쪼록 내(엄마) 마음에 드는 높은 값을 받을 수 있는,
썩 괜찮은 물건(?)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지않을까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정작 아이는,
내(엄마)가 선호하는 생각하는 능력과 지식과 평판과 평가를 보관하고 있다가,
내(엄마)가 드러내 보이기를 원하는 마음이 들었을 때,
"꺼내라!"하면 꺼내 보이는 꼭두각시나 보관 창고 취급을 하면서도,

그것을 자기의 희생과 헌신을 통해 일구어 낸,
훌륭한 자식의 모습인 줄로 착각하는 부모들이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내가 이기면 공부를 하고, 지가 이기면 공부를 안하니 어떻게 합니까?
지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지가 틀렸다는 것을 깨달을 때 까지는,
그 아이 의견은 뭉게고, 엄마 주장을 밀고 나갈 수 밖에요!"하면서,

아이의 행복을 위한다고, 이제 겨우 초등 3학년 아이에게, 항상 패배의 값으로 공부하게 만드는 엄마는,
과연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는 엄마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전쟁에 진 적국의 포로들이 노예가 되어 억지로 일에 동원되듯이,
엄마와의 싸움에 져서 공부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빠져서 할 수 없이 공부하는,
묘한 심리전, 줄다리기를, 아이가 이기면 공부를 안하는 결과가 도래하니, 어떻게 해서든지 엄마가 이겨서,
아이가 공부할 수 있는 결과가 도래하게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서 든지 아이를 패배시키기 위해,
아이를 패배자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는, 아이를 패배자 만들기 위해 안달하는,
아이를 불행하고 외로운 사람으로 만들고 키우기 위해 실갱이를, 
사명감을 갖고 아이와 하고있는 엄마와의 대화중 느낀 점이다.



"이게 니 행복이야!"하고, 자신은 일등이 아니어도 좋다는 아이에게 일등짜리 성적표 들이밀면서,
"이게 니 행복인 것이야! 이렇게 좋은 성적표 받아서 남들이 알아주는 상태에 이른 것이,
다 이 살신성인하는 엄마의 희생 덕분이란다!"라고 말하는 엄마의 행위는 진정 아이의 행복을 위하는 것인가?

아니면 일등짜리 성적표 아이에게 디밀 수 있는 것이, 이 엄마의 대리만족이고,
못해본 것에 대한 한풀이이고, 행복이기에 그리 행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억 짜리 돼지 만들려고 발버둥치면서, 그 돼지를 너무나 사랑한다고 자랑하는(?),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믿으며 뿌듯해 하는 사람같은 발상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비싼 골프 채 구해서 닦고 좋아하는 것이나, 애완 동물 가꾸느라 마음 쏟는 것이나,
비싸고 귀한 낚싯 대 손질하느라 밤을 지새는 사람처럼, 내 마음에 드는 것(?)을 만들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것을,

마치 애완동물 위해서, 골프채 위해서, 낚싯대 위해서 헌신하는 것으로 착각하며,
이를 몰라준다고 골프채를 원망하는 것 같은 생각과 감정에 휩싸여 있는 경우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이를 못살게(?), 불행하게, 패배에 익숙한 자로 만드는 엄마의 행동을 뒷받침하고, 가능하게 하는 논리는,
"이 노력이 아이의 장래의 행복을 위한 투자와 헌신"이라는 착각이다!
행복의 조건을 확보해 주는데, 엄마가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리인 것이다.

그런데 크게 착각하는 것이 있으니,
행복은 만족할 수 있을 때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인데,
인간에게 그러한 만족을 줄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인간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은 없는 것이다.
에덴의 조건과 환경을 거부한 존재가 인간이고, 인간의 마음이고, 인간의 만족의 조건인 것이다.



자족만이 만족을 가능케 할 수 있을 것인데,

이 자족의 마음은,
조건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조건과 환경 가운데에서도 자족할 수 있는,
심성이고, 인격의 성숙이고, 삶을 바로 볼 수 있는 자세이고,

내 삶의 무엇을 보느냐의 자세이고,
삶을 대하는  마음이, 삶에 대한 태도가 얼마나 바르고 신실하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자족하는 마음일 때는,
어떤 조건과 환경에서도 만족할 수 있고, 따라서 행복할 수 있지만,

어떤 조건과 환경에서 만족을 찿을 때는,
결코 만족을 느낄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요사한 마음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아이를 매개로 한 나(엄마)의 만족의 조건을 끝없이 추구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끝없는 불만족의 궤도를 타고 흘러가고 있을 뿐인 것이다.

나는 아이를 패배자로, 패배의 댓가를 치르는 자로, 시키는 대로 하면서 할 것 다 한 줄로 생각하는,
노예근성을, 정성을 다하여 심어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열심을 다해 그렇게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ㅅㄱㄷㅈ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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