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의 인정과 배려!

정광설 2009.12.16 11:47 조회 수 : 459

넘어질 것을 염려하나, 두려워 피하지 않아야, 걸을 수 있게 되고,
물 먹을 것을 조심하나, 두려워 말아야, 수영을 배울 수 있게 되고,

맞지 않으려 조심하고 피하는 방법을 열심히 배우나 맞음을 두려워 말아야, 권투를 배울 수 있으며,
불똥 튐을 조심하고 예방해야 하나, 두려워하면 용접을 제대로 배울 수 없고,
손해볼 것을 조심하되, 감수할 각오라야 투자를 배울 수 있음이니,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원하지 않는 부작용을 조심하는 것은 옳으나,
부작용을 두려워 피해서는 원하는 바를 얻을 수도, 이룰 수도 없고,
부작용을 없게 하는 것에만 촛점을 맞추다 보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수 밖에 없음이니,

어느 신문의 기고문에서, "아이 마음 다치지 않게 다름을 인정해 주세요!"라는 글을 보고 든 생각이다.



상처를 받는 한이 있어도, 본인의 마음에 정말 싫어도,
경우에 따라서는 다르지 않아야 함을 받아들이는 것과,

때에 따라서는 싫어도 다를 수 있어야 하고,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지 않으면 안될 수도 있음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그런 마음에 들지않는 상황에 강제됨으로 인해 받는 상처의 아픔보다,
아이의 앞날의 대인관계에서와 자신의 뜻을 펼쳐나가는 과정과 정신건강과 행복에,

어떻게 아이를 대하는 것이 진정 아이에게 도움이 되고,
아이를 바르게 양육하는 길일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돌아봄이 있어야 하쟎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짐승을 인간의 잣대로 재단해서,
겨울철 야생 동물 먹이주기 캠패인이 마치 선량한 행위 인듯 행해져서,

애쓰지 않고도, 죽을 고비를 넘기지 않고도 먹을 것을 구할 수 있어,
편안히 인간들이 적선하는 먹이만 따라다니는 야생의 거지(?)들을 양산하며,

그들의 생명력을 쇠퇴시키는 우를 범하는 줄 모르고,
"나 착하지!"하고 엄지 손가락들고 사진이나 밖는 사람들의 행태는 과연 자연을 위한 것일까?



자기가 보기에 좋다고, 개 털을 밀어버리고, 무지개 색갈로 알록달록  물 들이곤,
우리 막내(?) 춥다며, 옷 만들어 입혀서, 자기가 낳은 사람의 자식는 걸리고,
그렇게 치장한 개는 끌어앉고 다니는 사람들은,

진짜 개를 사랑하는 것일까,
아니면 뭔가를 내 맘대로 하고 싶어하는 자신의 선호와 충동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 개는 거기에 이용되는 불쌍한(?) 이용물인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마치 이런식으로 보기에 좋은 떡 만들듯, 아이의 마음이 순백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
상처를 경험하지 않도록 미리 미리 알아서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하여,

그럴수 있는 것이,
그래도 되는 것을 넘어,
그러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

아이는 아이의 충동(결코 뜻이 아니라)이 시키는대로 달라도 되고,
부모는, 선생은, 사회는, 기성세대는, 기존의 가치관은, 기존의 사회적 요구와 압력은,
다름을 인정해주지 않음으로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불량(?)기준들이 되어버리는 결과가 된다면,

과연 이것이 아이들을 위해 진정 도움이 될수 있는 어른으로서의 생각인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이가 스스로의 상처를 핥아가며, 넘어진 몸을 일으키며, 쓰러진 마음을 추슬리고 세워서,
나아가고자 했던 방향을 유지하며, 시행착오를 겪으며 알게된 필요한 것들을 충족시키며,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운용하고 적응할 수 있게 크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미리 알아서, 부모가, 선생이, 어른들이, 사회가, 다름을 미리 인정하고 용납(용서가 아니라)하여,
어려운 고비를 스스로 헤쳐나갈 능력이 제대로 개발되지 못한,
자생력 부족한, 들 떨어진, 미성숙한 인격의 소유자로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는 아이를 너무나 인격적으로 대우하는 훌륭한 사람이야!"라는,
자아도취 내지는 망상에 빠져서는 안될 것 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상처받을 것을 미리 예방하고 알아서 막아주는 것이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인지,

있을 수 있는 아픔을, 얻을 수 있는 상처를,
잘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로 크게 돕는 것이 잘 키우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아이를 노엽게 하지 말것이며!"를 가르쳐주신 그 책에,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해 채찍이 있나니, 채찍은 아이의 영혼을 구하느니라!"라는 말씀이 있고,
"자식을 근실히 초달하지 아니하는 부모는, 그 자식을 사랑하지 아니함이니!"라는 말씀도 있는 것을 볼 때,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은,
상처흔적 없는 매끈한, 볼품좋은 상품을 만드는, 사육하는 것이 아니라,
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자식을 양육하는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일부러 상처를 줘서는 안될 것이나,
상처될까봐, 상처로 받아들일까봐, 할 말을 삼가고, 가르칠 것을 미루며, 주어야할 자극을 회피하는 것은,
아이를 진짜 비인격적으로 대우하는 것 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0ㅅㄱㄷㅈㅊ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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