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위해 살자!@

정광설 2009.07.10 12:28 조회 수 : 354



새벽 출근(부지런한 아내를 둔 덕에, 새벽의 달콤한 잠 맛을 포기당한지는 이미 오래전 부터의 일이다.)길의
부동의 정기사 역할을 다 하느라, 부시시한 눈을 부비며 열심히 언덕을 올라가고(차가) 있었다.


언덕길 날맹이를 쓱 넘어가는데,
요즘은 장사하는 집 간판뿐만이 아니라, 병원, 교회, 학교 등 온갖 군데서 위용(?)을 떨치고 있는,
혼자서 밤이 새도락, 선전문구를 열심히 자꾸만 되돌리고 있는, 그 선전판의 글자가 눈에 쑥 들어오는 것 이었다.


교훈  ㅡ  남을 위해 살자 !


나하고는 특별한 인연으로 얽혀있는, 백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 근대 여성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훌륭한 여성인재들을 많이 배출한 여학교였다.


아버님이 30여년이나 근무하셨던 곳이기도 하고,
지금 여든 아홉이 되신 연세에도 그때 이 학교 다니시던 때를 자랑스레 회상하시며,
그 시절 배우신 교훈을 틈날 때 마다, 기회 있을 때 마다,
우리 자식들에게 전수하려 애쓰시는 우리 엄마의 모교이기도 하고,
그리고 이모 다섯 명, 앤드 두 누나, 그리고 아내와 처제에다가,
큰 딸과 막내 딸까지 나온 학교이니 특별한 인연이 있는 학교라 할만하지 않은가?


일찌기 6살 부터 드나들던 학교이고,
교문 들어서며 바로 왼편에 큰 돌 위에 새겨진 그 교훈을 갈 때 마다 보아왔던 터인데,
왜 하필이면 오늘 따라 그 말이 눈에 확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맨날 드나들 때 마다 읽어보기도 하고,
아버지에게 옛날 선교사님들이 어떤 마음으로 그 글을 교훈으로 삼아 돌에 새겨,
모두가 학교를 드나들면서 익히 볼 수 있게 하였는 지에 대하여 설명을 듣기도 했었고,
"참 좋고 귀한 말씀이구나! 그런데 보통 사람에게는 한없이 어렵고, 이룰 수 없는,
이루기 어려운 경지의 말씀이구나!"하는 생각과 더불어,
아마도 나하고는 그리 상관이 없는, 해당이 별로 안되는, 그러나 좋은,
그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그럴려고 노력은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씀 정도로 마음에 담고 지내왔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때 이른 아침에 그 말씀이 내 마음속으로 파고드는 느낌이 들면서,
동시에, "네가 서있는 그 곳이 거룩한 땅이고, 네가 일하는 그곳이 바로 선교지란다!"라는 말씀이 떠오르며,
"그래! 그렇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남을 위해 살기 위해 지금 하는 일을 다 때려치고 당장 나가서 쓰레기 청소하고,
코 닦아 주고, 방 청소 하고, 우물 파주는 것 만이 아니라,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되리라!"라는 사명감을 갖고,
지금 내가 서있는 이곳에서 최선을 다하고, 최고로 맏은 바 책임을 다하는,
진실되고 신실한 삶의 모습을 일구어 가는 것이 곧 남을 위해 사는 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건강하게 관리하고 유지하는 것이 내장이나 팔 다리와 상관없는 일이 아니듯이,
내가 맡은 일이 있는 바로 그곳에서 맡은 바 소임을 충실히 다하는 것이,
진정 모두를 위하는 길이고, 곧 남을 위해 사는 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여유가 있고, 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남을 위해 사는 인생이 되겠다는 결심이 서면,
그것은 그것대로 축복받은 삶일 수 있겠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마음 조리고, "남들은 남을 위해 목숨도 바치는데, 나는 겨우 이게 무엇인가?"하고,
자책과 자괴에 빠지지 말고, 밝은 마음으로 지금하는 일에 전심하며 살아도 되는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산리 전투에 참여하며 독립운동을 한 분들 뿐만 아니라, 열심히 일본인 비위 거슬리지 않으며,
거지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는 옛말처럼, 뿌듯하고 자랑스런 마음으로,
그러나 쥐도 새도 모르게 독립운동 자금 대준 분들도, 목숨 걸고 독립운동 한 것은 매일반이고,


어떻게 생각하면,
오늘날 그러한 분들의 살신성인의 보이지 않는 충혼 덕에 살아남은, 이 싸가지 없는 후손들에게서 조차,
친일파라는 멸시와 함께 모멸당할지도 모르는 그 길을, 말없이 감당하고 묵묵히 걸어간 그분들이야 말로,
진정한 애국자들이고, 독립투사이고, 진짜 남을 위해 산 분들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어제 저녁 모임에서 현직 고교 국어 선생님이, 요즘 학생들이 기미 독립 선언문을 쓴 분이 친일파였다면서,
그 분을 매도하고, 그 분이 쓴 기미 독립 선언문 조차 함부로 평가절하하는 세태를 걱정하며,
일제시대에 이 땅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다 친일파가 아닐 수 없었다고 말해주었다는 말씀에 공감이 가는 것을 느꼈다.


"왜 남을 위해 살 생각도 안먹고, 그냥 그 자리에 안주할 생각만 하냐!"고, 큰, 제법 큰 소리로 떠들면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자신이 마치 남을 위해 큰 일을 한 것 처럼(착각인지 기만인지 잘 모르겠지만)
생각하는 사람들의 외침이 공허하게 들리는 까닭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백년도 더 전에,
이 미지의, 이 미개의 땅에 와서,
그들의 인생 모두를 바쳐, 죽기까지 남을 위해 사는 것의 본을 보여준 그 분들의 뜻을 기리며,


그들이 미개지라 생각하던 이 땅에도 선각자들이 있었고,
선교사들이 모르는 사람을 위해 생명을 던질 수 있었던 것 처럼,


알지 못하는 이웃과 후손을 위하여 생명과 명예를 포기하고,
자신은 자손 만대 친일파라 소리를 듣는 치욕을 겪을 수 도 있음을 생각하면서도,
기꺼이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의 말씀과 상통하는 삶을 사신,
자랑스런 조상들이 있었음을 생각하며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


이런 고마우신 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후손일 수 있기 위해서라도,
오늘을 보람있는 날로 지어가기 위한 노력에 정성을 다할 것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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