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고리 손!

정광설 2009.12.18 12:29 조회 수 : 490

서울가는 완행 열차 안에서의 일이었다. 아마 초등학교 3 학년인가 4학년 때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생각 못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6.25 동란이 끝나고 불과 몇년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서울까지 재수좋아 연착이 안되고 잘가면 5시간 반인가 걸리던 시절이었다.
그날은 만원 완행 열차 속에서 다행스럽게 아빠와 나는 앉아 갈 수가 있었다.

칼잠자듯 비스듬이 서로 자세를 잡아야 세명이 겨우 앉을 수 있는 의자에,
통상 복도 쪽 팔걸이에는 누군가의 엉덩이가 걸쳐지게 마련이고,
따라서 복도 쪽으로 앉은 사람의 한쪽 어깨는 찌그러지지 않을 수 없었던 그런 시절이었다.



불쑥 얼굴 앞에 무엇인가 디밀어졌다. 깜짝 놀라 바라보니,
약간 누리끼리한, 번쩍거리는 쇠 갈고리 사이에 땅콩 봉지가 하나 찝혀져 흔들거리고 있었다.

올려다 보니 별 표정이 없는(지금 되돌이켜 생각해보면 허무에 찌든듯한 촛점 없는 시선이었던 것 같다.)
어느 아저씨가 쇠 갈고리 손에 땅콩을 집어 들고 서 있는 것이었다.

주위의 사람들은, 아저씨나 아줌마나 할 것 없이 슬금슬금 눈치보며,
그 아저씨와 눈 마주치기를 피하는 눈치였다.

그때 나도 그 아저씨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바로 무서운 것 없다는, 그리고 자칫하면 봉변당하기 쉽다고 소문난 상이군인이었던 것이다.



내가 겁먹은 얼굴로 아버지를 올려다 보는데, 아버지는 아무 소리 안하고,
돈을 꺼내주시고는, 그 땅콩 봉지를 튿어서 나를 주시는 것이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우리 집에서 짜기로 소문난 우리 아버지가, 두말 없이 돈을 꺼내어 값을 치르신 것이었다.

그동안 여러번의 서울가는 기차여행 중에도, 군것질이라고는 감히 꿈도 꿀 수 없을 정도로 아끼시는 우리 아버지가,
"범인은 배가 고프면 미치느니라!"라고 경건하게 말씀하셔서, 성경에도 그런 글이 다 있나 보다 하고 찍소리 못하곤
했었는데(나이 먹고, 성경을 아무리 읽어봐도, 성경에는 쓰여있지 않은 우리 아버지의 성경버전 말씀이었다.),
그 날은 그 의시시한 기운을 풍기는 그 쇠갈고리 손에서 군말없이 땅콩을 받아 나를 주신 것이었다.

일단 땅콩이 맛있는 것은 맛있는 것이지만, "아버지도 그 아저씨가 나처럼 무섭긴 좀 무서웠나보다!"하는 생각에,
아버지의 비굴한 모습을 본 것 같은 마음에, 좀 씁쓸하달까 묘한 실망감에 젖었던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다친 손 재활훈련하는데는 일상에서의 사용이 가장 효과적인 재활요법임을 상기하며,
이제는 제법 꼼지락거릴 수 있는 왼손가락을 열심히 더욱 꼼지락거리며,
아침에 비누칠한 머리를 냅다 긁고 비비고 거품내던 중이었다.

멀쩡한 오른손이야 내 명령대로 머리 구석구석을 제대로 긁을 수 있어, 가려운 것도 해결되고 비누칠도 잘 되지만,
왼손은 그럴 수 없으리라 생각을 안했던 것은 아니지만, 완전히 나무토막으로 문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 감각도 안 느껴지고, 그냥 뻣뻣한 나무 몽댕이를 왼손에 들고 머리를 감는답시고 부벼대는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왼손에 두개의 공산당 깃발에 등장하는 낫같이 생긴 쇠갈고리 두개를 팔목에 달고,
귀신같이 그 갈구리를 벌렸다 오무렸다 하던, 쇠 갈고리 손과 그 갈구리 사이에 끼어 디밀어져 있던 땅콩 봉지와,
말없이 돈 치르던, 비굴하다고 내 기억 속에 남아있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 것이었다.

"그때 그 상이군경 아저씨의 갈고리 손으로 머리 긁으면 이런 느낌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친 것은 순전히 내 실수로, 내 부주의로, 내 안전 불감증의 소치(所致)로 일어난 것이고,
그것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왕 다치기로 말하면 최고로 다행스럽게 손바닥 정중앙을 다치게 되어서,
비록 신경과 인대와 동맥은 모두 끊겼어도, 현미경 수술로 몽땅 연결할 수 있었고,

손가락으로 전기 톱이 튀지않아 손가락도 튿어지고 떨어져 나가지 않을 수 있었고,
이마에 밖혔으면 최소가 식물인간 상태였을 터이고, 얼굴로 튀지않아 눈도 코도 멀쩡하고,  
손바닥과 손목을 휘돌아난 지렁이 같은 상흔이 얼굴에 안남을 수 있어서,

따라서 나는 상처를 볼 때마다,
울화통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하심을 감사하고,

