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걸 안보면 없는 거다!

정광설 2009.05.29 22:38 조회 수 : 414



  굶어 죽은 자는, 죽어서 불쌍한 것이 아니라, 굶어 죽어서 불쌍한 것이고, 게을러서,
안먹어 굶어 죽은 것 이라면, 굶어 죽어서 불쌍한 것이 아니라, 굶어 죽어도 싼 인생인
것이다.

  일가 친척 아무도 없이, 피붙이 한 명도 없이 살다가신 어느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이
다. 혼자서 외롭게 살다가 쓸쓸히 굶어 죽어간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평소에도 별로 이웃 간에 왕래가 없어, 가끔 얼굴을 스칠 정도로 지내오던 분이었다.
몇날 며칠 가도 기척이 없고, 옆 집 사람이 문을 두드려봐도 반응이 없어, 동사무소에
연락하여 억지로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할머니는 평소 누워 지내시던 요 위에 반듯이
누운채 돌아가셨던 것이었다. 돌아가신지가 꽤 됬는지 부패가 많이 진행된 상태였다.

  혼자 지내시다가, 병들고, 수발 들어주는 사람은 없어, 그냥 굶어 돌아가시고만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평소 드나드는 사람도 없었고, 언젠가 듣기로 세상에 피붙이 하나도
없다던 할머니였다.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아퍼 힘든 것 만도 서러운데 굶어 돌아가실 지경이었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그 자리에 돕기 위해 모였던 모든 사람들에게 별 생각이 다 들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신고한 동네 사람이나, 신고받고 처리하러 나온 공무원이나, 모두들 눈시울을 붉히며,
평소 가깝게는 안지냈어도, 자상한 웃음을 지어 보이시던 할머니를 떠올리며, 죄책감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서로 조심스레 눈치를 보아가며 시신을 수습하고 깔고 계시던 낡은 요를 걷게 되었다.
볼품없이 납작하게 눌려있어, 겨우 이걸 깔고 지난 겨울을 홀로 추위에 떨며, 병들어
고생하다 긂어 죽었을 이웃 할머니를 생각하며, 도우러 왔던 동네 주민들은 더한 연민
과 죄스러움에 눈시울을 적시지 않을 수 없었다.

  조심 조심하며 요를 개켜 들고 나가려는데, 요 밑에 납작 붙어있던 것이 "툭ㅡ" 소리
를 내며 떨어지는 것 이었다. "오죽 추우셨으면 이런 것까지 요 밑에 덧대으셨을까?"
생각하며 줏어보니, 그것은 아주 오래된, 빛 바랜 예금통장이었다.

  가난한 노인네가 얼마나 가난에 한이 맺혔으면, 빛 바랜 통장을 깔고 있다 돌아가셨
을까를 생각하며, 모두들 궁금한 마음에 그 통장을 펴보았다. 그리곤 갑자기 여기 저기
서 훌쩍거리고 한숨쉬며 어수선하던 분위기가, 갑자기 쥐죽은 듯이 조용해진 것 이었다.

  통장에 제일 마지막 칸에 쓰여있는 은행잔고에  2 자 옆에 동그라미가 8 개가 있었던
것이었다. 2억 엔 이었다.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20억 원 이었다. 현찰이.......

  당시에 일본에 교환 교수로 가 있던 친구의 월급이 40만엔 정도였으니까, 얼마나 큰
돈인지 가히 짐작이 갈만했다. 그것도 통장 잔고니까 현찰인 것이 아닌가? 20억 원의
현찰을, 낡고 납작하게 눌린 낡아 빠진 요 밑에 깔고, 그 위에서 혼자 아퍼 고생하다,
병들어 굶어 죽은 것이었다.

  이 할머니가 어떤 기가막힌 사정이 있어 그리될 수 밖에 없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드러난 정황을 놓고 생각해 볼 때, 혼자 아프고 병들어 굶어 죽은, 20억원의 현찰을
요 밑에 깔고, 굶어 돌아가신 이 할머니의 죽음은, 과연 불쌍한 죽음인가, 불쌍한 죽음
이라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아니면 그렇기에 더욱 불쌍한 죽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일까?

