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진실@#$+0ㅅㄱㄷㅈ충창퓨ㅔ문

정광설 2012.05.17 12:32 조회 수 : 741

사랑이란 인간에게 있어서 그 어느것 보다 소중한 가치이다.
사랑은 그 어느 누구에게든지 아주 중요한 가치이다.
사랑을 하는 것도, 사랑을 받는 것도,
인간이기에 행하고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은총이고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소중한 사랑이란 가치는,
가정이라는 인간으로서 처음 경험하고,
그리고 생을 마치는 삶의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도 함께 하는 사랑의 공동체에서,
처음 경험하고 느끼고 배우고 실천하고,
또한 가장 마지막까지도 그러하고, 죽고난 다음 까지도 가정이란 사랑의 공동체 안에서 유지될 수 있다.
따라서 사랑은 그 어느곳보다, 그 어떤 관계, 어떤 공동체에서보다 가정에서 더욱 아름답게 꽃피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선 과연 어떠한가?
상처 투성이인 가정을 만나기는 쉬워도,
사랑이 넘치는 흠없는 가정을 찾기는 가뭄에 콩나듯 어려운 것이 작금의 실상이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은 말뿐이지,
실제로 이를 이루려고 노력하고 가정에 사랑이 넘치게 하려는 움직임은,
그 어느곳에서도 찾아 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사랑하고, 사랑을 나누고, 사랑을 느끼고 누리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도, 부인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사랑을 나누며 살기는 매우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왜 그럴까?

사랑의 진실이 무엇이기에 실천이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첫번째 :   사랑의 실천이 어려운 것의 바닥에 있는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사랑할 줄 모르고, 어찌하는 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인 줄을 제대로 모른다는 것이다.

              누구나 행복하길 원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말초적 만족, 병적 쾌락과 행복은 동의어가 아니라는 점이다.

              만일 누군가를 괴롭힘으로,
              "누군가가 나로 인해 괴롭던 말든 상관없이 나만 즐겁고 행복하면 된다!"는 식으로 살고,
              그것을 성공이고 행복인 줄로 생각한다면 그것이 바로 병적쾌락이고,
              우리의 영혼을 변질시키고자 계략을 부리는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고 걸려 넘어지는 것이다.

              진정한 행복은 자신의 주위를,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행복하게 해주어 함께 행복을 느끼고 누릴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괴롭힘으로 쾌감을 느끼게 되는 악마성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다.

              처음에는 아이의 버릇을 고치고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성경에도 '채찍은 아이의 영혼을 구하느니라!'라는 말씀도 있잖아?"하면서 매를 대었으나,
              어느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본래의 마음이 변질되어,
              아이를 때리는 그 행위에 마치 중독이라도 된듯,
              언제부터인가는 때리는 행위만을 반복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일이,
              아이를 나서 길러본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있는 경험일 것이다.

              참교육을 위하여 사랑의 매를 처음 들 때는 사랑하는 마음이 흘러 넘쳤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어느새 막대기를 까딱거리며 "누구 뚜드려 팰 놈 없나?"하며,
              마치 먹이를 찾아 킁킁거리며 이리저리 헤치고 다니는 하이에나와 같은 모습이 되어,
              자신의 매를 피해 이리 저리 숨어대는 제자들을 보며 알게 모르게 통쾌함을 맛보았던 경험은,
              소위 열심있는 선생님이라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규율을 잡는다고 떠들던 후배를 혼내고 겁주다,
              삐딱거리며 대항하는 후배를 훈계라는 미명아래 두들겨 패다가,
              어느새 자신의 손에 느껴지는 마찰시의 쾌감에 젖어들어본 경험 또한,
              학창시절 한가닥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대부분 있을 것이다.

