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에 있어서 그 삶의 질과 만족도에 대인관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한 두 마디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나, 원만하고 친밀한 대인관계가 우리의 삶에 중요하고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누구도 그 중요성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인간관계를 원만하고 아름답게 가꾸고 일구어 가는 데에는 여러가지 좋은 대인관계의 기술과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방법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인간관계를 아름답고 가치있는 관계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노력과 이 노력을 뒷받침 하는 마음의 자세, 마음가짐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마음가짐도 여러가지 각도에서 고찰해 볼 수 있겠지만, 그 중에서 익숙과 친밀이란 각도에서 생각해 볼까한다.

인간관계를 그 익숙함에만 젖어 필요하고 유익한 것에 대한 기대만을 갖고 대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이들은 대인관계에서 마땅히 행해야 할 내 몫에 대하여 태만하여 관계회훼손을 초래하고,
불편 불행을 자초하면서도, 왜 그런 결과가 도래했는 지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무지하기까지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또 다른 한 편에서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그 친밀함의 중요성을 깨닫고,
더욱 노력하는 자가 느끼고 얻을 수 있는 기쁨과 보람 행복감을 생각하며 대인관계에 성실하고 진실되게 임하며
상대의 익숙함만을 누리는 자세로 인하여 갈등하고 답답함을 느끼고 울화가 치밀고,
때로는 관계개선 내지는 관계유지를 체념하고 포기해버릴까 하는 유혹을 받기도 하고,
"혼자만 열심이 하면 뭐하나?"하는 소외감, 손해보는 느낌을 경험하다가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자의 보람과 기쁨을 생각하며,
자기 파괴적인 반응의 유혹을 물리치고 극복하며 가치있는 길에 매진하는 사람들도 있다.



협조, 상부상조, 상생과 화합, 두레 같은 낱말들이 떠오른다.
웬 뜬금없는 거룩한 낱말 모으기냐 하면, 출근 길에 갑자기 "합력하여 선을 이루라!"는 명령이 떠 올라서다.
그러니 합력하여 선을 이뤄 무엇을 어찌하라는 말씀인가?

이런 지극히 당연하고 누구나 그 당위성과 효과에 대하여 이의를 달리 없는,
어린아이라도 속이 좀 깊은 아이라면 의례히 생각할만 하고, 알아들을 만한 말을,
성경 말씀 가운데 명하심으로, 엄중하게 무게를 두시고, 간절하기까지 강조하신 연유가 어디에 있을까?


두 가지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너 자신의 노력이어야 한다!"와,
"상대를 배려하며 함께 행하는 것이어야 한다!"라는 의미이다.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성공 비결을,
성공적이고 행복한 인간관계를 일구어 갈 수 있는 비결을 확실히 해주시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아름답고 행복하고 보람되고 가치있는,
더불어 사는 기쁨을 맛보며 사는 자가 되라는 축복과,
주 안에서 그런 삶을 이루고 사는 것이 곧 선임을 깨우쳐 주시는 의미도 있을 것 같다.

참으로 고맙고도 감사한 축복의 말씀이 아닐 수 없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근원적 의도하심과 바램이 담겨 있는 말씀인 것이다.


그러니 이제 말씀에 순종하여, 내가 하고 너도 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어제도 오늘도 말씀대로 살려 했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니, 너도 그렇게 계속하면 되리라.
그런데 나야 오늘 사정이 있어 조금 달라졌다지만,
너는 왜 내가 익숙하고, 그럴 것이라고 예상했던 반응을 보이지 않냐?
내 기대와 익숙함을 무시하는 이유가 뭐냐?"

대놓고 주장하는 것 까지는 아닐지 모르나,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초심을 잃고,
몇 번의 반복과 노력으로 익숙해진 편안한 상황을, 관계의 편함을, 관계로 인한 유익함을,
누리기만 하는 습관이 들 수 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말이 통해야 하고,
생각이 통해야 하고,
마음이 통해야 하고,
감정이 통해야 하고,
가치와 윤리와 철학이 통해서,
영이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며 하나로 묶이는 지경에 이르도록 날로 날로 새로워지고 성숙하여 자라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 까지 쉬임없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본래 거룩하지도 경건하지도 아니한 존재이고,
분별의 지혜도 모자라 부족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란 존재가,
이 처럼 귀한 일을 함께 도모할 수 있기 위해선,
그 어떤 요소보다 인간적으로 친밀한 관계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콩 반쪽도 기꺼이 선뜻 나눌 수 있는,
내 몸처럼 상대를 아끼고 대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전제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런데 익숙은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일시적 노력과 관심과 배려로,
말 그대로 익숙해 질 수 있다.
마치 운전 기술에 익숙해 지고, 미끄럼틀 타기에 익숙해 지는 데는 어느 정도 노력하면 누구나 되듯이...
그러나 안전운행은 죽어서 더 이상 운전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오기 전 까진 신경쓰고 조심하고,
자발적으로 내가 노력하고, 상대를 배려하고 상대의 협조를 일으키는, 끝 없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마치 미끄럼틀에서 멋진 폼 잡으며 미끄러지는 요령 배우는 덴 얼마 안 걸려도,
그 미끄러운 길을 되짚어 올라갈 때는 잠시도 긴장과 집중을 놓치면 안되는 것과 같다 할 수 있다.


