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귀한 삶은 말 그대로 이해가 되고 받아들여지는 말이나,
존귀한 탄생, 존엄한 죽음이란 말은 낱자를 나열, 조합해서 사용하니 낱말이긴 하나,
"그것이 무슨 의미일 수 있고,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삶은 내가 나의 살아있음을 인식하고,
그 내용과 질과 양을 정하는데 나의 자유의지가 관여하니,
당연히 그 의미를 느끼고, 공과가 다 나에게 속하였음이 마땅하다할 것이나,

나고 죽음은 내가 인식할 수 없고, 의식하여 감지할 수 없고,
더군다나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로서,
그 생존의 시작과 끝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존재하는, 엘 샤다이, 전능하신 창조주의 영역일 따름인데,

존귀한 탄생, 존엄한 죽음이란 말이,
남들의, 산자들의 그냥 해보는 소리 외에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할 것인가?


나 스스로가 의식이 있어 죽기 직전까지,
"이정도면 존엄한 죽음이야!"라고 죽는 모습을 연출하고, 생각하면,
나의 죽음은 존엄한 죽음인 것인가?

뭇 사람들이 참으로 존엄한 삶의 마감이고 죽음이었다고 감탄하고, 말한다면,
나의 죽음이 진정 존엄한 죽음일 것인가?

반대로 온 세상 사람들이 "무슨 저런 개죽음이 있어!"하고 비아냥대면,
그 죽음은 천한 죽음인 것인가?


탄생과 죽음은 나의 인지와 인식의 범주를 벗어나서,
더우기 나의 자유의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나에게 일어나는 일대 변화라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나의 인식과 나의 자유의지가 배재된 변화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 변화에 따라 결과되어지는 것들의 의미는 있을 수 있다 하겠지만,
그 변화 자체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그 변화의 모습이 내 생각대로 일어날 수 있도록 각색하고 연출하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연출된 죽음이, 그냥 죽은 것과, 그냥 죽는 것과 어떤 다름이 있는 것일까?


"존엄한 죽음"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일까?

존엄한 죽음이 과연 나에 의해 선택 가능한 것이고,
내 마음에 드는 죽음의 모습은,
남들이 마음에 들어하는 죽음의 모습은,
존엄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일까?


세상에 와지고, 세상을 떠나짐에 있어,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할 수 없고, 그 어떤 역할도 할 수 없는 존재가,
그 태어남과 죽어감에 의미를 부여하고, 질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일까?

스스로가, 그리고 많은 사람이,
존엄한 죽음이라고 생각하고 인정하고 부러워하면,
그것이 존엄한 죽음인 것인가?

온 백성이 축복하고 건강하고 영리한 아이가 탄생하기를 복비는 중에 태어나면 존귀한 탄생이고,

아들일까 염려하며 남 몰래 낳아, 몇 달 숨기다가,
더 이상 어쩔 수 없어 나일강 물에 버려질 수 밖에 없는 탄생은 비참한 것이고,

오갈데 없고, 몸져 누울 곳 없어 할 수 없이 마굿간에서 세상과 만나고,
말 구유에 뉘어질 수 밖에 없는 탄생은, 처량한 것일까?


자신의 삶의 시작과 끝에 대하여,
인간 스스로가 관여할 수 있는 것은,
그 양적인 면에서, 그리고 질적인 면에서 어디까지 가능한 것인가?

어떤 것이 별볼일 없는 비참한 죽음의 모습이고, 죽음이고,
어떤 것이 꽤 괜찮은 죽음이고, 소위 존엄한 죽음인 것인가?

죽음을 점잖게 받아들이고,
치사하게 살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이기 보다는,
제 정신 없어지기 전에 스스로 곡기를 끊고,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거룩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연출하면 존엄한 죽음인 것인가?

그럼 박해 가운데 짐승에게 물려 죽고, 폭도, 이교도에게 고문당하며 죽어갈 때,
"나를 버리시나이까?" 애통하며 갈등한 죽음은 비참하고 값 없는, 죽음 앞에서 허부적대는 모습일 뿐인 것일까?

최고로 죄질이 나쁜 악인들이나 달리던 십자가에 못 밖히고, 창에 찔리며, "나를 버리시나이까?"를 외치고,
감옥에 갖혀 지내다 목 잘려 죽어 그 시체가 어디 묻혔는지도 알 수 없는 죽음은,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밖혀 죽은 그 모습은 그렇다면 처참의 극을 달하는 죽음인 것인가?

암으로 죽기 한 달 전의 사람이 팔굽혀 펴기를,
죽을 생각은 꿈도 꾸지 않고 있는 나 보다 더 활기있게 하는 모습을 보이니,
그럴 수 없어 나약한 모습을 보이시던 선친의 죽어가던 모습은 존엄하지 않은 것이었단 말인가?


코 앞에 죽음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자존망대하는, 허황되고 망령된 삶이 아니라,
코 앞에, 비록 내 눈엔 안보일지라도 죽음이 임박해 있음을 의식하고 인식하며,
죽음 앞에서 날 때와 같은 순수함으로 돌아가고자 애쓰며,
평소의 삶을 죽음을 앞둔 자의 순수함으로 살고자 노력함은 마땅하고 그럴수 있도록 애쓸 일일 것이나,

살아있는 시간에 살아 행할 일을 생각하지 않고 죽음을 생각하며
죽음 자체를 내가 각색하고 연출할 수 있다고 자칫 생각하는 것이 되어선 안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죽음학의 강의를 들으며,
다시 한 번 살아있다는 현실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본다.

죽음을 보고, 알고, 느끼며, 삶의 본질을 깨닫고,
아직 살아있는 동안 열심히 살 것에 촛점을 맞추어야 함을 말씀을 들으며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나는 지금 살고 있는 것인지, 죽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내 뜻과 상관없이 단지 생존하고 있을 뿐인 생명체인지를 생각해본다.

죽음이란 사건이 나에게 닥쳐올 때라야,
비로서 삶의 과정에서 내가 분리되고, 삶을 박탈당하는 것인지를 생각해 본다.

항상 죽고 있고, 항상 살고 있는 과정 가운데,
내 의지와 원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연의 산물로 생명체로 진화한 존재가 아니라,
특별한 계획과 사랑 가운데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축복받은 존귀한 존재임을 인식하고,

자유의지를 갖고 순간 순간의 죽음을, 순간 순간의 삶을 인식하고 자각하며,
기쁨과 감사를 창조주께 영광돌리고 찬양드릴 수 있는 삶이,
잘 죽는 것이고, 잘 사는 것이고,

그렇게 살다 하나님의 때에 내 뜻과 상관없이 있게되는 나의 죽음의 모습이,
나나 너에게 어떻게 보이는 것과 상관없이,

창조주께서 "보기에 좋았더라!" 하시며,
"이제 오느냐? 어서 오너라!"하실 수 있는 삶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탄생과 죽음은 나의 영역이 아니니,
오직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 신실할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

시작과 끝은 오직 알파와 오메가 이신 하나님께 있음이니,
행여나 그 분의 품성을 닮은 것을 자칫 그분의 능력이 나에게도 있는 줄로 착각하여,
시작과 끝을 범하는 자유의지의 일탈이 있을까 저어하며,
오늘도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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