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를 만나다!

정광설 2009.09.01 12:29 조회 수 : 488


얼굴이 갸름하게 생긴 그리 크지 않은 키의 여학생이었다.
무엇인가 많이 피곤해 보이는 모습으로 진료실에 들어와 얌전하게 의자에 앉는 것 이었다.

고1이었다.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하며,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표현하기가 어려운듯, 아픈 양상을 이렇게 저렇게 어렵사리
묘사하고 있었다. 열심히 통증의 특성을 의사에게 설명하려 애쓰고 있는데, 실은 몇마디 설명에
긴장성 두통임을 알 수 있었다.

얌전하고 예쁘게 생긴, 충분히 귀염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인상의, 이 눈이 깊은 여학생을 힘들게 한 문제가
무엇이었을까 궁금한 마음으로, 그리고 흔히 이 시대의 고등학생이면 의례껏 겪기 쉬운
공부 때문인가 하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며 물어보았다.



"무슨 신경쓸 일 있었나? 속 상한 일 혹시 있었어?"

"네?  네, 좀 있긴 있었어요."

"어떤 문젠데? 이야기 할 수 있어?"

"동생 땜에 신경을 좀 썼어요.  동생이 학교를 안가서..."

"남동생, 여동생?"

"남 동생요."

"몇 살 인데?"

"16살 중3이예요. 요새 학교를 잘 안가구, 올 해는 가출도 했었구, 동생 땜에 속 좀 썩었어요.",
"사촌 동생이예요."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이런 경우도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여학생은 어렸을 때 부모가 이혼을 하여, 한 살 위 언니는 엄마와, 이 학생은 아빠와 살다가,
5년전 아빠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부모가 다 돌아가셔서 혼자된 사촌 남동생과 할머니와 셋이 살댔는데,
재작년에 할머니마저 돌아가셨다는 것 이었다.

엄마는 재혼하셔서 아기도 낳고 다른 도시에서 살고 계신데, 할머니 돌아가시고,
엄마가 엄마에게 와서 같이 살자고 하셨는데, 그러면 사촌 동생은 시설로 들어가야 되는데
그렇게 할 수가 없어서 둘이 같이 살게 되었다는 것 이었다.



"그럼 자네가 동생 보호자네?"

(배시시 웃으며) "네! 그런 셈이죠."



그런데 그 동생이 말을 안듣고, 성질나면 말도 막하고, 학교도 잘 안가서 신경을 썼다는 것 이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담담하게, 간간히 웃음을 보이며,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것 이었다.

오히려 이야기하는 그 여학생을 안쓰러워 바라보는 의사 선생님의 얼굴을,
"왜 그리 안타까워하세요?"라는 듯이 바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 이었다.

"요번엔 속이 좀 많이 상해서 그렇지, 두통만 갈아앉으면 헤쳐나갈 수 있어요!"하듯, 그 가볍게 웃음짓는 얼굴에는,
피곤하고 지친 기색은 있어도, 불행이나 우울이나 좌절의 빛은 안보이는 것 이었다.

당연히 내가 돌봐주지 않으면 누가 하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나만 자식이야? 막내인 내가 꼭 이렇게 전담해야 되는거야?"하고,
나를 그렇게도 사랑하신 아버지가 병들어 쓰러져 돌아가시게 되었을 때,
그 내 아버지를 돌봐드리면서도 큰 소리치고, 뻐기고, 목에 힘주며, 마치 엄청난 효자라도 되는 듯 여기며,

그러고도, "자식이 나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하자!"고  나 자신을 달래며,
아버님의 임종을 지켜드렸던 지난날들의 내 모습이, 이 작은 천사의 웃음짓는 얼굴을 보며 떠올랐다.



이런 마음이 천사의 마음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곤하지만, 결코 우울하거나 불행한 표정이 아닌, "나 아니면 누가 하나요?"하는 표정으로,
웃음짓는 저 웃음이야 말로 천사의 웃음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분 약을 타가지고 인사하고 돌아서는 여학생의 뒷 모습을 보며, "오늘 내가 천사를 만났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 같으면, "말도 안돼!"라고 할꺼고, 요즘 아이들 같으면, "돌았냐?"고 할 만한 일인데도,
웃으면서, "내가 아니면 동생이 시설에 들어가야 되는걸요!"하면서,
웃음짓는 그 웃음이야말로 바로 천사의 웃음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웃으며 어려움을 감당하는 그 사랑의 마음을 보며, 그 사랑을 실천하는 행동을 보며,
그토록 어려운 상황을 만나, 비록 두통은 앓지만 긍휼의 마음을 잃지 않는 그 아름다운 마음을 대하며,

아 아름다운 천사와 같은 소녀의 소박한 소원이 이루어져, 하루 속히 동생이 정신차려 바른 길로 나아가게 되기를,
그리고 이 작은 천사의 앞 날에 행복만이 가득하기를 기원해 본다.      



나의 마음 속 깊이 들어있는 자만과 오만을, 이 어린 천사의 모습 앞에 비춰보며, 깊이 반성하며,
나의 마땅히 해야할 바를 다시 한 번 조명해본다.

















@#$+0ㅅㄱㄷㅈ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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