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책인가, 깨달음인가?

정광설 2009.04.23 20:43 조회 수 : 351



감사한 일이다.

하두 들어서 이제는 상당히 무뎌지긴 했지만 그래도, "도와달라고 왔더니, 왜 나만 뭐라 하세요?"라는 환자들의 불평은,
"내가 듣기 싫고 거북해서"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의사의 도와주고자하는 진의를 너무 몰라주고, 그 뜻의 전달이 제대로 안되는 것이 답답해서, 듣기가 힘들다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의사의 의도와 진의를 알아듣지 못하고, "왜 정신과 의사 씩이나 돼서도, 내가 불편해 하는 것이 정당하고, 내가 피해의식에 꽉 쪄들어서, 상황을 불행으로 받아들이고 처신하는 것이 맞고, 그래서 이렇게 파괴적으로 반응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맞다는 것을 몰라 주냐!"고, 화를 내기도 하고, 눈을 흘기기도 하고, 때로는 면전에서 정식으로 듣기 싫다고 선포하고 할 때는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몇 십년을 그래도 정신과 의사 노릇 하며,  놀기만 하면서, 세월만 보낸 것도 아니고, 노는 꼴(?)을  못보는 스승 문하에서, 밤을 낮 삼아 힘들어 죽겠을 지경으로 고맙게도 혹사(?) 당하고, 그 덕택으로, 진짜 누구보다도, 젯밥 생각보다는 환자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내딴에는 열정을 갖고 본업에 임했다고 생각하는데, 그 결과가 겨우 이꼴이냐는 생각에 답답한 것일께다.

그래도 왜곡된 인식구조에 바탕을 둔 오판에 근거하여, 확신(?)을 갖고 적극적으로 행하는 '자기불행 주장'을,
당장 웃는 얼굴의 반응이 나오고, 고맙다 소리를 듣고, 그 환자가 듣기 좋아한다고 해서, 동의하고, 공감하고, 역성들어 주는 것은, 그 환자에게, 안 그래야 될, 불행을 확증시켜 주고, 전문가의 뒷받침이라는 소신(?)까지 얹어주는 것이 되서,

불행을 극복하려는 노력보다는 불행을 증명하고 확증받았다는 사실에 더 신나할(?) 것이 뻔한데, 우선 좋은 소리 듣자고 그럴 수는 없다고 나를 열심히 달래며, 초지일관(?)을 쪼금은 부드럽게 하자고 스스로를 달개며 지내던 요즘음인데,
진짜 오랫만에 힘나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욕 또 한번 더 얻어 먹지 뭐!"생각하며, 남편 땜에 힘들어 죽겠다고 찿아온 분에게,
"맛을 짓 하니, 맞는 것 아니냐!"고 말해서 보내 놓고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궁금해 하던 중 이었는데,
오늘 그분이 나타난 것 이었다.

조금 쫄밋거리는 마음으로 환자분 얼굴을 바라보는데, 진료실에 들어오는 표정이 상당히 밝은 것 이었다.
원래 웃는 얼굴의 표정을 짓는 분이라는 생각은 있었지만, 억지로 하는 표정관리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지는
밝은 표정이었다.



"자ㅡ 좀 어떠셨습니까?"  자리에 앉도록 안내하고, 나도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환하게 웃으며 날 쳐다보면서 하는 첫마디가, "내 고정관념이 깨졌어요!"하는 것 이었다.

"이크! 이게 무슨 말이지?"하고 귀를 기울이는데,
그 말에 뒤이어서 이곳을 다녀간 뒤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 이었다.



"나는 내가 신사임당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어요. 내가 정답이고, 나같은 여자는 진짜 드물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지요.  많은 형제 자매 중의 막내로서, 어려서부터 귀염도 많이 받고 컷지만, 항상 모든 면에서
모범적이고 똑 바르고, 똑 부러지는 아이였어요."

"진료를 끝내고 돌아가면서 머리가 텅 빈 것 같았어요.  선생님에 대해 어느정도 이야기를 듣고는 왔지만,
그래도 남편이 틀려먹은 것은 변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나를 동조해 주실 줄 알았죠."

"내 생각과 기대와는 너무나 다른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중에도 그랬고, 돌아가면서도 멍한 것이,
머릿 속이 텅 빈 것 같았어요." "내가 여기를 뭣하러 왔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선생님과의 대화를
곰곰히 되새겨 보았어요.  특히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많이 생각해 보았어요."

"그러다가, 아! 정말 남편이 나같은 여자하고 살면서, 진짜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나는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그 정답만을 생각했지, 상대에 대한 생각이나,
내 행동, 내 주장으로 인한 효과에 대한 생각이, 너무 부족했던 것 같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 바꿔서 보니까, 나는 정말로 피곤한 여자였더라구요."
웃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이었다.

남편이 권유해서 오기는 했지만, "잘못은 지가 해놓고 왜 나를 정신과에 가라는거야!"하고
속으로는 마땅치 않았었는데, "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남편에게도, "잘 갔다 온 것 같다! 당신 정말 나하고 살면서 참 많이도 피곤했겠다!"하니까,
남편이 웃으면서, 그거 보라며 좋아하더라구 말하는 것 이었다.



생활이 변했다는 것 이었다.
그전 같았으면, 삐치고 화내거나, 암상을 하고 입을 닫아버렸을 상황인데도, 생각이 바뀌니까 괜찮았다는 것 이었다.

기분이 달라졌다는 것 이었다.
그전 같았으면, "내가 왜 이렇게 이런 대접을 받고 살아야만하나!" 하고, 슬프고 우울하고 불행했을 상황이,

"아! 나와 이렇게 다를 수 도 있구나!"하고 생각하며, 상대의 성향을 이해하고 대처하니,
오히려 보람되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 이었다.



내가 물었다.

"자책입니까?  아니면, 깨달음입니까?"

나를 처다보며 무슨 의도의 질문인지 알겠다는 듯이 씽긋 웃는 얼굴로, "깨달음이죠!"하고 대답하는 것 이었다.



"브라보! 한 껀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인생이, 한 쌍의 부부가, 불행에서 행복으로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아직 갈길은 머나, 그러나 방향이 바뀌었으니, 이제는 가면 갈수록 행복에서 멀어지고 불행과 가까워지는 것이 아닌,

이제는 그 전과는 반대로 가면 갈수록 행복의 나라로 가까이 나아가는 길로 갈아탄 것이니,
그 행복의 나라에 도착하기 전에도, 이미 행복을 누리며 사는 인생으로 바뀐것 아니겠습니까?

감사합니다!"



나를 정신과 의사일 수 있게 해주신 분에게 감사하는 기도를 속으로 드리며, 그 환자분에게 이야기했다.

"축하합니다! 자책은, 좌절과 허무와 우울과 불행을 가져오지요.
자책을 넘어선 깨달음은, 희열과 보람과, 삶의 희망과, 삶이 아름다울 수 있고, 기쁠 수 있고,
평안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 입니다.
작은 자극에서, 큰 깨달음 얻으신 것을 축하드리고, 그리고 감사합니다!"라고... 그리고,
살다가 또 상의할 문제가 생기면, 일르러(?) 오라고 격려하고 진료를 마쳤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맨날 이런 환자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말도 안되는 허황된(?) 꿈을 꾸어본다. ㅎㅎㅎ





























@#$+0ㅅㄱㄷㅈㅊ충국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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