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지락

정광설 2009.10.06 15:03 조회 수 : 486



"뭐하는 거야!  뭘 그것도 못하고 꼼지락대고 있는거야!"

간난 아이의 꼼지락은, 사랑스러움이고, 귀여움이고, 미약한 시작이나 창대한 미래의 예약이리라!
그 아기의 꼼지락은 기쁨이고 환희일 수 밖에 없는 것이리라!

그러나 아기를 면해서,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나이를 지난 뒤의 꼼지락은,
게으름을 상징하는 언어이고, 불순종을 내포한 단어이며, 짜증을 담고 있는 표현인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 사고로 다 끊어지고 찢긴, 그리고 현미경을 동원한 4시간의 밤 샘 수술로,
겨우 힘줄도 신경도 동맥도 이어놓고, 상처의 회복을 기다리며 뻣뻣이 궂어져만 가는 손가락을 바라보고만 있다가,

며칠만에 손가락에 힘을 주어보니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무반응인 것도 있지만, 그래도 나머지 세개는
내 뜻을 따라 조금씩 꼼지락거리는 손가락을 바라보며, 손주를 봤어도 한참 지났을 이 나이에
꼼지락거리는 손가락을 보며, 어떻게 해서든지 잘 안 움직이는 손가락을 조금이라도 더 꼼지락거리려 애쓰면서도,
이 나이에 겨우 꼼지락거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챙피가 아니라, 대견스럽고 감사하고 행복을 느끼게 함을 느낀다.

그러면서, "이 나이에 뭘...." 하는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얼마만큼 이룰 수 있어야, 비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데 까지 최선을 다하여서, 그 결과가 얼마가 되든지, 그 결과가 어떠하든지,
그 이룬 것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기쁨과 소망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경험을 하는 요즈음의 나날이다.

이제라도 필요하다 생각되고, 해야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이 나이에 뭘..."하는 패배주의적이고 허무주의적이며,
털프덕 주저앉아 좌절한 상태에서나 있을 법한 발상이 아니라,

꼼지락대는 아기의 손가락이 희망과 성취의 상징이듯, 지금도 무언가 발전의 가능성이 있음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여 겨우 겨우 꼼지락거리는 손가락을 감사와 대견스레 보는 마음으로 노력해야함을 느낀다.



큰 사고를 당하여 아픔과 여러 어려움과 곤란을 당하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잃은 것 보다 얻은 것이, 새롭게 알고 깨달은 것이 많고 크고 소중하다는 것이다.

가족의 헌신적인 사랑과 관심을 확인할 수 있어 내가 결코 투명인간이 아님을 확증케하여, 그들을 위한 나의 삶이 단순한 의무를 벗어난 진정으로 보람된 일 일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남는 장사(?)라 아니할 수 없을텐데,

자칫 매너리즘에 빠져, "인생이 뭐 그저 그렇고 그런거지!"하면서, 주어진 삶으 참 가치를 의식하고 인식하지 못한 채,
단순히 생존하는 것에 머물기 쉬웠던 나의 삶에 대한 자세가, 한대 크게 얻어맞음으로 인해 정신이 버쩍들어,
삶의 소중함과 내가 지금 온전히 살아 숨쉬고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고, 사랑하는 이들을 맘껏 사랑하며,
그들을 위해 나의 삶을 헌신할 수 있고, 나를 지금 이 순간 존재케하신 그 분의 뜻을 헤아려 알고,
그 뜻대로 살고져 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일인가 하는 것을, 덤으로 더욱 마음에 와 다을 수 있도록
체득하는 기회가 되었으니, 참으로 남아도 많이 남았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노년의 좌절과 허무에 젖어 세월을 허송하는 일상이 아니라, 꼼지락거릴 수 있음을 대견스레, 감사히 여기며
생명력 넘치는 노년일 수 있음을, 사고와 아픔을 통해 깨우칠 수 있게 됨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깨달음이 잠시 타오르는 횃불이 아니라,
나의 죽기까지 꺼지지 않는 만년등이 되어 나의 앞길을 밝혀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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