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가 미쳤다고"?

정광설 2009.11.19 08:21 조회 수 : 565

아마 초등학교 4학년 때일꺼다.
한문 받아쓰기 10 문제 중 2갠가 맞고, 비인간적(?)으로 답안지에 부모님 도장 받아오라시는 바람에,
어린나이에도 20점짜리 채점표 아버지 앞에 차마 디밀 엄두가 안나서,
고민하느라 밤을 하얗게(?) 지새우던 기억이 새롭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어디 아프냐는 아버지의 물음에도,
"아뇨!"하고 시침 뚝 떼고, 속으로만 끙끙대다 날이 밝은 것 이었다.

도장 안 찍어 가면 뚜둘겨 맞을 것은 뻔한 일이고,
아버지 기분이 별로인 것으로 보아, 지금 집에서 이 시험지를 꺼냈다가는,
아버지의 그 바윗돌처럼 누지르는 한숨과 섞여 나오는 온갖 잔소리를 다 들어야 할판이니,

"이를 어쩌면 좋을까?" 전전긍긍하는 가운데, 아침 먹는 시간도 지나고,
학교로, 어차피 아빠 직장도 같은 방향이라, 아버지 손잡고 출발하게 된 것 이었다.



내 손을 꼭 잡아주시는 아버지의 손이 따스한 것 따위는 느낄 정신도 없이,
"언제쯤 이 답안지를 꺼내야 하나?"하고 찬스만 노리면서,
뭔가 물으시는 아버지 물음에 건성 건성 대답하며, 고민 고민하다,
결국은 아버지가 출근하시는 학교 교문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도착하고만 것 이었다.

학교가 가까워 지면서 아버지에게 인사하는 누나들도 점점 많아져 가고,
"지금 아니면 안돼!"하는 소리를 마음속으로 외치며, 드디어 "아버지!"하고 아버지를 부르며,

책가방에서, 꾸겨 넣었던 그 문제의 답안지를 꺼내 보이며,
"저기 도장 받아 오래요!"하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씀을 드린 것이었다.



"이게 뭔데?"하고 펴보시던 아버지의 얼굴이 변하던 광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인상이 일그러지려는데, "목사님!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하는 어느 누나 땜에 웃는 얼굴이 되시던,
그때 옆눈질로 살펴보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다.

실망어린 눈으로 날 내려보고 한숨을 내 쉬시면서,
"앞으로는 길에서 이러지 말고 집에서 미리 받아라!"하시며,
바지춤 도장 주머니에서 도장을 꺼내어 찍어주신 것 이었다.

"으휴! 십년 감수 했다!"(비록 열 살 이었지만)하고 큰 숨 내쉬며,
학교로 그때부터는 보무도 당당히 걸어갔던 것이었다.  



어린아이에게 말도 안되는 한문 받아쓰기 시험이나 보게하고,
20점짜리 개망신 당하라고 도장받아 오라고 비인도적인 숙제나 내고,
그래봤자 앞으로도 또 몇십점 못받을게 뻔한데,
학교라는 데를 다닌다는 것은 완전히 미친짓이라고 생각했어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

그날 방과 후에 집에 오면서, 집과 가까워질 수록 뭔가 모르게 불안이 커져갔다.
집에 오니 아니나 다를까, 엄마님(?)께서 평소에 엄마가 많이 마음이 안좋을 때 드러내는,
무표정한 얼굴로 정색(누나들과는, "엄마 똥색했다!"라고 말했지만)하고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여러말 없이 밥상(엄마의 훈계는 주로 밥상머리에서 이루어졌다.) 앞에 나를 앉히시고는 일장훈계를 하시는 것 이었다.
"누구에게나 백점이라는 점수는 똑같이 주어지는 것이다.
이 똑같이, 공평하게 주어진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너가 노력하는 만큼 너의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니,
앞으로는 그점을 생각하며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이 되라!"하시며,

스스로 해야할 것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사람은,
사람 취급도 받을 수 없는 법임을 뼛속 깊이 체험하도록,
더 이상 야단도 안치고, 물론 아는 척, 달래주는 것은 어림도 없고,
찬바람만 휘휘돌던 어린시절의 야단맞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제 오십년을 훌쩍 넘긴 지금도, 그 날 훈계받던 것을 생각하니 등골이 으시시해지는 것 같다.