              아내에게 손을 댄 남편은 결국 아내를 습관적으로 때리는 남편이 되기 쉽고,
              "사랑해서 때렸다!"는 말 같지도 않은 공허한 소리를 하게 되고,
              같은 원리로 남편을 때리는 아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악마성은 누구에게나 본래 그 마음 속 깊이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아내나 남편에게, 자녀 또는 부하 직원이나 상사에 대한 괴롭힘이나 학대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 의식하거나 인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일상생활 중에 우리의 악마성은 드러나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의 참 행복을 파괴하고 관계를 깨뜨리는 악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것이 현실인 것이다.

              진정한 행복은 나와 내 주위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웃과 주위의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어떤 경우에든지 반드시 내가 일정 부분 양보하고 희생하고,
              고통과 어려움을 감내해야 할 것이 있게 마련이다.

              이때에 불편과 어려움과 고통과 손해보는 듯한 느낌과,
              자신만 괜히 바보되는 듯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 수 있고,
              인간적인 관점에선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사랑을 나누고, 참다운 행복을 느끼고 나누는 행복한 공동체, 사회를 일구어 내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것이 사랑의 진실이고, 참다운 사랑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만드는 원리이다.




두번째 :   가정의 바탕은 부부이다.

              흔히들 부부를 무촌이라 일컫는다.
              이는 피가 통한 바도 없고 갈라서면 남이기 때문에,
              "촌수를 메길 수가 없다!" 해서, 없을 무(無)를 써서 무촌이라한다.
              틀리지 않은 말이고 생각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오른 손과 왼손의 촌수를 메길 수 없듯이,
              너무 가깝고 하나인 일심동체의 관계이기에,
              "촌수로 관계의 정도를 논할 관계가 본래 아니다!"라는 의미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부부는 무촌'이라는 의미가 "일심동체이기에 무촌이다!"일 때,
              이것이 바로 가정의 질서의 근본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렇게 살고 행할 때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정하신 사랑의 질서이다.

              따라서 부부가 서로 몸과 마음과 영혼을 다하여 사랑하며,
              진정으로 일심동체가 되기 위하여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는 모습이,
              자녀에게는 무엇보다 큰 축복이고 산 교육이고 참다운 행복한 삶의 본보기이고,
              노부모에게는 인생을 산 보람을 느끼고 누릴 수 있게 해드리는 무엇보다 큰 감사의 선물이고 보답인 것이다.

              사랑이 부족한 부모를 보고 자라며, 그런 부모에게 양육받은 아이는,
              불행한 부부관계를 이미 어렸을 때 잉태하게 된다.
              한국 말하는 부모의 자식이 자연스레 한국 말을 할 줄 아는 아이로 성장하듯,
              자식은 그 부모를 닮고 배울 수밖에 없다.

              아내를 패는 아비의 자식이 아내를 패는 남편이 되고,
              부도덕한 아비를 원망하며 큰 자식이 아버지 보다 한 술 더 뜨는 난봉꾼이 되는 이치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결혼이 건강하게 이루어지고, 결혼하여 부부라는 사랑의 공동체로 묶임 받은 부부는,
              서로에 대하여 "돕는 배필이 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왜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내 마음에 들지 못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냐?"고,
              상대에게 요구하고 모자람을 원망하고 만족주지 못함을 탓하며,
              하나님이 맺어준 관계를 변질시키고 일그러뜨려 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하기를 상대가 원할까?"를 생각하며,
              상대에게 뭘 원하는 지를 묻고, 생각하고 관심을 갖고 배려하며,
              입 속의 혀같이 상대의 마음에 드는, 상대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상대의 기쁨이 되는 배우자가 되어,
              상대가 나와 부부로 맺어질 수 있었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참사랑을 실천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일구어 가는 노력을 한다.

              이와같은 건강한 부부가 되려면 먼저 건강한 결혼이 이루어져야 한다.

