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 어쩌면 좋을까요?"

정광설 2008.04.23 00:00 조회 수 : 692


"우리 애 땜에 왔습니다.  오락 못하게 컴퓨터를 치워야 할까요?"하고 중년 아줌마가 오셔서,
진료실에 앉자 마자 뜬금없이 다짜고짜 묻는 것 이었다.


얘기를 나눠본 즉, 큰 아들이 대학을 이제 졸업했는데 취직할 생각은 안하고 컴퓨터 게임만 한다는 것 이었다.  
그동안 전혀 몰랐는데 아마 학교 다닐 때도 그랬던 것 같단다.
"몇살인데요?"하고 물으니, 스물 아홉살 이란다.  


그러면서 우리 애는 병원 오자하면 오지도 않을 뿐 아니라 충격 받을까봐 엄마가 대신 왔다고 하시면서,
어떻게 하면 되는지 방법을 알려 달라는 말씀이었다.


스물 아홉살이 애란다. 나는 무슨 아홉 살 쯤 되는 애 얘긴줄 알았다.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면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엄마는 스물 아홉 된 아들을 진짜 애 취급 한다는 것 이었다.


어린아이가 뭘 잘못하여 엄마가 옆에서 보기 안스러워 절절매며 어떻게 좀 해 줄려고 하는 바로 그런 어머니의,
어린애가 못 미덥고 안스럽고 조심조심하는 마음이, 이 스물 아홉 먹은 '애(?)'에게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 이었다.


애 취급 하면, 애는 안 크고, 애로 머물러 있게 된다.  안 크는게 아니라, 못 크게 된다.  
좀 클려고 하면, "아가, 니가 뭘 안다고, 한다고 하니. 에미가 해 주마.  
널 너무나도 사랑하는 엄마가 항상 니 대신 뭐든지 할 준비를 갖추고,
이렇게 대기하고 있잖니. 뭐가 걱정이니"하면서,  


아들이 시행착오와 그에 따른 고통과 불이익을 경험하며,
누군가의 말처럼, 아픈 만큼 성숙해 질 수 있는 기회를 원천 봉쇄하고,
스물 아홉이나 먹은, '늙은 애'를 싫컷 만들어 놓고 난 후에,
"나이에 걸맞지 않게 제 앞가림도 못하니, 그러니 어떻게 합니까? 나라도 해결해 줘야지요.
그래도 자식이고, 엄마 아닙니까?"하면서, 의사를 찿아온 것 이었다.


속썩이는 들 떨어진 아들 때문에 힘들고 어려운 자신의 문제를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통해 해결하고 중심을 잡아,
아들을 적절하게 엄마로서 도와줄 수  있게 되는 노력을 하기 위해 병원에 온 것이 아니라,
아들 대신, 아들 진료 대신 받으러 온 것 이었다.  숙제 대신 해주듯이.....


아들 진료를, 그 아이는 오지도 않을게 뻔하니까, 대신 진료 받고 답을 얻어다가 먹여줄 심산으로 온 것 이었다.
아들은 엄마의 노력의 결과가 맘에 안들면 집을 한번 들었다 놓으면, 부모가, 특히 엄마가 알아서,
아들 심기 상하지 않게 어떻게든 처리하는 것이 정해진 귀결인 것이다.  
'이 아이'도 오락 하지 말라고만 하면 평소에는 참 착하고 순한 아닌데 난리를 치고 난폭하게 변한다는 것 이었다.


당연한 결과다.  
항상 누군가가 알아서 해주는데 충분히 익숙해 있어왔고, 당연히 그럴것을 기대하며 살아왔는데,
어느날 갑자기 반응이 기대와 다르면, "아  이제부턴 내가 해야 될 차례구나!"하기 보다는,
"왜 오늘은 이 모냥이야?"하고, 화내고, 짜증나는 것이 당연한 반응인 것이다.


어머니가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어머니가 어머니로서의 위치를 찿고, 중심을 잡아,
아들을 대신하는 것이 아닌, 아들을 바로 도울 수 있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나누고,
진료를 마치게 되었다.


아들이 병원에 방문할 것을 권유받고 진료실을 나가다가 말고는 뒤돌아서서,
"그런대요 선생님! 게임기를 치워줘야 할까요? 이것만 가르쳐 주세요."하고  묻는 것 이었다.



진료를 마치고 앉아 있으려니까 비슷했던 경험들이 떠올랐다.
진료실에 먼저 들어온 어머니가 애기가 놀라지 않을까 걱정 된다고, 신경 써 달라고 부탁하고는,
밖을 향해, "아가!"하고 부르니까  입이 뾰루퉁 해서 나보다도 더 큰 고3짜리 아들이 들어오길래,  
내가 놀라서 "얘가 애깁니까?"하고 물으니,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그럼요 엄마한테는 언제까지나 애기 아닌가요?"하던 어머니......


중동에서 불안 발작을 일으켜 응급 후송 되어 온, 나와 밤 늦게까지 면담하고 아침에 다시 회진 갔을 때,  
아내는 침대 밑에서  기어 나오고, 침대 위 환자가 잔 이불 속에선 어머니가 부시시 일어나 앉던,
어느 30대 초반의 큰 회사 중견간부였던 환자가.......


"우리 아들이 엄마를 얼마나 믿는데요!  어제도 식구하고 합방해도 되냐고 물어와서,  
아직은 니 허리 아픈게 들나서 안된다고, 참으라니까, 그런다고 했어요."라면서,
타 도시에 사는 아들 대신 약 달라고 와서는 본인이 와서 상의하고 약  짖는 거라니까,  
내가 해도 상관 없는데 괜히 이상하게 군다고 툴툴대며 돌아가시든 서른 세살 짜리 아들의 엄마가......




자식은 그 나이에 맞는 대접을 하며 키워야 한다.  
나이에 걸맞는 대접은,  나이에 걸맞는 책임과, 시행착오의 아픔도 혼자 감당할 수 있도록,  
안타까워도 그냥 옆에서 대신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지켜 볼 수 있어야 함도 포함되는 개념인 것이다.


너무 좋은 엄마, 너무 완벽한 부모가 되려고,
아이가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사회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는 주지 않고,
아니 저절로 오는 기회도 내가 박탈해 버리고,


'내 아이'로 만,
나의 만족을 위해,
고착시키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신차리고 자신을 돌아봐야 할 것이다.  



















@#$+0ㅅㄱㄷㅈ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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