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의,
크지 않은 중 키에 날씬한 몸매를 지닌,
자그마한 얼굴로 윤곽이 뚜렷한 이목구비에 생글거리며 웃는 얼굴의 여성이다.

생글 생글 웃는 얼굴에 밉지않은 인상이라,
면담중 껌을 요리조리 돌려가며 질겅 질겅 씹는 모습까지도 귀엽게(?) 보여지는 그런 인생의 초년병이었다.


같이 온 엄마는 약간 주눅든 듯한,
염려가 가득한 얼굴로 의사와 딸을 번갈아 바라보며 숨죽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떻게 오셨냐는 물음에 딸은 엄마를 슬쩍 쳐다보고는,
예의 그 생글거리는 얼굴로 다시 나를 쳐다보며 껌만 열심히 질겅대고 있었다.


대답처럼 들려온 것은,
"얘가 의욕이 없어서요." 하는 조심스럽고 염려 가득한 엄마의 목소리였다.
엄마가 걱정스레 의사에게 딸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정작 그 문제의 주체인 딸은,
뚤레 뚤레 넓지도 않은 진료실을 둘러보다간,
이야기하고 있는 엄마와 의사를 재밌다는 듯(?) 생글거리며 바라보곤 하는 것 이었다.


사연은 이랬다.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학교가 싫어 일학년 때 자퇴하고,
바로 그 해에는 검정고시 볼 수 없어서 일년 알바하며 지내다가,
이듬 해에 검정고시해서 고졸 자격증은 받았는데,
대학갈 생각은 전혀 없어서 안가고,
주로 피씨방 알바하며 지냈다는 것이다.


작년 여름 쯤에 쇼핑몰 하고 싶어서,
그동안 모은 돈하고 모자란 것은 아버지가 보태주셔서 의류 쪽으로 열었다가 망했다는 것이다.
쇼핑몰을 열 생각은 했지만,
어떻게 하면 사업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나 배우는 것은 없었단다.
그래서 어쨌냐니까,
그냥 안되서 관두고,
옷은 자기가 입기도 하고, 친구들 그냥 나눠주는 식으로 처분했다는 것이다.


앞으로 또 다시 할 생각이냐는 질문에는,
한마디로 "아뇨."하고 말을 끊어버리는 것 이었다.



"손해는 얼마나 봤어요?"

"생각 안해 봤는데요."

"그래도 몇년 모은 돈 다 투자했다면서 얼마나 손핸지도 몰라요?"

"한 육백 ㅡ 쯤....."

"무슨 소리야 아빠가 댄 것도 있는데.....", 불쑥 답답한지 엄마가 끼어든다.

"그것까지 해서라구", 금방 의사 보며 생글거리던 것 과는 딴판으로,
인상쓰며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엄마를 흘겨보며 짜증스레 눌러서 말하는 것 이었다.

"그래도 천만원은 될꺼예요."하고 작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이 눈치보듯 슬쩍 엄마가 보충을 한다.



사업 계획도 없이, 사전 준비도 없이,
단지 그것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이유로,
사람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아야 하고, 살 권리가 있다는 말에만 충실해서인지,  
하여간 그렇게 별준비 없이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다가 그 사업을 시작했다가 망한 이야기를,


마치 누군가 남의 일을 이야기하듯,
안타깝고, 약오르고, 억울하고, 아쉽고, 후회스럽고,
다시 어떻게 하면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느낌은 전혀 없이,
진료실에 들어와 생글거리던 그 얼굴 모습에 별다른 변화없이 말하는 것 이었다.


손해에 대한 평가도, 분석도,
앞으로의 새로운 방향 설정이나 모색도 아무것도 없고,
그냥 그런 일이 있었음을, 그냥 대충 인정하는 태도만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후로 뭔가 문제되는 것은 없어?"

"뭐가요? 모르겠는데요. 뭐ㅡ 불편한 건 없어요."

"앞으론 뭘 할껀데?"

"피씨방 알바하면 되죠 뭐.  피씨방 알바는 심심하지 않아요."라고 말하고 있다.



엄마는 옆에서 듣고 보다가 답답했는지, 의사가 엄마를 처다보는 그 순간에 잽싸게 대화에 끼어든다.

"애가 너무 의욕이 없고, 감정 기복이 심하고, 엄마한테 화도 잘내고...",
중단 시키지 않으면 언제까지라도 계속될 듯,
의사에게 일르는 건지, 염려를 토로하는 건지, 두가지 가 다 섞인듯한 느낌을 주며 말을 하는 것 이었다.


아이는 지 맘에 안드는 말일 때는 톡 쏘듯 짧은 말로,
"아냐! 내가 언제?"식으로 참견하나,
웬만하면 그냥 생글거리며, 껌을 질겅거리며, 이쪽 저쪽 얼굴 돌려가며 바라보고 있다.



상담을 통해서 무엇인가 문제를 발견하고, 함께 지지고 복고, 노력을 통해서 새로운 길을 찾고,
바람직한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정신과 의사로서,
이런 경우를 당하게 되면 참 황당하고 난감함을 느끼게 된다.