              건강한 결혼의 첫째 조건은 부모로부터 떠나는 것이다.
              이때 부모는 자식의 떠남을 허락함과 동시에,
              자신도 자식이 이제는 부모의 품을 떠나서 제 짝을 찾아 만난다는 사실을 정서적으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식의 홀로서기와 부부됨을 돕는 역할뿐 아니라,
              스스로도 한 몸 같았던 자식을 떠나보내는 아픔을 수용하며,
              심리적 정서적으로 홀로 설 수 있는 인격적 성숙을 이루어야 한다.

              사랑이 집착이 아닌 나눔인 것을 새삼스레 깨달을 수 있다면,
              새로운 사랑을 향해 떠나가는 자녀가 사랑의 배신이 아니라, 나의 사랑의 확장임을 알고,
              더욱 사랑의 지경이 커지고 넓어지며 행복의 나래를 더욱 활짝 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건강하게 '떠남의 수용'이 일어나지 않아,

              결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미의 품을 떠나지 않으려고 막무가내로 몸부림치며 울부짖는,
              어린아이의 떼씀 같은 행동으로 결혼생활을 변질시키고 파괴하며,

              품안의 자식을 빼앗기지 않으려 목숨걸고 울부짖는 가련한 어미처럼,
              내 자식임을 주장하여 자녀의 부부사이에 끼어듦으로(심지어 중간에 끼어 자기도 하며),
              자녀부부의 관계를 변질시키고 결혼생활을 파경에 이르게 만들어 불행에 빠지게 함으로,
             사탄을 기쁘게 하는 도구가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이다.




사랑에 대한 세번째 진실은 :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가족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이신 하나님을 앎이 우리가 참사랑 가운데 거할 수 있게 됨이고,
              이럴때 그 누군가와도 참사랑을 나눌 수 있고, 서로 사랑 안에 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을 앎이고,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자녀임에 대한 증거이고,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은 예수님을 보내심으로 증거되었나니,
              예수를 믿고 구주로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거하게 되고, 내가  하나님 안에 거함이 되고,
              하나님의 빛과 향기를 풍기고, 하나님의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경험하면,
              집착하는 변질된 사랑이 아니라, 웃고 축복하며 떠나 보내고 떠날 수도 있는,
              소유가 아닌 사랑 그 자체를 통하여 행복을 느끼고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기중심적인 자기만을 사랑하기 집착하는 인간의 사랑이 아니라,
              인간의 관계 사이에 십자가에 달려 죽음심으로 참사랑을 보여주신 예수의 사랑이 들어와야,
              참된 사랑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는 것이다.

              그 누구보다 예수를 더 사랑할 수 있어야,
              내가 관계를 맺는 그 모두와 참다운 사랑의 관계를 맺고 나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점점 더 사랑하여 가는 것이 사랑의 원리다!
              점점 더 친밀해져 가는 것이 사랑의 원리이다!
              점점 더 상대의 소중함을 깨달아 가는 것이 사랑의 원리이다!
              점점 시간이 가며 식어가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단지 호기심과 소유욕일 뿐이다!

              사랑은 소유하여 누리는 것이 아니라,
              주안에서 서로 기쁨을 나누며 하나되어 가는 기쁨이고,          
              예수님께 좀 더 가까이 나아가고, 하나님을 좀 더 알아가는 가운데 성숙하여 가는 것이다.


              사람, 삶, 사랑이 같은 어원을 갖고 있는 인간사회에만 있는 개념임을 기억하며,
              서로 사랑하고 참사랑을 나누며 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가는 방향을 잃지 않아야 할 것이다.




*** 지난 5월 1일 새 달을 여는 새벽의 말씀이 너무 좋고 귀해서,
       보다 많은 이들과 이 말씀을 나누고 공유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나의 작은 생각을 더하여 정리해 본다.

       말씀의 의미를 깊히 받아들여,
       이 글을 대하는 모든 이들의 삶에 참사랑이 넘치는,
       행복한 삶이 일구어짐에 씨앗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널리 펼친다. ***


   ㅡ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은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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