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은 일단 접수하고 보는 법이다 !

정광설 2008.04.17 23:04 조회 수 : 752



벌써 몇년전의 일이다.  


하루는 신환이 와서 진료실로 들어오는데 두사람 이었다. 모자지간인 것 처럼 보였다.  
아들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진료실에 들어와선, 인사는 고사하고 내 얼굴도 바라보지 않고,
삐딱하게 의자를 반쯤 돌리고 앉는 것 이었다.  


엄마는 보기가 민망스럴 정도로 절절매며 아이 눈치(원장에게 미안해 하는 것이 아닌)를 보고 있었다.
고3 학생 이었다.
아이는 말 붙이기도 어렵게 인상을 있는 대로 쓰면서 엄마만 흘겨보고 있었다.


싸늘한 분위기에,
원장인 나까지도 주눅이 드는 듯한 마음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눈치 챈 엄마가 흘깃 흘깃 아이 눈치 봐 가면서 얘기한 내용은 이런 것 이었다.


아이하고 아버지 사이가 최악에 다달았다.
아이는 아버지를 보면 인사는 커녕 마주치는 것도 피하고,
애 아빠는 애를 보기만 하면 욕을 해 대면서 공부 안한다고 야단만치고,
이따위로 하는 놈 한테 해줄 것이 뭐냐 하면서, 애를 잡아 먹을 듯이 닦달을 한다는 것 이었다.


애가 공부는 곧 잘 해서 전교에서 5등 정도 하는데,
애 아빠는, "그정도 가지고 S대학 어떻게 가냐?
거기 못가면 챙피해서, 내가 어떻게 집안 모임에 갈 수 있겠냐?" 한다는 것 이었다.  
아버지도 친척 여러명도 그 대학 출신이 거의 대부분인 집안이라는 것 이었다.


그제서야 아이는 거보란 듯이 나와 슬쩍 눈을 맞추며,
마치,  "이제 아시겠습니까?"라고 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본인의 속 터지는 문제를 엄마가 의사에게 다 얘기하니,
그제서야 맘이 좀 풀리는지 나를 마주보고 자세를 가다듬는 것 이었다.


"그래 본인이 한번 얘기해 보지. 뭐가 문제인가, 자네 생각에는?"하고 운을 떼었더니,
대뜸 하는 말이, "아버지가 너무 부당해요!"하는 것 이었다.  


자기는 공부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 받는 것이 싫고,
또 대전에서 대학 가면 자신의 성적같으면 4년 장학생은 자신 있는데
아버지는 자꾸 서울로만 가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자기 체면 때문에 아들 힘든 생각은 도무지 하지도 않는다는 말이었다.


"왜 거기 꼭 가야된다고 아빠가 강요 하시는데?"    

"챙피 면하려고요."

"4년 장학생이면 챙피할 정도는 아닌데, 그외에 다른 이유는 없을까?"    

"이담에 취직 잘된다고요."

"왜?"    

"아무래도 대한민국에서는 인맥이 중요한데,
거기 출신들이 한국은 꽉 잡고 있으니, 사회에 나가면 잘 풀릴거라고요."

"취직 잘 되면 어떤데?"    

"잘 먹고 잘 살라고요."

"누가?"    

"저요."

"그럼 S대학 가라고 난리 치시는게, 자네에 대한 저주인가?"    

"........"


"대답해봐. 잘 생각해서.  저주인가 축복인가?"    

"저주는 아니네요!"


그 뒤로 얘기가 좀 풀리면서 자세도 바로 하고,
아버지의 야단이 생각해보니 저주가 아니고,
오히려 아들이 앞으로 잘 먹고 잘 살라는 축복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자못 당황하는 듯, 아버지에 대해 좀 미안한 생각이 드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축복은 비록 내가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지 못할 지라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네.  
신경질 나게 축복 받기 싫다는데 정말 자꾸 축복할거에요 해서야 되겠는가?"하니,


피식 웃으며, "아뇨"하는 것 이었다.  
엄마는 얘기 돌아가는 것이 맘에 드시는지, 아이 모르게, 아이 뒤에 숨어서 싱글거리고 있었다.


"다음에 또 신경질 나게 자꾸 축복하시면 어쩔껀대?" 하니,
웃으면서, "일단 접수 해야죠."하면서 들어올 때 와는 사뭇 다른 표정으로 진료실을 나갔다.


그렇다!


우선 듣기에는 다소 힘들고 벅찰지라도, 그래도 그렇다고 축복을 거부해서는 안될 것이다.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 할 때,
일의 성패와 상관없이 이미 행복한, 그리고 자신감과 자긍심이 충만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의 후학들이,
"편한 것이 좋찮아?"하는 사탄의 음성을 거부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오늘을 진실하게 운용하는 이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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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hdwlswl 참 좋은 글이네요.....우리아이 에게도 보여주어야 겠네요..... 08.08.22  |  시실리 님글 잘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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