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중심으로 사는 것이 바로 진정한 신앙생활인 것은 알겠는데,
그런데 왜 꼭 예수님이 우리의 삶의 중심에 자리잡아야 하는 것인가?


왜냐하면,
예수님은 구원의 창시자, 구원의 개척자이시기 때문이다.
선장이고 완전한 지도자이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천사는 도움을 주는 존재이지 문제를 해결해주는 존재가 아닌것이다.
삶의 본질적인 문제는 도와주는 것으로는 해결될수 없는 것이다.
천사는 도움은 줄 수 있어도, 근본적인 구원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존재는 아닌것이다.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근본적인 해결은 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죄의 문제는 더욱 그런 것이다.
조금 도와준다고 죄를 극복할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죄 가운데 빠져있는 것은 마치 정글 속에서 방향을 잃고 헤메는 것과 같을 수 있다.
또 죄란 높은 담장에 둘러싸인 감옥같은 것이다.
또 죄란 몸부림치면 칠수록 더욱 더 빠져들게 되는 고통의 늪과 같은 것이다.
성경에서의 말씀처럼 양잿물로 씻고 또 씻어도 지울수 없는 것이 죄인 것이다.


조금 도와준다고 죄로부터의 해방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닌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조금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그 죄의 현장에 뛰어 들어와, 늪 가운데로 친히 들어와,
빠져나오는 길을, 극복의 길을 개척함으로써,
우리를 죄로부터 근본적으로 구원해주는 분으로 예수님은 오신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분을 꼭 붙잡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1.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삶의 중심에 들어오심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그 분을 중심에 모시면,
      그분은 그분이 계신 바로 그곳에서부터 개척해 나가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중심에 계실 때 이런 개척의 길에 우리의 동참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따라서 죄로부터 온전히 회복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중심에 그 구원의 개척자를 모셔들어야 하는 것이다.

      저 멀리 계셔서 그분과 나 사이에 틈이 있으면,
      그 부분이 계속 남아있어 죄의 뿌리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서도 기쁨이 없음은,
      예수님의 위치가 중심에 거하셔서 온전히 우리의 마음을 주관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변방, 변두리에 거하시고, 정작 중심에는 자신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잘나가는 듯 하다 가도 죄의 문제가 대두될 때 흔들리고 쓰러지게 되는 것이다.

      열등감, 분노, 상처, 욕망, 자존심이 내 마음의 중심에 있으면,
      예수님의 죄를 극복하시는 개척의 길에 온전히 동참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을 우리 마음의 중심에 모셔야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것이며,
      죄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삶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라 우리 마음의  문을 부수시는 것이 아니라 두드리신다.
      이때에 우리가 마음 문을 열고 그분을 초청하고 맞아들이기를 기대하시는 것이다.



2.   마음의 중심이 낮아져야 예수님을 중심에 모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 덩어리인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등됨을 버리시고, 천국보좌를 버리고 낮아지셔서,낮고 천한  우리에게 오셨다가,
      이 땅에서도 가장 낮은 곳인  침뱉음을 당하는 저주받은 곳인 십자가까지 낮아지셔서,
      그 십자가에 달려돌아가신 예수를 본받아 낮아질 때,
      예수를 우리의 중심에 모실 수 있는 것이다.

      물이 점점 낮은 곳으로 흘러들어가듯,
      우리의 마음을 비우고 예수님처럼 낮아질 때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셔들일 수 있는 것이고,
      예수님이 내 중심에 모셔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빗물이 낮은 곳으로 흘러들듯 우리 마음의 중심이 낮아질 때 주님이 내삶의 중심에 임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의 중심에 계실때 그곳에서 부터 죄로부터의 해방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낮아질 수 없냐 하면 그것을 놓으면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내가 Nothing이면,        주님이 Everything이고,  

      내가 Something이면,    주님도 Something이고,

      내가 Nothing이면,         주님이 Everything이 되시는 원리를 깊이 깨닫는 자가 되어야하는 것이다.

  

3.   주님과 함께 죽을 때 주님을 중심에 모실 수가 있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죽으러 오셨다. 죽기 위해 오신 것이다.
      주님 안에서 살생각에만 머물러 있을 때 죄성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주안에서의 축복된 삶은 주님과의 동행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는 곧 주님과 함께 죽음을 뜻하는 것이다. 주님과 함께 죽어야 하는 것이다.
      
      주님에 의하여 신앙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그 무엇인가가 중심에 있을 때,
      언제든지 그 무엇이 아플 때 죄가운데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 무엇이 명예일 수도, 재물일 수도, 권력일 수도,
      건강일 수도, 자녀나 가족일 수도, 자존심일 수도 있는 것이고,
      이러한 것들에게 본인이 견디고 통제하기 어려운 시험이 닥칠 때,
      근본적인 죄의 문제가 대두되고 신앙이 흔들리게 되는것이다.

     생각도 경험도 지식도 모두 내려놔야 하는 것이다.

      죽여야 할 것이 두가지다.

      하나는 집착이다.

                집착을 벗어버려야하는 것이다.
                돈 상처 가족 자신의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야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에 대한 집착이 주님보다 우선할 때 예수님은 변방에 거하시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자존심이다.

                자존심을 버리지 못할 때이다.
                이 자존심이 남이있는한 사탄의 시험에 떨어지기 쉬운 것이다.
                자존심을 죽이고 내려놓기란 절대로 쉽고 간단하지 않다.

                우리의 죄가 죽지 않으니 주님이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대신 죽은 것이다.
                나를 부인하고 나를 버리라는 말씀의 의미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회개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고, 죄된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고, 그 나를 죽이는 것이다.
                주님을 따르겠다함은 예수와 함께 죽겠다는 의미인 것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를 첫 말씀으로 외치신 것은,
                죄에 물든 나를 예수님과 함께 못밖으라는 말씀인 것이다.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의 죄를 죽이려고 오신것이다.
                예수는 우리를 죽이러 오신 것이다.

                죽기 싫어하는 이들을 도와 그를 믿고 의지하는 이들을 죽을 수 있게 도우시고,
                죄로부터의 해방의 길을 개척해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낮아지고 주님과 함께 죽을 수 있을 때,
                주님이 우리의 중심에 자리잡고 구원의 개척을 이루시는 것이다.
                주님과 함께 낮은 곳으로, 죽음으로 나아갈 때, 주님께서 개척해 놓으신 그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간절히 원할 때,
                성령님이 우리가 낮아지고 죽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주님과 함께 부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주시는 것이다.




























* 정광설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0-06-27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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