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보고 그걸 결정 하라구요?"

정광설 2008.04.25 00:23 조회 수 : 668



벌써 한참 전의 일이다.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과 어머니가 방문하였다.
아이가 두통을 심하게 호소 하는데, 도통 원인을 모르겠고,
감기 기운도 아닌것 같고,  혹시나 해서 와봤다는 말씀 이었다.  


엄마와 아이와 한참 실갱이를 하며, 말 잘 안하는 아이를 겨우겨우 구슬려 얘기 들어본 결과,  
증상을 일으키는 스트레스의 전모가 어렴풋이 나마 윤곽을 드러냈다.


아이의 증상은 전형적인 긴장성 두통이었다.
머리가 무겁고, 띵하고, 뭐가 달라붙은듯 멍멍하고 울리고.....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한 지가 얼마 안되는데, 그래도 구역이 달라져서 전학을 하였단다.  
아이는 먼저 동네, 먼저 집을 못잊어 하고, 친구들도 그리워하며 힘들어 하고,
특히 새로 이사한 집에 적응을 못하여 고생하고 있었다.  
특히 아이가 딴 것은 그래도 참을만 한데, 유독 새집은 너무 싫다고 계속 짜증을 부렸단다.  


견디다 못한 부모님이, 아이 학교가 좀 더 가까운 곳으로 이사할 것을 결정하였단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되면 아빠가 출퇴근 길이 멀어지고, 버스 노선도 불편해지는 문제가 대두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아버지가 다 감수 할테니까  니가 정해라!"라고, 아버지가 아이에게 집에 대한 선택권을 주셨단다.  
"니가 잘 보고 결정해서, 다음엔 찡찡 거리지 마라!"가 아버지의 요구조건 이었단다.  


아이를 데리고 엄마가 집 보러 며칠 다니면서, 아이의 두통 증상이 나타났다는 것 이었다.
몇억짜리 집을, 투자가치, 출퇴근의 편의성, 학업의 편의성, 살림 사는 문제들 등등을 고려해서,
이 집이 맘에 드는지, 일단 "니가 결정하면 아빠는 따를테니 나중에 딴 말하면,
그땐 나도 더 이상 못 참는다!"가 아버지의 멧세지였던 것이다.


민주적인 부모라,
아이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고문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가 병이 안나면, 안나는게 이상할 노릇이다.
사안의 성격과 아이의 능력을 감안한, 적절한 경우에,
아이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어야 민주적인 것이고 아이를 존중하는 것이지,  


능력 밖의 사안을,
"니가 그 결과도 책임져, 니가 원한거니까!"한다면,
그것은 민주를 빙자한 학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아이에게 명령하고 따를 것을 요구하고, 그러나 따듯한 설명과 다독거림이 있을 때,
아이의 마음이 오히려 안정되고, 불평보다는 적응을 택하는데 매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격이 충분히 성숙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을 정도의 지혜와 지식을 갖추기 전에,
아이에게 어른스런 결정을 요구하는 것은,  아이에게는 오히려  아주 어려운,
감당하기에 벅찬 스트레스일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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