진료를 하다 보면 연애는 운전교습 기간이고,
결혼은 면허 발급 받는 이벤트이고,
결혼생활은 안전운행은 아랑곳 없이 "이 똥차 왜 내 맘대로 안나가는 거야?"하며,

조건과 상황과 환경을 탓하며,
오십 년 빨리 가는 줄 모르고 오 분 먼저 갈려고 날뛰듯,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 인간관계의 기본자세인 것을 망각한 채,
연애시절의 달콤함에만 익숙해 있고, 상대를 대함에 있어서 자신이 익숙한 방식만 고집하며,
원하는 결과가 있을 수 있도록 상대를 감동시키고 변화시키는 노력은 없이 자신을 만족시키는 결과를 당연히 기대하며,

"우리가 사귄 지가 얼마나 오랬고, 함께 산 지가 몇 십년이 흘렀는데도,
아직도 이렇게 나를 몰라 주고, 내 요구에 부합하지 못하니, 어떻게 더 살라는 말이야!"하면서,
아주 친밀한 인간관계일 때나 느낄 수 있는 보람과 행복감이 없다고,
불평 불만을 토로하고 상대를, 조건을, 상황을 원망하며,
그 어려운 친밀한 인간관계를 너무도 당연히 기대하는 우매함을 접할 때가 자주 있다.



"오랜 친구가 좋다!"함은 서로 알고 지낸 기간이 오래 되었다는 시간의 개념이 중요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동거동락 하며 서로의 생각과 마음이 소통하고 공감하는,
서로에게 드린 정성의 기간이 길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친밀한 인간관계는 마음에서 우러나서 행하는 대접을 상대에게 하며,
끊이지 않고 쉬지 않고 하며,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관심과 배려를 베풀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다.

성경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인간관계 중의 대표적인 것으로,
예수님의 조상이 된 이방 여인 룻과 그의 시어머니 나오미와의 관계를 들 수 있다.

유다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어 먹고 살기가 힘들어지자,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은 두 아들을 데리고 고향을 떠나 모압 지방에 가서 살게 된다.
이곳에서 엘리멜렉과 두 아들은 죽고,
두 아들이 후사가 없이 죽은 바람에 나오미는 두 며느리와 함께 살게 되었다.
나오미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였을 때,
두 며느리 중 룻은 고향에 남아 좋은 남편을 만나 잘 살라는 나오미의 권유를 마다하고,
끝까지 시어머니를 따라 낯 설고 물 설은 타향 땅 유다 베들레헴으로 따라 나서게 된다.

이때 만류하는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룻은,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에 묻힐 것입니다!"라고 고백하며,
끝까지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오게 되었던 것이다.

나오미의 며느리 룻이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라고 고백한데에는,
이방 여인인 룻에게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바칠 수 있는 신실한 믿음이 있었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후손도 없이 과부되어 오갈 데 없는 비참한 처지의 자신을,
아들이 살아있을 때나 조금도 다름 없이,
아니 어쩌면 남편이 살아있을 때 보다도 더 크고 깊은 사랑과 돌봄을 시어머니인 나오미에게서 느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어머님같은 분이라면, 이렇게 나를 사랑하는 분과 함께라면,
내가 모르는 신일지라도 받아들이고, 어딘지 모를 곳일지라도 따라가고,
생면부지의 사람일지라도 어머님이 말씀하신 분이면 말씀대로 순종하고 따르겠습니다.
비록 지금은 내가 이해되고 납득되어 수긍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할지라도,
어머님이 나에게 유익한 길로 인도하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라는 생각이 있었기에 나오미를 따랐을 것이리라.

아는 이 없는 타향에서, 알지도 못하는 보아스의 타작마당에서 그의 발치에 누우라는,
당시의 관습과 율법대로라면 자칫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나오미의 권유를 따를 때의,
룻의 심경이 아마 이랬을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결단과 순종은,
그럼으로 인하여 이방여인으로서 예수님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위대한 결단의 이면 깊은 속 가운데에는,
이와같은 일을 가능케 한 나오미와 룻 사이에,
일반적 고부관계를 초월한 인간적 친밀함이 있었기에 가능하였을 것이다.



생각은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그 마음은 친밀함에 의해 감동받고 하나되는 역사가 일어남이니,

우리가 삶의 노정 가운데,
익숙에 그칠 일과 친밀함을 더욱 공고히 해 나아가야 할 일을,
잘 헤아리고 분별하여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이루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행복한 삶,
하나님 보시기에 미쁘다 하실만한 삶을 일구어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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