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으면 죽었지 널 용서할 줄 알아!"라고 하는 소리를 아마도 한 번 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어쩌면 들어본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런 말을 입에 달고 살거나, 마음에 품고 되뇌이고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화가 많이 나서 진짜 그럴 것 같은 마음으로 할 수도 있고,
약간 장난끼 서린 목소리로 그럴 때도 있겠지만,
공통적인 것은 그런 소리를 내가 별로 특별히 느껴지기 보다는 예사롭게 듣고 지나친다는 것이다.

"용서할 수 없어!"라는 말이나 생각에 익숙한 것이다.
크게 낯설거나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죽는 한이 있어도..."라는,
자신의 인생과 목숨을 걸고서라도 결코 용서를 안하겠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몰라고,
"목숨을 걸고서라도 용서를 해서 화평으로 가겠다!"가 아니라,
"용서를 안하고, 못하고, 그냥 죽이던지 아니면 콱 죽어버리던지 하겠다!"는 결심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비록 죽거나 불행해지는 한이 있더라도, 도저히 용서는 못하겠다는 선언인 것이다.


이렇듯 죽기보다 하기 싫고 어려운 것이 용서다.
아마도 예수님 성품 중에 제일 닮기 어려운 것을 들라면 그것은 용서의 성품일 것이다.

그런데 이율배반적인 것은,
자신은 "죽으면 죽었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를 큰 소리로 외치면서,
"사람이 쫀쫀하고 치사하게 그깟 일도 용서를 못해!"라면서,
상대방이 용서해줄 것을 기대하고 요구하고 강권하는데 익숙해 있고,
용서받기를 마음 속 깊이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   우리는 누구나 용서받고 싶어한다.

      용서받고 싶은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용서받아야 할 실수와 잘못과 죄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인 것이;다.

      "온전한 이는 없나니 하나도 없느니라!"라는 성경의 말씀처럼,
      용서받을 만한 일을 저지르지 않고 사는, 온전하고 완전한 사람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법을 철저히 지킨다는 것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죄를 범하지 않았다는 의미와는 다른 것이다.
      법은 나쁜 짓을 규정하고 규제하는 것이지, 선한 일을 도모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선을 행함이 옳은 줄 알며 행하지 않음이 죄이고,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계획에 어긋나는 삶도 죄된 인생인 것임을 생각할 때,
      용서가 필요치 않은 인생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토록 절실히 필요하고도 원하는 용서를,
      막상 자신이 하려면 죽기보다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용서의 성품을 일구어야 하는 것이다.


2.   용서는 아름다운 것들을 선물한다.

      2ㅡ1) 용서는 자유를 선물한다.

               우리의 행복을 얽어매는 가장 크고, 가장 확실히 효과를 나타내는 올무는 과거의 상처이다.
               이 과거의 상처라는 감옥에서 벗어나고 자유해질 수 있음은 바로 용서를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용서를 받음으로 자유해질 수 있고,
               용서함으로 또한 그 과거의 어두움으로 부터 풀리고 놓여짐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2ㅡ2) 용서는 회복을 선물한다.

               우리 마음의 손상은 상처 자체로 인한 것보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인한 것이 더 큰 것이다.

               용서하지 못하는 감정은 분노하고 아플 수 밖에 없으며,
               지속적으로 용서하지 않기 위해서(?)는,
               계속 아프고, 점점 더 아퍼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가면서 상처가 아물기보다는 더 깊어지고,
               여기에 억울과 원망과 한을 더 보태서,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마음의 상처가 건들여지고 아픔을 확대 재생산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때 '용서'라는 예리한 칼날이,
               이 질기게 형성되고 고착된 분노와 저주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게 되면,
               즉각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고,
               아픈 상처에 관계 회복과 감사와 행복이라는 새 살이 돋게 되는 것이다.

      2ㅡ3) 용서는 새 출발을 선물한다.

               용서는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에게 새로운 출발을 선물하여 가능케 한다.