고교시절에 선생님 말은 죽어라고 안듣고, 공부는 안하고, 교복 윗 단추 두개 쯤는 풀고 다녀야,
비로서 싸나이같은 우쭐댐이 생활화 되어 있고, 교칙 위반에서 참된(?) 자유함(?)과 스릴을 맛보며 지내던 때에,

"인생은 눈 앞에 주어진 화폭에 그림을 그리는 것 과도 같은 것이다!"라고 설파하시며,
앞으로의 인생을 준비하는데 전혀 신경 안쓰고, 정신 못차리고 있던 어리석은 제자들을,
염려와 안타까움의 눈으로 보시며, 보다 더 마땅히 행할 바에 신경쓸 것을 명(命)하시던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주어진 인생이란 화폭에 너희는 무엇을 그릴꺼냐?", "똥을 그릴 것이냐, 아니면 명예냐, 아니면 가치냐?"
입에서 튀는 파편에 교단 바로 앞 자리는 우산이라도 써야할 정도로 열변을 토하시며,

일제시대에 일본 사람들 주로 다니는 인문계 학교 다니며 당했던 왕따와 이지매를 견디어 내며,
앞날의 인생을 대비하고 노력했기에 오늘 이런 명문 고등학교에서 선생일 수 있는 것이라 말씀하시며,

내가 그리 대단치 않게 생각하던,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의 선생님일 수 있는 것을,
그렇게 명예롭게 여기실 수 없다는 생각이 들게하셨던 선생님의 말씀이 기억난다.  

그딴 학교 안 다니면 지각 걱정도 할 필요없고, 교칙 위반에 걸려 교무실 들락거릴 이유도 없고,
그깟 성적좀 올리겠다고 죽을 똥 살 똥 밤새우는 일도 없을터인데, 학교 다닌다는 것이야 말로 미친 짓인 걸까?



"당신을 만나,
당신을 나의 남편(아내)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이야 말로, 내 인생 최고, 최선의 선택이었고, 축복이 아닐 수 없으며,
당신과 만나 둘이 하나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바로 이 사실이야 말로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라는 말이,
상대 배우자에게서 고백될 수 있도록, 진정을 다하여 서로 돕는 배필이 될 생각은 안하고,

"이럴줄 알았으면 내가 왜 결혼이라는 미친 짓을 저질렀을까?"하며,
상대 배우자를 마치 고용한 해결사 취급하고, 알아서 기는 노예 취급하고,
내 명령과  마우스 클릭하는 대로 째깍째깍 바뀌는 로보트나 컴퓨터가 아니라고 지청구하고,

한 달에 한 번 화대 지불하는 고정 접대부 취급하여,
상대의 감정과 마음은 아랑곳 없이 상대를 당연한 정욕풀이의 대상 정도로 생각하며,
"이 정도도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무슨 큰소리냐!"를 대놓고 큰소리 치는 바람에 상대에게 깊은 모욕감과 상처를 주고,

부부간의 성적(性的) 관계는,
자신의 자유의지로 결정내린 선택과 허락에 의해서만 가능한 화간(和姦)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른 손이 왼 손에게 허락받고 왼손 긁거나, 왼 손의 힘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오른 손의 필요에 따라 당연히 왼손이(병들지 않은 한에는)움직여지듯이,

원하는 상대의 뜻을 따르는 것이, 일반의 대인관계, 남녀관계와 특징적으로 다른 것이라서,
성경에서는 "네 몸을 네가 주장하지 말지니!"라고 까지 말씀하고 계신 것을 무시하고,

"이렇게 내 마음에 들지 않게 행동하고, 내 마음에는 하나도 들지 않는 요구를,
단지 자기가 필요하다는, 그러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요구하고,

단지 자기가 기분이 안내킨다고 안들어 주고, 이렇게도 서로를 충족시카지 못할 바에는,
왜 이딴 미친 짓거리를 하게 됐을까를 원망하며,

이런 씰다리 없는 결정을 내리게 밀어부친(자신은 희생자란 전제로) 사회와, 부모와, 주위 세력을 탓하며,
이미 저질러진 미친짓(?)을 후회함이 옳은 것이라 할 것인가?



그냥 지나치는 말로 할 수 있는 별스럽지 않은 말도,
알게 모르게 그 말이 상당히 큰 위력을, 상당히 큰 영향력을,
우리의 삶 속에서 발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

우연히 저녁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 본 티비 연속극의 제목(결혼은 미친 짓이다?)에 충격을 받아 해보는 생각이다.

멋진 작품을 만들려는 열정과 정성은 뒤로한 채, 연장 탓하고, 날씨 탓하고, 캔버스 탓하며,
평생 항 장 밖에 주어지지 않는 이 귀하고도 귀한 눈 앞의 '나의 삶'이란 화선지를, 낙서장처럼 취급하고, 허비하며,

"뭐 어때! 내껀데! 상관마셔!"하는,
자신을 삶을 스스로 일구려, 아름답게 가꾸려 노력하지 않고,

조건에 의하여 운명이 결정될 수 밖에 없는 짐승 못 닮아 안달하듯,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조건을 찾아헤메다, 스스로의 삶을 원망하고 포기하고 내 버리는,
이, 진짜 미친 짓으로 부터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를 이른, 조상의 깊은 뜻을,
깊이 깊이 되새기고 헤아려 밝히는 시절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오르고 또 올라 정상에 이를 생각을,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뫼가 미쳤다!"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을 해보았다.






































@#$+0ㅅㄱㄷㅈㅊ충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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