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정신과 의사는 뭐가 달라도 좀 다르구나! 세상에 그 지독한 몸살을 저리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분좋게 맞을 수 있다니!",

"나의 스승은 참 배울 점이 많으신 진짜 스승이시다. 무엇을 가르치고 지적하지 않으면서도 깨달아 알게하시니 말이다."



정신과 수련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항상 긴장하고, 스승님 앞에 서기만 하면 바짝 시야시(?)가 되곤하던 시절, 스승님 말씀이라면 날 야단치는 말씀까지도 정신없이 메모하다, "아니, 닥터 정! 지금 뭐 적나?"하시며 날 나무래고 촌놈이라고 핀잔주시는 말씀까지 적는 바람에 세미나 상황이 한 편의 코메디가 되기도 했던 시절인데, 평소에 너무나 철저히 자신의 일을 챙기시고 열심이던 분이 이틀인가를 결근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된통 몸살을 앓고 나오셔선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는 것이었다.

"역시 몸살이 좋고 고맙긴 해! 피로가 말끔이 풀렸어. 몸살이 아니면 내 성격에 어찌 이틀씩이나 늘어지게 누워있을 수 있겠어! 빨리 몸살이 요번엔 좀 쎄게 와야 할텐데, 왜 아직 안오나 하고 있었는데, 역시 때 맞춰 와주는 바람에 잘 쉬었네. 나 못 나오는 동안 환자들 별일 없었지?"라고 말씀하시며 아침 세미나를 시작하시는 모습을 보며, "역시 정신과 의사는 약간 맛이 갔다더니 진짠게로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리고 수련의 과정을 겪으며 스승님의 그 말씀이, 스승님의 삶의 문제와 고난을 대하는 태도와, 스승님의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깨달음의 경지가 어떠하셨던 것인지를 배워 알게 되어, 몸살이란 단어를 들을 때 마다 전율과 함께 당시 내가 우리 스승님을 약간 맛이 간 분처럼 느꼈었던 나의 우매함을 되새기며,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아니 가질 수 없다.



우울은 저주이고 좌절이고 버려짐인가?
우울하면 죽어야 하는가?
우울하면 죽어도 되는가?
우울하면 의례 죽는 것인가?

우울할 수 있다는 것은 대뇌의 발달이 우울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을 정도로 발달하고 회복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뇌의 분화와 발달이 인간으로서 제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만큼 성숙했다는 의미인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뇌가 어느 정도 발달한 학령전기 쯤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불안이나 우울을 경험할 수 있고, 그 전에는 걱정없는 인생을 누리기만(?)할 뿐인 것이다.

뇌손상을 입은 경우에도 처음에는 만고강산, 천방지축, 어린아이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생각없고 웃기만 하다가, 뇌손상이 어느정도 회복됐을 때 비로서 자신의 처지를 인식하고 비관에 빠지고 우울해지는 양상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때 가족은 "이젠 우울해지기까지 하나?"하고 걱정을 더 할 수 있으나, 실제 상황은 우울해할 수 있을 만큼 뇌 기능의 회복이 일어났다는 증거인 것이다.

다시 말 하자면 우울은 고등한 수준의 정신기능이고, 진짜 제대로 우울할 수 있음은 인간만이 경험할 수 있는 현상이고, 생각이 깊고 많은 사람일 수록 우울과 고뇌를 통해 인격적으로 더욱 성숙하고,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의 문제를 직면하고, 자신이 스스로의 삶을 좌지우지 할 수 없는 나약하고 미약한 존재임을 깨달으며, 절망의 나락으로, 우울로 빠져들게도 되지만,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바라고 그 분 앞에 없드려 간구하며 어려움을 극복하고, 동시에 삶의 의미를 깨닫고 깊어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아무리 영리한 짐승일지라도 깊은 우울에 빠지고 고뇌에 잠기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며, 더더우기 그 우울의 고통과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체험하고 삶의 참된 의미와 목적을 깨닫는 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즉, 우울은 인간만이 경험할 수 있는 특권이고 축복이고, 인격이 성숙하고 깊어질수 있는 특별한 기회인 것이다.
우울은, 몸살이 몸이 쉬는 것을 강제하듯, 정신적 심리적 휴식을 강제하고, 성숙을 보장하는 기회인 것이다.

하나님 임재를 경험하고 영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기회가, 인생의 막다른 길에 놓여있는 듯한 절망과 좌절과 우울을 경험하는 가운데,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항상 자신을 지키시며 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함으로 극복할 때 도래하게 되는 것이다.

모세도 다윗도 엘리야 선지자도 깊은 고뇌와 갈등과 흔들림으로 인간적으로 좌절하고 낙망하고 우울하여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죽는 수 밖에 없다는 막다른 골목에 놓인듯한 상황에서, 진짜 별 볼 일 없는 벌레만도 못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하나님 앞에 서서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은총이 이미 주어져있는 존재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우울이 어려운 상황인 것은 분명하나, 이 우울을 극복하여 우울이 자신에게 갖는 의미를 깨닫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새로운 심리적 정신적 탄생이 일어나고, 영적존재로의 거듭남이 광석이 담금질을 통하여 정금으로 변화되듯 스스로에게 삶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우울과 병적우울은 바람불어 일어난 풍랑과 쓰나미가 다르듯 다른 것이다.
우울하면 이제 죽는 수 밖에 없고, 죽어야 되고, 죽어도 되는 것이 아니다.
떠도는 무책임하고 거짓된 상식에 휘말려 미리 주눅들고 우울을 두려워하고, 피하고, 미리 지고 들어가고, 이젠 죽는 길만 남은 것이란 미혹에 빠지면 안되는 것이다.

우울을 경험하고, 우울할 수 밖에 없는 고난과 역경에 처했을 때, 사탄의 속삭임에 말려들어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딛고 일어서는 승리를 맛보는 기회로 삼아야하는 것이다.

혼자 어렵고 외로워 깊은 나락에 빠졌을 때 도움을 찾고, 멘토를 찾고, 영적 지도자를 찾고,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구해주실 것을 간구함으로, 창문을 열어주시고, 마음 문을 열어주시고, 지혜의 문을 열어주시고, 영혼의 문도 열어주심을 경험하는 은총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울과 고뇌란 담금질의 터널을 경험하지 않은 영적성숙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우울은 하나님이 특별히 허락하신 변화의 기회인 것이다.
우울은 저주이고 버려짐이 아니고 축복이고 특권인 것이다.

본래 싸가지 없고 얌통머리없는 인간의 본성은 잘 나갈 때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겸손히 자신의 인생을 통찰하기 보다는  자존망대하기 쉬운 것이다. 우울할 때야 비로서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깊이 드려다 보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이켜 보게 되는 것이다.



우울은 좌절이고 저주이고 버려짐이 아니라,

자각의 기회로 내몰림이고, 자각의 기회를 만날 수 있음이고,

참된 나로의 탄생을 위한 산고일 수 있는 것이다.


우울은 축복인 것이다.

우울은 인간 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것이다.

우울하니까 이제 죽을일만 남아있는 상태인 것이 아니라,
나를 제대로 바로 보아 진정한 나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문제를 바로 보아 본질을 깨우치고, 삶에 깊이를 더하여,

단순히 살아있는 맛을 추구하는 자가 아니라,
진정으로 사는 맛을 일구고 누릴 수 있는 자가 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우울할 때 오히려 감사하고 기뻐해야하는 것이다.
우울의 터널 너머에 있을 깨달음의 세계를 보면서 우울을 다스리고 극복하고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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