               "그러니까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오늘의 불행을 설명하고 증명하느라,
               행여나 상처가 나아서, 불행을 증명할 증거가 소실될까봐,
               상처를 쓰러안고 집착하며 과거의 상처에 머물러 있던 마음, 생각, 정서, 행동이,
               용서라는 성령의 불 칼로 베임 받아 자유함을 얻게 되면,

               새장에서 놓여난 독수리처럼,
               아름답고 행복한 미래를 향하여 힘차게 날아오르는 새 출발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용서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이미 죽어있는 것과 다를 바 없었던 상처와 아픔투성이의 불행한 인생에게,
               새 출발을 할 수 있게 하여,
               그  결과로 나타날 수 있는 보람되고 행복한 삶으로의 부활을 경험케 하는,
               새로운 삶이란 기적을 선물하는 것이다.

               사울이 용서받은 결과,
               베드로가 저주를 곁들여 가면서 까지 예수님을 부인했던 잘못을 용서받은 결과,
               다윗이 음난의 죄로부터 용서함을 입은 결과,
               새로운 출발과 새로운 삶으로 변화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기적인 것이다.

               이 용서의 기적은 지금도 누군가에게서, 그리고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어,
               죽은 것과 같은 인생을 새로운 삶으로 회복시키고 있는 것이다.



3.   용서는 선택이 아니라 순종해야 할 명령이다.

      이 어둠의 시대를 휘저으며 악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수 많은 말들 중에,
      가장 악한 것을 두 가지만 들어보라면,

      그 하나는, "사람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아야 돼!"라는 말과,
      또 하나는,  "냅둬! 이대로 살다 죽을려!"라는 말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은 죽임당하기 위해 태어난, 멸망하는 짐승과는 달리,
      '하고 싶은 것'보다 '마땅히 해야할 일'을 앞세우는 자여야 하며,
      하나님이 계획하신 행복한 삶을 일구고 누릴 수 있기 위해서는,
      "냅둬!"하고 원망과 나태와 제멋대로와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볼 때,
      용서는 마음이 내키고, 감정이 풀리고, 납득이 되고, 동의가 될 만할 때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즉 선택에 의해 수행되는 행동이 아닌 것이다.  

      용서는,
      내가 나의 잘못을 스스로 깨닫고 인정하고 받아들여,
      용서를 받을만한 행동을 함으로써 하나님으로 부터 용서를 쟁취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용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예수그리스도의 죽임당함을 허락하셨던 것이다.

      용서란,
      할 수 있을 만한 상태에서 여유를 갖고 선택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과 감정과 논리로는 도저히 죽으면 죽었지 못하겠을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의 피흘림을 생각하며,
      그분이 가신 길을 따르고,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 내 것으로 하기 위하여 행해야 하는 것이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같은 상태에서 하는 것이 용서인 것이다.


      3ㅡ1)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볼 때 용서가 가능하다.

               죽어도 못할 것 같은 용서가 그렇다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내 입장, 내 감정, 내 기준, 내 생각, 내 가치기준에서,
               사건, 상황, 사람을 바라보면 용서가 있기 어렵다.

               요셉이 하나님의 시각으로 형제들을 보았을 때,
               형제들의 악한 생각을 하나님이 선한 결과로 고백하셨음을 고백하며,
               자기를 판 형제들을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를 아프게 하고 있는 그도,
               막상 자기가 하는 일이 나를 아프게 하고 있음을 모를 수도 있음이니,
               용서하지 못할 때 가장 고통받는 자는 자기 자신인 것이다.

      3ㅡ2) 하나님께 긍휼의 마음을 구하여야 한다.

               용서는 긍휼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긍휼은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된다.
               따라서 하나님께 긍휼을 구해야 하는 것이다.

               위대한 사람은 용서하는 사람이다.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긍휼이고 용서이기에, 우리가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아버지의 품성을 닮아,
               용서할 수 있는, 용서할 줄 아는 특권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용서를 주고 받을 때 성숙한 인간 관계가 가능한 것이다.



(사순절 새벽의 말씀에 소리없이 나의 마음이 무너짐을 느낀다.
용서하지 못하고 나의 마음 한 구석에 쌓여있기만 하던,
때때로 기회만 주어지면 분출되고 돌출되던 분노와 원한의 응어리가 흔들거림을 느낀다.

입에 발린 립써비스가 아니라 진정으로 문제를 보는 시각이 바뀌어,
날 아프게 한 자를 긍휼의 마음으로 볼 수 있게 해주실 것을 간구하며,

용서의 꽃이 만발한 세상을 그리며 작은 깨달음을 더하여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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