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라도 아픈 만큼 성숙해 지는걸까?

정광설 2008.05.22 19:17 조회 수 : 572



수련 시절에 피곤한 몸을 추슬리며,
그래도 가급적 짜증 내지 않고, 환자나 간호사를 대할려고 애쓰고 있을 때,
좀 이상한 환자가 정형외과에 입원해 있었다.


달리 이상한게 아니라 이분은 병동에서 싸움이 난 곳이면 어김없이 나타나서,
문제를 다독거리고 분쟁을 해결하는 '자칭  타칭 해결사' 였다.


통상 정형외과 병동에는 산업재해나 교통사고를 당하여 마음이 편안하지 못한 분들이 많아선지,
환자끼리 또는 의료진과 별것 아닌 일로도 언성이 높아지거나 삐치는 일들이 자주 있었다.


그 이상한 양반은, 싸움 난 곳이면 찿아가서 그렇지 않아도 다쳐서 성질은 나 죽겠는데,
알아주는 이는 없고, 피해의식에 섭섭하고 화가나서 분을 삭히지 못해 힘들어 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싫컷 들어주곤 자신의 발을 들어내 보이면, 상황은 대부분 종료되었다.


이분은 무릎 바로 위부터 두 다리가 없는 분 이었다.
아마 산업현장에서 다쳐서 그렇게 됐다는 것 같았는데, 
그런데도 항상 웃는 얼굴이고 분쟁나면 가서 말리고,
항상 무언가를 흥얼거리며 행복한 얼굴 모습을 하고 다녔고,
그런 그분의 말이라면 웬만하면 환자들도 한수 접고 그분의 말을 따라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병동 전체에서 그분이 제일 심하게 많이 다친 환자였던 것이다.


하루는 밤 늦게, 승강기에 그분과 둘이서만 탈 기회가 있었다.  
조용히 흥얼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니 찬송가 였다.


두 다리는 없어서, 무릎 윗쪽 허벅지만 조금씩 남은 사람이,
덥다고 휠체어 위로 그 두 허벅지를 다 드러내 놓고,
잠자러 가면서 찬송가를 부르고 있는 것 이었다.


"아저씨는 뭐가 좋으셔서 항상 웃는 얼굴이세요?"하고 결례를 무릅쓰고 물어 보았다.
휠체어에 앉아 나를 씩 올려다 보더니 두팔을 들어 보이며, "이 두 팔이 있잖아요."하고는,


퇴원하고 전자회사에 취직하면 남과 다를 바 없이 일할 수 있는 손이 남아있음을 감사하며,
열심히 이 손과  휠체어가 하모니가 잘 이뤄지도록 노력중이라고 하시더니,
하던 찬송가를 다시 흥얼거리면서 병실로 가시는 것 이었다.




40대 초반의 알콜 중독 환자였다.
한쪽 다리를 절단하여 의족을 하고 걸어 다니는 분 이었다.
천천히 걸으면, 언뜻  보아서는 잘 몰라 볼 정도로 의족이 잘 맞는 분 이었다.


술을 안 먹을 수 없는 이유가,
100미터도 뛸 수 없는 병신이기 때문이라는 것 이었다.  
이런 병신이 술이나 먹지 할 일이 뭐가 있겠냐는 것 이었다.


유산은 많이 물려받아, 수 십억이 넘는 재산이 있지만,
뛰지도 못하는 병신에게 그깟 돈이 무슨 소용이냐는 것 이었다.


아내가 갖고 튈까봐,  
돈의 행방은 아무리 술이 취해도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는 것 이었다.
그러면서 불평은, 아무도 믿을 놈이 없다는 것 이었다.


상대가 돈이나 뜯어가려하기 때문에,
자신은 할 수 없이 방어 차원에서 안 믿는다는 것 이었다.  


그러면서,
외로워서 한 잔 안할 수 없다고 하고 있는 것 이었다.


평생의 소원이 문학을 하는 것 이라는 그분은,
비록 다리가 한쪽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다행스럽게 글 쓰는데 방해는 안될 수 있고,
책이나 시집을 낼수 있는 경제력도 있으니, 힘을 내서 한번 멋지게 살아보시라고 얘기하면,


100미터도  뛸 수 없는 병신이, 이깟 돈 좀 있으면 뭐하고 글은 쓰면 뭐하냐면서,
술먹고 취해서 병원 복도에도 큰 대자로 눕기도 하고,
행길에 슬취해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이곤 하였었다.




누구나 다 아픈만큼 성숙하는 것은 아닌가 보다!
아픔을 성숙의 조건으로 받아드릴 수 있는 사람이라야, 아픈만큼 성숙해 지나보다!


삶의 노정에서, 부딪칠 수 밖에 없는 원치 않는 수 많은 사건들을 현명하게 대처하여,
성숙의 조건으로 삼고, 그 성숙을 감사하는 사람이 될수 있기를 빌어본다!


살아가며 아픔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아픈만큼 성숙해 지는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

댓글 0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64 나를 이렇게나 힘들게 괴롭히는 이 '배신감'의 정체는? [13] 정광설 2008.05.23 487
163 탕자의 아버지 ! 정광설 2008.05.22 497
162 "야! 나도 너하고 똑같이 한 표냐? 이게 말이 되냐?" [13] 정광설 2008.05.22 574
» 누구라도 아픈 만큼 성숙해 지는걸까? 정광설 2008.05.22 572
160 "아침에 딸그락 거리지 말고 조용히 먹고 학교 가라! 엄마 잠 깬다." [13] 정광설 2008.05.22 752
159 용돈은 반드시 차등 지급해야 한다?!@ 정광설 2008.05.21 509
158 유산 ! 유언 ! [13] 정광설 2008.05.21 804
157 결혼 이야기(9)... 결혼을 생각할 때 짚어 봐야할 네가지 문제들! 정광설 2008.05.20 589
156 각 즉 행 ( 覺 卽 行 ) ! : 깨달음(覺)은, 이미(卽), 행함(行)인 것을! [13] 정광설 2008.05.20 533
155 차라리 부잣집 개로 태어났더라면 좋았을껄! 정광설 2008.05.20 6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