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곶감 깎아 말리라고 땡감을 한 푸대를 줬으렸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감을 깎으려하니 이것이 보통 일이 아닌거라.

"차라리 홍시를 만들어 먹자!"하고, 그것도 웰빙 재래식으로 만든답시고, 숨쉬는 토기 항아리에,
조상의 슬기가 담긴 지프라기까는 방식으로, 켜켜 감을 쌓아 뚜껑 고히 덮어 놓고,
맛있는 나긋나긋, 쫄깃쫄깃, 몰랑말랑한 홍시를 그려보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한 항아리 홍시 쟁여놓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감 한 푸대가 또 들어온 것이었다.

"올 겨울에는 아랫 동네(?)가 홍시먹은 뒤치닥거리 하느라 힘들게 생겼구나!"하면서도,
"괜찮을지도 모르잖아?"하는 희망 섞인 중얼거림 흘리면서 한 항아리를 더,
이번에는 최신식(?)으로 홍시 장사가 가르쳐준 신문지까는 방식으로 감을 쟁인 것이었다.



허리 아퍼 두드리며, 한 항아리 감 쟁여넣고, 지난번 쟁인 감 상태가 어떤지 궁금해서 못견디겠는기라.
"미리 열어 잘못됐다!"원망들을 각오로 살짝 열어보니, 아니 이 무슨 난리인가?

이리 저리 덮어놓은 지푸라기 사이로 들여다 보이는 감 한 귀퉁이에 하이얀 꽃이 피어있는 것이 아닌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하얀, 곱게 피어오르고 있는, 어찌보면 청순미까지 느껴지게 하는 그 것의 정체는
바로 하이얀 곰팡이였던 것이다.

깜짝 놀라 짚을 제치고 이리저리 살펴보니, 어느 것은 꽤 많이 곰팡이가 피어 있었고,
어느 것은 인제 피기 시작하고, 어느 것은 멀쩡한 것 이었다.

열 일 제쳐놓고, 며칠만 늦게 발견했으면 한개도 못건질뻔한 것을 다행이라 중얼거리며,
허리 아퍼 낑낑대며 쟁였던 감을 도로 다 꺼내어, 그냥 빈 책장 위에 늘어놓는 수 밖에 없었다.
하나 하나 닦으면서 보니, 감 따면서 난 그 상처에서 곰팡이가 피어난 것 이었다.



어제의 모임에서 요즘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듯한, 건강만을 최우선시 하는 가치관과 말들의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지적하며 열변을 토하는데,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생각하냐?"는 지적을 받은 것이었다.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다는 말이 뭐가 그리 나쁜 말이냐?",
"사실이 그렇잖냐? 건강을 잃으면 다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냐?"면서,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야!"라는 말이,
"건강을 중요하게 여기고 잘 챙겨서, 인간답게 사는데 건강하지 못함이 방해가 되지 않게 하라!"를 넘어서,

마치 건강이 무슨 추구할 가치라도 되는 듯, 온통 건강하기 위해 사는 것 같은 세태를 꼬집고, 지적하며,
부수적인 것을 삶의 중심에 놓을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여길 줄 아는 풍조가
아쉽다는 말을, "왜 그렇게 세상을 보는 시각이 부정적이냐?"고 듣기 싫어하는 것 이었다.

너무 부분적인 것을 확대해석하고, 침소봉대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었다.
별것 아닌 것을 너무 꼬집어 헤집고, 부정적으로 보면서 열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부정적이란 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난리치고 열내는 것은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열나게 이야기하다가 고춧가루 세례(?)를 받고 흐지부지 중단되고, 본회의를 하고는 모임을 파하였다.

상당히 찝찝한 마음으로, 다소 의기소침해지려는 마음으로 돌아오며 생각해 봤다.
내가 왜 그렇게 위기감을 느끼고, 열을 내며,
변하고, 바뀌고, 회복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감에 빠져드는지를...

그러다 아침의 아름답게까지 느껴지던, 곰팡이 꽃 피어오르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렇다!
지금은 분명히 궂이 숫자로 이야기하자면, 그릇된 생각보다는 그렇지는 않은 사람들이 더 많으리라.
그러니까 그래도 세상이 온전한 모습으로 굴러가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소위 공산주의 혁명이라는 것이, 백성의 과반수가 공산주의자라서 성공할 수 있었고,
그의 패망이 백성의 과반수가 넘는 사람들이 폐지를 결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그냥 조금만 더 놔두었더라면, 홍시를 한개도 못먹었을 것이 너무도 뻔한 것이기에,

이제 막 피어오르는, 아름답게까지 느껴지는 곰팡이를 제거하다 못해, 항아리로 부터 감의 자리를 옮겨야 했듯이,
이 사회적인 변질로의 흐름을 바로 잡아야 할 필요를 절감하는 것이다.

아직 여유가 있다고 주장하다가, 물이 턱밑에 차오른 때에는,
이미 운신이 어려워, 파도에 휩쓸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침소봉대(針小棒大)가 아니고 유비무환(有備無患)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과,
생각을 안 해봤던, 다른 가치관에 근거한 말을 들음으로 인한 묘한 당황과,
익숙하지 않은 논리전개에 대하여 일어날 수 있는 듣는 이들의 저항감을,

사정과 구걸이 아닌, 적절한 설명과 설득과 자극으로,
지금은 작고, 적지만, 이런 것들을 그냥 방치하고, 방관하다가는,
인간으로서의 바른 가치관이 오염되고 변질될 수 있으며,
인간으로서의 삶이 피폐해질 수 있음을 깨닫게 도와주고 자극을 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개발할 책임이 나에게 있음을 새삼 확인하는 기회였다.



잘 숙성될 것으로 믿고, 짚새기 사이로 묻어둔 감들의 작은 상처 속에서, 소리소문 없이, 은근히, 말 없이 피어올라,
발견 못하면, 모든 감이 홍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냄새나는 감 썪은 물로 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곰팡이같이,

우리의 사고체계와 가치체계 속으로 알게 모르게 스며드는,
비본질을 더 중요시해도 되는 것 같은 오염된 생각들에 대하여,
민감할 수 있는 마음의 중요함도 새삼 느끼게 하는 저녁이었다.

소리없이 피어오르는 곰팡이 처럼,
별문제 아닌 듯 우리의 영혼을 마비시키고 변질시키는,
우리가 흔히 쓰는 말들의 위험성에 대하여 절박한 위기감을 아니 느낄 수 없는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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