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대접 기준의 이중성?@

정광설 2004.12.07 17:26 조회 수 : 1104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과 면담을 하다보면,
참으로 안타깝고 공감이 가면서도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를 갖고 있어,
원인 제거 보다는 증상 완화에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특히 대인관계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갈등의 경우,
생각하기에 따라, 요즘 흔히 쓰는 말로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 질수만 있다면,


이제까지의 갈등이 보람으로 바뀌고, 보람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원망하고, 좌절하고, 비참한 심정으로 부터는,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을 만한 경우가 대부분인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때에 생각해봐야 할 중요한 문제 중 하나가, 나는 상대를 대할 때 어떤 기준을 갖고 있으며,
상대가 나를 대할 때는 그 기준이 달라지지 않느냐 하는 점이다.


쉽게 이야기 하자면, "나는 너를 어린애처럼 유치하고, 저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대하지만,
실제로 너는 나이도 있고 하니, 나를 대할 때는 어른스럽게, 니 나이게 맞게 행동해라!"하는 식으로,
대인관계에 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직장의 상사에 대해 내가 존경할 점을 찾는 노력은 하지않고 또 별로 존경하는 맘도 없이,
형식적인 예의만 겨우 갖춰 대하고 있으면서도,  상사가 혹시라도 나의 평상시의 예측대로,
존경받지 못 할 만한 행동을 했을 때는, 원망하고, 속으로 욕하며, "상사가 돼서 어떻게 그럴수가..."하고,
섭섭해하는 마음을 갖는 경우는 없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얼마전에 30대 후반의 아주머니가 면담을 요청했다.
고민이 있는데 해결될 수 없는 고민이라 더욱 고민스럽다는 것이 첫마디였다.
이미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결론을 내려놓고 병원에 온 것 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사연을 이야기해 보도록 권유하며 자세히 들어보았다.
"10살 정도 나이 많은 언니가 있는데, 나를 너무 못살게 굴고 약을 올리고 괴롭힌다.
그러니 언니가 변하기 전에는 의를 끊을 수도 없고, 내가 끊으려 해도 상대가 안 끊으면 소용이 없는거니,
해결될 수 없는 고민이 아닌가......"


"평소 언니하는게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아서, 내가 동생이지만 항상 돌보고 감싸주고 대신 해결해 주는 편이었다.
그러면 언니는 언니답게 행동하고 동생을 격려하고 감싸주지는 못할 망정, 약올라 하고,
나 때문에 주위에서 좋은 소리 못들었다고 원망하며, 괜히 나를 못살게 군다!"고 얘기 하는 것 이었다.


죽 말씀을 들으며, 한쪽 이야기만 듣는 관계로, 보다 정확한 판단은 어려우나,
일단은 동생이 나이는 어리지만, 생각하는 면이나, 정서적으로,
어른들을 공경하고, 주위를 두루 살피는 능력이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 생활에서 동생이 언니 노릇을 그동안 죽 해온 것이다.
또 그런 일을 할 때는,  나이는 동생이지만, 실제로는 마치 언니가 동생 도와주는 듯이,
못난 사람을 돌봐주는 듯한 마음으로(태도로) 열심히 노력한 것이다.


나는 상대를 못나고, 좀 부족한 사람으로 생각해 왔으면서, 그렇게 대해 왔으면서,
상대가 좀 부족한 행동이나, 이해심없는 행동을 할 때는,
언니가 되서 어떻게그럴 수 있느냐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즉, 기준이 두개인 것이다.
내가 상대를 대하면서 설정한 기준은 50(좀 못난 사람)이고,
그 사람이 나를 대할 때는 80(그래도 언닌데...)은 되야, 기본 아니냐 하는 식인 것이다.
이것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꾸 섭섭하고, 원망스럽고, 한이 맺히고....
소위 대인관계의 악순환이 형성되는 것이다.


내가 상대를 어리다고 생각했다면, 상대가 어리게 행동하는 것을 당연한 반응으로 받아들이고 대처해야 한다.
그래야 된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럴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즉 기대치가 높지 않았다면(내가 못나다고 생각한 그 못난 수준의 기대),
비록 상대하기 힘은 들어도 원망하는 마음은 훨씬 덜 할 것이란 의미이다.


사람의 인격과, 정서적인 성장은 연대순의 나이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사춘기 이후의 성년기에 있어서,
밥 그릇 수의 나이와, 인격적 성숙은 상당히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가끔 40대에 사춘기를 겪는 얘기도 한다.
나이는 40대지만, 인격적 성숙도는 사춘기 소녀나 소년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경우다.
이런 사람을 상대할 때는, 나이게 맞게 행동에 있어서의 예의는 갖춰야 되겠지만,


정서적, 인격적인 면에서는, 사춘기의 청소년을 대하듯 조심하고,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마음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내가 정해놓은 기준이, 곧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나를 먼저 돌아보는 자세를 가질 때,
이제까지 불가능하다고 생각됐던 고민도 풀려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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