죽지도 아니하고, 의식불명 상태도 아니며,
얼굴에 상처가 안난 것을 생각하면, 상처를 볼 때마다 기뻐할 수 있다지만,

그리고 비록 지금은 감각도 없고 움직임도 어둔해서 나무토막 붙어있는 것 같다지만,
머지않아 1ㅡ2년 후면 감각도 돌아오고, 손가락도 말 잘 들을 것이라는 소망이라도 있지만,



그 상이용사분들은 손목이 잘려나가고,
그것도 자기 잘못으로 그리된 것이 아니라 시대를 잘못 만나고,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이 무슨 죄라고, 동족상잔의 전쟁 덕분에 얻은 상처고 장애일 뿐만 아니라,

아무리 가난한 나라가 전쟁까지 치르느라 형편이 어려워서였다고는 해도,
어느 놈 하나 제대로 돌봐주고, 따듯하게 대접하고, 고마워하진 않고,

근처에 나타나 얼쩡거리기라도 할라치면,
지네들 구하느라 싸우다 다친 상처 때문에 끊겨진 손목이건만,

이건 고마운 빛보다는 귀신 도깨비라도 보듯 슬금슬금 눈치나 보고, 누가 잡아 먹는댔나 자꾸 피하기나 하고,
애들부터 보호하듯 치마폭에 감싸며 뒤로 세우는 아낙네들을 볼 때에,
과연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여, 나로서는 말할 수 없는 큰 상처를 입었고,
죽을뻔한 경험을 하고, 아픔과 불편함으로 하루하루가 힘들기 짝이 없다지만,

불현듯 떠오른 그 시절의 상이용사들을 생각하니,
내 상처는 상처 축에도 못들고, 내 아픔은 아픔도 아니고,
나는 억울할 것은 없지만 그분들이 느꼈을 억울함과 배신감을 생각하니 죄송한 마음 금할 길 없다.  

의술도 의료장비도 의료기관도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적 뒷받침이 안되어, 미군이었다면 충분히 살릴 수 있었을 손도,
단지 가난한 나라의 국민이고 군인이었기에, 한국인인 것이 원인이 되어 겪을 수 밖에 없었던 그분들의 고통이,
이제 내가 아픔을 당해보니, 조금이나마 이해가되고, 느껴지는 것이었다.

오늘의 내가,
오늘의 우리가,
오늘의 대한민국이 이와같은 풍요와 번영을 누리며,
세계를 향하여 큰 소리를 치고 당당할 수 있음이 바로 그분들의 덕택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국가의 명에 의해, 또는 국가와 민족을 구하기 위해,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랴!"라는 숭고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전선에 나아가 산화하고 부상당한 그분들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을 수 있음을 이제서야 깨닫고,  마음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이제 생각해보니,
일제시대에 일본 어느 비행장 공사장엔가 징용가셨을 때에도,
그 공사장의 부책임자를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릴 정도로,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과 굳건한 싱앙의 소유자셨던 아버님께서,

그 쇠갈고리 손이 무서워 평소의 소신을 접는 비굴한 모습을 보이신 것이 아니라,
이 못난 아들은 5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내가 죽을 것 같은 고통의 순간을 경험하고서야 겨우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을,
아버지는 그때 이미 그들의 마음과 고마움을 알고 계셨던 것이리라는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육체와 마음의 아픔과,
그들의 살신성인에 대한 감사와,
그들의 조국을 위하다 다친 마음에,

그들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말없이 성원을 보내시는 행위였던 것이다.



어리석은 아들은 그런 고마움이 담긴 행동과 깊은 뜻을,
"평소 우리에게는 짜디짜던 분이 겁나니까 돈도 잘쓰네!"식으로,

미숙하고 어리석은 자신의 잣대로만 생각하고,
그것을 이제까지 50여년을 그대로 마음의 창고 속에 담아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든 고마운 분들이,
오늘의 나를 있을 수 있게 나라와 가정을 지켜주신, 그 모든 분들이 다 돌아가신지 오랜 지금에 와서야,
알량한 상처입어 쪼매 아퍼보고 나서야, 그분들의 고마움을, 아픈 마음을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나무토막처럼 무감각한 손을 자꾸 쓰면서,
그럴때마다 순전히 나의 무식과 어리석음으로 인해 나의 뇌리 속에 안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있던,
그런 억지나 부리는 부류의 사람들로 남아있던 상이군경 여러분들과,
결코 비굴함이 아니시었을, 돌아가신 우리 아버님께 죄송한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을 동시에 갖게 된다.



그리고 오늘의 내가,
오늘의 우리가,
오늘의 이 풍요가,

우리에게 있을 수 있도록 마음과 몸을 바쳐 애쓰신 그분들의 고마움에 보답하는 길은,
아버님의 평소의 가르치심대로 내가 서있는 바로 이곳에서 나의 할 바를 다 함에 충실하고,

세상을 사랑의 눈으로, 사랑의 마음으로, 그리고 사랑을 실천하는 축복의 통로로서,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를 전하는 사람이 되는 것 임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감사드린다.


우리에게 지금이 있을 수 있게 해주신, 순국선열 모든 분들과,
자식들을 위해 인생을 다바쳐 사랑으로 양육해 오신, 우리의 부모님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되새기며,
출근길에 나선다.

결코 그분들에게 누가되지 않는 후손일 것을 다짐하며 하늘을 바라본다.

























@#$+0ㅅㄱㄷㅈㅊ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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