  죽은 이를, 그 사람 형편이, 그 사람 생각이,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떠하였는 지를 알지
못하는, 살아있는 자가, 자신이 아직은 살아있다고, 단순히 자신의 기준에 입각하여
뭐라고 이러쿵 저러쿵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지만, 어쨌든 어리석은 죽음의 모습이
라고 말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느닷없이 어느날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 정신이 없어졌거나, 치매에 걸려 주변정리
할 겨를이 없어서, 자신의 통장에 현찰이 20억원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잊은 것이 아니
라면,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있는 돈 안쓰고 굶어 죽은 사람은, 측은한, 불쌍한 자인가, 죽어도 참 이상한 죽음을
택한 자인가? 변호사에게 의뢰하여, 공증하고 신탁하거나, 믿을 만한 종교기관에 공개
적으로 의뢰했다면, 세상 떠나는 날까지, 잘 공양받고, 죽은 다음에는 어려운 이들을
돕는데 써달라고 유언했으면, 수많은 사람이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고, 할머니에
대한 기억도, 고맙고도 훌륭한, 길이 본받을 표상으로, 많은 후손들의 기억 속에 길이
남을 수 있었으련만, 그냥 아무 유언없이 깔고 누워있다 죽는 바람에, 마치 길에서 줏
은, 임자 찿을 길 없는 돈처럼 되어, 국고에 일반 잡수입으로 귀속되어, 어느 누가, 힘
센(?) 부서에서 끌어다 쓰면 없어지는 돈이 되어버리고 말았으니, 이를 어떻게 생각해
야 옳을 것인가?

  얼마나 고생하며 안 쓰고, 안 먹고, 모진 일 겪어가며 벌었을 것인지 안 봤어도 뻔한
노릇인데, 참으로 기가막히고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언젠가 들은 이 기막힌 사연을, 이해를 돕기위해 조금 각색해서 정리해 본 것이다.)


  그런데 이 보다 더 기가 막히고,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이 노인보다도
훨씬 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깟 돈 20억 가지고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값이 나가는, 귀한 자신의 생명을, 인생을,
받고 태어난 귀한 능력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행복한 인생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지 아니하고, 발휘할 것을 거부하고,

  때로는 자신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 찿아보려는 생각도 안해보고,
가르쳐줘도 안듣고, 없다고 치부하고, 있는 것을 알아도, "신경질 나서 안쓸텨!"하면서
행복할 것을 거부하고, 사랑 받아 먹기를 거부하고,

사랑에 굶주려 불행하고, 관심 밖에 머물러 허망하고 허탈한 가운데, 죽는 것 만도 못한
자기의 인생을 노래(?)하며, 죽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라는 어리석기 짝이없는 말을
서슴치 않으면서,

  정작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행복하고 싶다!"고 대답하고, 요구하는
사람들은, 이 불쌍하고 어리석은 굶어 죽은 이 노인과 무엇이 다를 바가 있다 할 것인가?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현명한 자의 인생이라면, 있는 것을 안쓰고, 못쓰고, 모르고,
혼자서 외롭게, 세상을, 이웃을, 사람들을 원망하며, 병들고 굶어 죽어가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 없는 인생이 아니라,

  있는 것을 찿아 최대한 발휘하며, 사랑을 나누고 기쁨을 함께 하며, 행복을 맘껏 누리
는 삶을 일구어 가는 인생이고, 하루 하루여야 할 것이다.
































@#$+0ㅅㄱㄷㅈㅊ

댓글 0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94 안 보는 것과, 안 보이는 것의 차이는? 정광설 2009.06.01 391
493 회복(回復)! 정광설 2009.06.01 483
492 포기가 아니라 극복이고, 체념이 아니고 초월이다!@0ㅅㄱㄷㅈㅊ두 정광설 2009.05.30 444
491 투명인간@#$+0ㅅㄱㄷㅈㅊ 정광설 2009.05.30 463
490 선물!@ 정광설 2009.05.30 381
» 있는 걸 안보면 없는 거다! 정광설 2009.05.29 414
488 고마운 농부를 그리어 본다! 정광설 2009.05.29 356
487 행복한 삶은? 정광설 2009.05.29 418
486 유언장!@ 정광설 2009.05.25 331
485 그래도 죽으면 안된다! 정광설 2009.05.25 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