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 나 좀 도와주라! 야단만 치치 말고!"

정광설 2003.04.18 17:20 조회 수 : 1118



며칠전 70세된 남자분이 부인, 딸과 함께 왔다.
진료실을 들어오는 모습부터 상당히 불안해 보였다.
식사도 못하고, 불안하고, 잠도 못자고, 기운도 없고... 여러가지 힘든 것을 죽 이야기 하며,


그 중 제일 힘든 것은 '불안'인데,
특히 지난 1년 동안 안정제를 하루 한 두알씩 먹었는데,
이것을 꼭 먹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불안이 제일 크다고 말하는 것 이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딸이, "우리 아버지는 약이 한 보따리예요.  어딜 가든 들고 다니시고,
한 주먹씩은 드시는 것 같아요!"하며 같이 걱정을 하였다.


진료실에서, 특히 연세가 드신 분들의 경우에 비교적 자주 접할 수 있는 경우이다.
처음에는 적당히 한 두가지 사서 먹다가 또 다른 곳이 다소 불편하면,
바쁜 자녀들에게, 혹은 며느리에게 이야기하여 번거롭게 하는 것 같아 죄스러워 혼자 해결하려다 보니,
이것 저것, 먹는 약의 종류나 양은 늘고, 약 보따리는 자꾸만 커져가는데, 딱히 해결되는 증상은 없고,
젊은 것들이 알아서 좀 움직여주면 좋으련만, 약 보따리 들고 다니는 것 지청구만 하는 것 같고,
점점 약을 떨쳐 버리긴 어렵고, 그러면서 내가 먹고 있는 약에 대한 불안이 겹쳐져,
고생은 고생대로, 약은 약대로 늘게 되는 것이다.


젊은 며느리가 그러지 마시라고 말씀드리면, 선뜻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자칫 "관심은 제대로 안주면서, 이나마도 맘대로 못하게 하냐!"하며,
권위가 손상받는 느낌을 받기가 쉽고, 또 그런 경우를 진료실에서 드물지 않게 접할 수 있는 것이다.


며칠전의 할아버지도, 약 성분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가족들의 협조 방법에 대한 허심탄회한 대화만으로도,
할아버지의 불안, 염려가 많이 감소함을 경험할 수 있었다.


혹시 집안에 연로하신 어른이 계시는 경우에, 약 보따리를 항시 옆에 들고 다닌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무엇인가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의미임을 깨달아,
어른들께서 권위의 손상없이 적절한 도움을 받아들이실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 하는 것이 그분들에 의해 키워진, 이 시대의 젊은 사람들의 중요한 의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약 보따리를 애지중지하는 것이 청승맞은 노인들의 괜한 짓이 아니라,
"나 많이 힘들어! 알아서 나좀 도와주라! 야단만 치지 말고!"의 절규가 담긴 행동임을 알아야할 것이다.














@#$+0ㅅㄱㄷㅈㅊ두


* steelblue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4-03-13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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