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머니! 울어도 돼요! 실컷 우세요!"

정광설 2003.04.18 17:26 조회 수 : 1238


의사의 임무를 정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여러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환자와 직접 대하며 진료해야 하는 임상의사는,
환자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일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임무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때로는 힘들어 도움을 요청하며 찾아온 환자에게,
오히려 좀 더 어려워해야 된다고 말씀을 드려야 될 경우가 가끔 있다.


한달 정도 되었다.
60대 초반의 아주머니가 초죽음이 되어 아들과 함께 진료실에 들어왔다.
한마디로 죽겠다는 것 이었다. 불안하고, 잠도 못 자고, 초조해지고, 머리 아프고,
마음을 편히 먹으려 해도 잘되지 않고,  
"내가 왜 이런지 모르겠다. 특별히 신경 쓴 일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말씀을 나누던 중 별스럽지 않은 일이었다는 듯이, 남편이 얼마 전에 돌아 가셨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초죽음이 되어, "나 좀 빨리 어떻게 해줘!"라고 조르던 면담 초기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부부 금슬이 유명할 정도로 좋았다 한다.
갑자기 돌아가셔서 정신 차릴 틈도 없었지만, 그래도 침착하게 장례도 잘 치르고 정리도 끝냈단다.

"그게 무슨 영향이 있는 거냐, 왜 늙은이가 주책없이 슬픈 맘이 드는지 모르겠다.
애들 보기도 부끄럽고..." (말씀이 이쯤 되니 울먹이며 억지로 참는 모습이다.)

참으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입장인데도, 표시를 안 내려고 애쓰고 있다.
실제 슬프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니 슬프지 않을 재주가 있겠는가?
오히려 억지로 참는 노력 그만큼, 더 힘만 들뿐이다.

정상적으로 돌아가실 것을 알고 대비를 했어도, 그 슬픔을 삭히는 과정이 수개월 이상 걸리는 법이다.
감정의 북받침 없이 가족이 돌아가신 이야기를 할 수 있기에는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서로 철석같이 의지하며 금슬도 좋게 40여 년을 동고동락하던 남편이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슬픔을 참고 내색하지 않으려니 더 힘만 들고 고생만 되는 것이다.



슬픈 일이 있을 땐, 슬퍼야 한다.
화날 일이 있을 땐, 화가 나는 것이 정상이다.
스트레스 받을 일이 있을 땐, 스트레스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다만 그 인격의 성숙도에 따라 슬픔이나, 경악이나, 화를 표현하는 방법이 다를 수는 있을지라도,
그 감정적인 변화 자체를 너무 지나치게 억제 하다보면 그게 또 다른 어려움의 씨앗이 되는 것이다.

어려움이 없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어려울 땐 받아들이고 어려워하며 극복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
어려움을 제대로 극복하는 길이고 방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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