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물켜다!!!

정광설 2009.07.23 08:15 조회 수 : 639


작년에는 호박을 겨우 세포기, 그것도 다른 때보다 거의 한달은 늦게 심어서,
과연 몇 통이나 따먹을 수 있으려나 하고 마음을 비웠더니(?),

"아니 이게 웬일인가!", 계속 호박이 열리는 바람에, 거짓말 쬐끔 보태면 근 백통 가까이 따먹을 수 있어서,
이웃 부근 등지에 '우리집' 표 호박 안먹어본 집이 없었던 것이다.

올해는 작년의 일을 교훈삼아, 꿈도 야무지게, 호박 모종이 시장에 나오자 마자 사다 심고,
퇴비도 전문가가 시키는대로 뿌리 내린 년 후에 줄기에 닿지 않게 조심 조심 주고,

거기다 작년에는 세포기에서 백통 가까이 땄으니, 올해엔 열 세포기인가를,
단호박, 길 쭉한 호박, 뙹그란 호박, 그리고 다가올 가을 저녁의 운치를 더하기 위해 쑤세미 세포기까지 추가했으니,
작년 대비 삼백통은 아니다 손 쳐도, "줄 잡아 이백통은 문제없다!" 라고 생각했건만,

"이게 무슨 조화 속이란 말인가?"
단호박은 달랑 두통으로 땡인듯 더 이상은 꽃 조차 필 기미가 없고,
쑤세미는 호박에 쳤는지, 호박 잎 틈새에 겨우겨우 갸냘픈 줄기만 비실거리며 명맥을 잇고 있고,

호박은 처음에는 몇 통 기대처럼, 기세좋게 열리더니, 벌써 근 두주가 넘도록 후속타로 크는 놈 이 없으니,
이백통은 커녕 스무통이나 따면 훌륭할 듯하다.



이 못난 욕심쟁이는, 꿈이 너무 야무지다 못해 과욕이 되어 부른 결과인 줄은 생각도 못하고,
혹 영양부족인가 싶어서 남은 퇴비를 듬뿍 부어준지가 어언 열흘도 넘어가는데,

호박 줄기들은 나를,
"인구 밀도 높아 숨도 못쉬겠다! 이 주인 ㄴ ㅗㅁ 아!" 하며 째진 눈으로 흘겨보고 있는 것 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 주 부터는 시들시들 늘어지는 줄기가 생기기 시작한 것 이었다.

"나는 손도 안 댔는데 누가 줄기를 건들다 끊어지게 해서 이리됐냐!" 혼잣말로 꿍시렁대며,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어 장인 어른께 화살을 쏘지는 못하고(실제 연세가 많으신 탓인지,
가끔 하시고도 절대 안했다는 강력 오리발에 아무도 못당하는 우리집의 오리발 대장(?)이시다),



고심하다 오늘 드디어 맘 잡고, 원인 조사 현장 검증을 실시했던 것 이었다.

아무리 시든 줄기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 봐도, 부러지거나 찢기거나 꺽인데는 없고,
그냥 잘 뻗어 나가던 줄기가 시나브로 시들 해지고 있는 것 이었다.

순간 장인 어른에 대해 가졌던 심증이 나의 편견이었음이 느껴지고,
"아하! 이것이 바로 과욕(過慾)의 댓가이구나!"하는 생각이 머릿 속을 퍼뜩 스치는 것 이었다.

황금알 을 낳는 거위 배를 갈랐다더니, 내가 바로 그 짝이 난 것이 아니겠는가?

그냥 점잖케 평소대로 심었더라면, 그래도 백통은 가능했을 것을, 삼백통 운운하며, 동네 방네,
온갖 글에 까지, "꿈도 야무지게 이랬습니다!"하고 온통 떠벌려 놨는데, 꼴 좋게 되버리고 만 것 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래도 추수감사절에 바칠려고 초장에 안 따먹은 호박 한 분(?)이,
하늘 높이 매달려서 고히 고히 늙고(영글고)있다는 사실이다.



과욕이 실망과 실패뿐만이 아니라, 의심과 불신과,
왜곡된 심증에 맞는 억지 증거를 창안하게 만드는 능력(?)까지 있음을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내년에도 혹 동네 재개발이 지연되어, 또 한번 호박을 심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겨울 내내 사탄이 아무리 꼬드겨도 절대로 넘어가지 않고,

내년에는 그냥 단지 호박만,
그것도 그냥 똥그란거든 길죽한거든 종묘상에서, "이게 존거유!"하고 주시면,
군말 잔소리 안하고 딱 세포기만 심을 결심을, 오늘의 과욕을 깊이 뉘우치며 하는 바이다.

그렇지 않아도 과욕이 부른 어려움을 단단히 겪고 있으면서도,
메뉴의 겉 모양이 조금 달라졌다고 금방 스스로에게 속아넘어가,
또 다시 똑같은 어리석음을 범하는 나를 돌이켜 보며, "다 클려면 아직 멀었구나!"하는 생각을 안할 수 없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깨우쳐, 내년 농사에는 희망을 걸어볼 수 있음이니, 이를 감사할 따름이다.

하옇튼 올 호박 농사는 완촌히 헛물켰다.

진짜 내년에는 반드시 세포기만 심어야지!ㅎㅎㅎ  



































@#$+0ㅅㄱㄷㅈㅊ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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