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은 능력입니다! : 희브리서 4 : 12ㅡ16@

정광설 2010.06.19 08:35 조회 수 : 814


"저 사람 예수 믿더니, 사람 변했어!"소리를 듣는 것은 참기쁨이다.
반면에, "예수 믿어도 똑같아!"소리를 듣는 것은 회의와 갈등을 일으킨다.
그런데 문제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어도 별볼일 없어!"소리를 듣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왜 안변할까?

그것은 영적 변화를, 신앙적인 영향 받기를 스스로 거부하기 때문이다.
즉, "강팍한 마음"을 가진 자들이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바다속의 물고기가 크리스쳔인 것이다.
물고기가 짠 물속에 살면서도, 그 몸이 짜지않을 수 있는 것은, 그 물고기에게 생명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세상 가운데에서, 세상 풍조 속에 살면서도, 물들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그 영혼에 참 생명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강팍을 이야기 할 때,
많은 사람들은 그 말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말인 것 처럼 여길 수 있다.


그러나 강팍한 경우를 살펴보면,
누구나 그리 쉽게, "나는 강팍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음을 알수 있게 된다.


강팍 1  :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자기 생각의 틀, 생각의 관점을 전혀 바꾸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강팍한 마음의 소유자인 것이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생각의 틀, 생각의 관점을 바꾸고, 바꿔간다는 의미일 수 있는 것이다.
              생각이 안 바뀌면 강팍인 것이다.

강팍 2  :  신앙생활은 하면서도,
              예전의 좋지 않은 생활습관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 강팍한 사람이다.

              신앙생활은 곧 삶의 변화이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생활이 바뀌는 것이다.

강팍 3  :  신앙생활하면서도,
               자기 중심적인 사고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
               관심의 촛점이 항상 자기 자신에게 있는 사람이 강팍한 사람인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셨건만,
               남을 위해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고,
               관심이 남이 아니라 자신에게만 국한되어 있는 경우가 강팍한 마음인 것이다.

               즉, 땅의 약속, 축복에만 관심이 있는 경우이다.
               영적 세계에 대한 관심보다, 현실 세계에 대한 관심만 있는 경우,
               현실적 안락에 의해 영향받고 움직이는 사람이 강팍한 사람인 것이다.


왜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그런 강팍함이 남아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 강팍함을 부수고 변화시킬 수 있을 까?



1.   하나님의 말씀은 혼과 영이 섞여 있는 것을 질서있게 합니다.

      혼(知.情.意)은 인격, 인간의 내면, 즉, 인간의 심리적인 내면의 영역이다.
      심리적인 모습이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것이다.

      영은 하나님의 영역이다.
      즉, 신앙은 심리적인 영역의 이야기가 아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을 열심히는 하지만,
      이것이 영적이 아니고 자기 의일 경우에는,
      박수를 못받고,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그 열정이 식고 떠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사람들이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제아무리 현명하다할 지라도 영적일 수는 없는 것이다.
      영적인 문제를 분별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면,

      1) 자기 의와 하나님의 영광이 구별되지 않는다. 분별하지 못한다. 신앙이 자라지 않는다.
      2) 자기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구별되지 않는다. 구별하지 못한다.
          자기가 싫은 것이면서, 하나님이 싫어하신다고 이야기 한다.
      3) 성경을 아는 것과 체험하는 것이 구별되지 않는다. 구별하지 못한다.
          성경의 말씀이 자기 삶의 이야기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Knowing about God!"과, "Knowing God!"이 구분이 안되는 것이다.
          "Knowing about Jesus!"는 신앙이 아니다.
          "Knowing Jesus!"라야 되는데, 강팍한 사람은 이 구별이 안되는 것이다.

      4) 자기 감정의 움직임과 성령의 일하심을 구분하지 못한다.
      5) 찬양과 노래를 구분하지 못한다.
      
      혼과 영이 혼재되어 있는 한, 영적인 영역으로 들어가는 문을 닫고 살게되기 때문이다.
      진정한 영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2.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내면을 드러내어 회복시키십니다.

      말씀은 혼과 영의 혼동을 정리시킨다.
      말씀이 나의 그 혼돈 상태를 깨닫게 하고, 정리될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말씀이 로고스에서 레마로 다가와야 하는 것이다.


      두번째 여전히 강팍한 이유는,
      자기가 신앙이 좋다는 착각이다. 스스로 속고있는 경우이다.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는다 함은 나의 내면을 각(脚)뜨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 자신의 내면을 각을 뜨는 체험이 없는 것이 강팍함인 것이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에 익숙해 질지는 몰라도 영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말씀 앞에서는 우리의 내면이 벌거벗은듯, 밝게, 환하게, 구석 구석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이 말씀 앞에 우리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강팍함을 벗어내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서 영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즉, 말씀에 의하여 내면이 다스려질 수 있어야 하는 것치다.

      논리적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말을 논리적으로 하는 사람의 영이 어떠한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즉, 그 생각의 출처, 본질이 무엇인지가 중요한데, 이의 구별, 분별이 말씀에 의해 되어지는 것이다.



3.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어떻게 말씀 앞에 나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을까?
      복음 은 우리를 온전히 세우시는 것이다.
      그 이전에, 우리를 부수고 깨뜨리시고, 그 후에 세우시는 것이다.
      말씀 앞에 우리가 먼저 무너지고, 깨지고, 드러나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난 후에야 비로서 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못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다.
      죽으면서도 저금통 부둥켜 안고 있는 자 처럼,
      계속 강팍함에 머물고, 영적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함은, Self defense mechanism때문이다.
      나를 감싸고 지키는 그 방어기제를 깨뜨려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놓치는 날이면 무슨 큰 일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두려움에,
      꼭 움켜잡고 있게 만드는 방어기제를 부셔야 하는 것이다.

      구원의 능력이 없고, 영생이 없는,
      나 자신을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품고, 버리지 않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용서하시는,
      우리의 대제사장을 붙들어야 하는 것이다.

      신앙은 내 스스로 나를 지키는 것, 덧 입는 것, 포장이 아니라,
      주님 앞에 모든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신앙은 자랑의 선포가 아니라, 추함의 고백인 것이다.
      복음은 먼저 깨어지고, 무너지고, 그리고 세워지는 것이다.
      나를 드러낼 때 영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믿고.....
      그때 주님께서 우리를 세우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인 것이다.






























* 정광설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0-06-27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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