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

정광설 2013.06.14 12:26 조회 수 : 387

다락방

오늘 새벽은 성공이다. 그녀가 켜놓은 촛불 빛이 하늘에 떠있는 별빛이 반짝이고 가물대듯 보인다. 그녀는 가난치는 않아도 공무원 집 딸로서 당시 형편에 집에 피아노 들여 놓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타고 난 소질과 피아노 연주가로서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포부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집념이 강한 그녀였다. 특히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보다도 더한 분이었다. 딸의 꿈을 이뤄주기 위하여 통금 해제 싸이렌이 울리기 전부터 준비하고 있다가 4시 땡 하면 고 3 짜리 딸을 자전거 뒤에 태우고 신흥동에서 호수돈 여고까지 4키로는 실히 됨직한 거리를 데려다 주곤 하였다. 그리곤 아직 열려있지 않은 교문을 딸 엉덩이 받쳐 타넘게 해주었다. 그녀는 그렇게 새벽 등교해서는 수업 시작하기 전까지 음악실 피아노를 몇 시간 두드리며 피아니스트의 꿈을 일구어 갔다.

그 음악실이, 그 음악실 피아노 위에 켜놓은 촛불 빛이 내 방 위에 있는 조그만 다락방 창을 통해 보이는 것이다. 그녀는 자기 꿈을 펼치기 위해 새벽부터 조심스레 그것도 수위 아저씨 몰래 (음악 선생님과 교목님의 비호 아래) 피아노 연습하느라 저리도 애쓰는 데, 그녀를 좋아하고 “장래 그녀와 평생을 함께 하리라 마음먹고 있는 나는 그냥 잠 속의 꿈만 꾸고 있어서야 된단 말 인가?”라고 반성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도 결심을 하고, 나도 그녀와 같은 시간에 일어나 공부하리라고 그녀에게 선포하고 따르릉 시계밑에 세수대야를 받쳐놓아 더 크게 우리게 공명상자 만들어 놓고 꼭 깨워주시기를 기도하고 잦는데 일어난 것이었다. 들깬 잠 속에서 비실 비실 비틀비틀 다락방 계단을 구렁이 담타고 오르듯 기어 올라가 다락방 창문으로 바라보니 그녀의 음악실에 켜있는 촛불 빛이 가물거리며 눈에 잡히는 것이다. 그녀는 항상 성공이지만 나도 그녀에 걸맞게 성공한 것이다. 기쁘고 보람찬 마음으로 전기스탠드 스위치를 올리며 그녀도 내가 일어난 것을 알아주리라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으로 잠을 쫒고 책상에 다가 앉았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꿈이 이루어지길 기도하며 고3의 시절을 보냈다. 그랬던 것이 세월이 흘러 어느덧 45년 전의 일이 되었다. 지금 그녀는 나의 네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다. 이제 머지않아 할머니 소리 들을 때가 다가오는 중이다. 우리는 작지만 충실하게 각자 어려서 가졌던 꿈의 일부나마 일구어 살아가고 있다.

그 기억 속의 다락방이, 그 아름다운 추억이 깃든 다락방이, 오늘의 우리를 꿈꾸며 새벽잠을 깨우려 비틀거리며 기어 올라가 그녀의 불빛을 보고 안도하던 그곳이 지금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시민공원을 짖기 위한 도시계획으로 인해 포크레인에 의해 무너지며 옛 추억의 장소가 소멸되어 가는 것을 보니 묘한 감상에 젖는다.

포크레인에 의해서는 아닐지라도 포크레인으로 판 땅에 묻히는 나의 주검을 보는 눈들의 감상이 이와 비슷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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