절벽을 만난 느낌이 든다.
무엇이든 실마리를 풀어갈려면 엉킨 덤불이라도 보여야 될텐데,
돌로 된 벽이 떡하고 앞을 가로 막는 듯, 파고들 틈새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망한 것에 대해서 화라도 내고, 아깝고 약올라라도 하고, 괴로워라도 하고,
"어려서 몰라서 그랬지!"하고 공부 포기한 것을 후회하는 마음이라도 있고,
이런 갈등과 괴로움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나 꿈틀댐이 있기라도 해야,
무엇이, 어떻게 반응하고 대응 대처하는 것이 옳으네 그르네,
반응의 적절성과 대응의 유효성에 대한 뒤집이라도 할텐데,


이 경우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엄마와 정신과 의사가, 아니 엄마가 정신과 의사에게 호소하는 것을,
구경하듯 그냥 쳐다보고 있는 경우에는,
참으로 난감함을 느끼게 되고,
암벽등반가가 틈새 하나 없는 수직벽을 만났을 때의 난감함이라고나 할까,
아뭏든 뚫고는 나가야겠는데, 찾아온 환자에게 도움이 되주기는 해야 할텐데,
어찌 길을 찾아야 할지 답답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남자 친구 있나?"

"네."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진료실 책상에 얼굴을 대듯 가까이 쳐다보며 생글거리면서, 질겅대면서 대답한다.
금방내 태도가 달라지듯 고개를 가까이 하며 대답하는 것이다.

보면 볼 수록 귀엽다.
그 귀여움에,
자신의 삶에 대한 충실함과 진솔함이 더해질 수 있다면,
참 예쁘게 비상하는 나비일 수 있겠는데 라는 생각이 든다.


"좋아해?"

"네."

"남자 친구도 자네 좋아해?"

"좋아하니깐 사귀죠."

"자네는 남자 친구가 좋아해도 괜찮을 만한 사람이야? 스스로를 생각해 볼 때?"

".......(갸웃뚱?)"

"단순한 이성간의 끌림 때문에, 개미가 페르몬 냄새에 끌리고,
본능이 풍기는 냄새에 짐승들이 서로를 찾고 짝짓고 하는 것 말고.... ",  
"자네는 상대가 좋아해도 될만한 인간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나?"

"......."

"상대에게 존중받고, 사랑받고,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은 드나?"

"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럴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 생각 안해봤는데요."



굼뱅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땅속에서 몇몇 해를 보내고도,
겨우 번데기 되어서도 그 수많은 새들의 먹이사냥에서 겨우 살아 남아,
부들 부들, 파들 파들, 탈피의 과정을 겪어내고,
어느 나뭇잎 틈에 숨어 날개가 마르기를 기다리다가,
드디어 파닥여 보아, 날개가 다 말라,
이제 비상해도 됨을 깨닫고 창공을 향해 솟아오르는 나비의 아름다움과,
인고의 열매가 아름다울 수 밖에 없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오랜 세월을 땅속에서, 창공에서 춤출 날을 기다리다가,
새들의 노림에서 벗어나는 행운을 얻어,
겨우 아름답게 창공을 수 놓게 되고는,
불과 며칠 못살고 죽어 갈 수 밖에 없는 나비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니까 굼뱅이가,
"그깟것, 죽도록 인내하고 고생해서 나비돼 봤자,
며칠 살지도 못할껄 하면서,
땅속을 꿈틀대며 헤집어 먹이찾기를 거부하고,
번데기에서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모습으로 탈피하는 산고의 고통을 포기하고,
포식자의 눈을 피해 젖은 날개 말리며, 비상을 꿈꾸는 것을 버려 버려도 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왕에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이라는 어느 포유동물로서,
본능에 의해 지배당함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만 받아들이고,
그 본능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말초의 편함과 만족만을 쫓다가,


"이깟 허무한 인생, 불과 얼마 못살구 흙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허망한 인생!"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지는 않는다손 쳐도,
그와 별반 다를 바 없이, 하루하루 죽음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자신을 보면서 자조에 빠져드는 인생이 아니라,


동물의 지경을 넘어선,
사람으로서의 가치있는 삶을 일구어낼 책임과 권리가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며칠 못살고 죽을 것 때문에 나비가 되기를 거부하는 어리석음이 있으면 아니되듯,
그래도 죽는 그 순간까지는 아름다운 자태의 나비여야하듯,


죽음을 향해 하루하루 가까이 나아가는,
죽어가는 짐승으로서의 삶이 아니라,


적어도 죽음이 도래하기 전까지는 살아있음이 분명한 것이니,
이 생명을 보람되고 가치있는,
인간으로서의 삶,
인간다운 삶을 일구어가야 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도 있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지극히 마땅한 일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밝고 맑은 웃음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귀를 알아듣겠노라고 싸인을 보내주며 진료실을 나가는 그 나이 어린, 인생의 초년병에게,
꼭 아름답고 예쁜 나비로의 탈피를 이룰수 있는 깨닫음이 있기를  기원해본다.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가 스스로를 버리지 않는 한에는,
반드시 굼뱅이가 아름다운 나비가 되는 축복이 임함을 잊지 않는 사람이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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