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속담은,
우리네 인생의 속 마음을 제대로, 솔직하게 표현한 말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기에 유명 병원, 유명 의사가 깃발을 날리고(?),
남의 나라에 와서 까지 치료받고, 중환자 실이 넘쳐나는 것 아닐까?

그러나 그래서 개가 텃밭에 똥싸고 뒹굴듯,
어떻게든, 어떤 삶의 모습이든, 살아만 있으면 좋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이 산 자의 세상에 그래도 남아있을 수 있어서 낫다!"라는 생각이 가능하기 위해서라면,

보람있는, 인간다운 삶을 일구고,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를 맺고, 소통하며,
행복을 누리는 삶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체의 궁극의 목표는 생명의 유지에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여서 생리적인 모든 현상은 항상성의 유지에 맞춰져 있다.
즉, 생명의 유지, 생존에 촛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면,
생명의 유지, 생존자체가 가장 중요한 가치인 것은 자연세계의 수준이고, 생물의 수준이고,
동물의 수준인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생명체가 다 똑같기만 한 것은 아니니,

인간은,
인간이란 동물의 수준, 생명이 유지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그 살아있음을 딛고 일어서서,
인간으로서의,
자연 현상이 아닌 자유의지에 의해 일구어 지고 펼쳐지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즉, 깨달아 존귀한 자로서의 삶을 회복하고, 일구어 낼 수 있는 존재여야 하는 것이다.



세상 만물은 스스로 자신의 격(格)을 정할 수 없고,
자연의 법에 따른 자연현상일 수밖에 없으나,

인간은 그 자연의 모든 것을 활용하여,
자연의 법에 의해 다스려지는 현상이 아닌,
상황과 현실을, 즉 자신의 인간다운 삶을 창출해 낼 수 있는,
스스로 격(格)을 부여하고 높일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연(짐승)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존재가 사람이란 존재인 것이다.

단, 이렇게 인간이란 동물의 수준에서,
자연의 일부가 아닌 인간이란 존재로 스스로를 인식하고,
그런 인간으로서의 삶을 열어가기 위해선,

자신의 존귀함을,
인간이 자연의 현상들과는 본질적으로, 태생적으로 다른,
신성을 지니고 태어난 존재라는 것에 대한 깨달음과,
그에 따르는 인간이란 존재가 존귀한 자일 수 있기 위해 행하지 않으면 안되는,
마땅히 행할 바를 행하는 것이 수반되어야 한다.

개똥 밭에 굴르고 있으면서, 살아있다는 사실만을 근거로 존귀한 자임을 자처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어색하고 사리에 맞지 않는 허구일 수밖에 없고,
그것을 고집하면 할수록 공허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짐승은 자기인식이란 축복받은 영성이 없는,
그냥 여러가지 자연의 현상 중의 한 종류인,
단지 생명이 있어 움직일 수 있는 자연현상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바위가 바위임을 인식하고, 바위 따위로 머무르기를 거부하지 않고,
새가 새인 것을 비관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세균이 "왜 하필 나는 생겨나도 세균이란 악독한 것으로 생겨나서,
살아있는 것들을 아픔과 죽음으로 몰고가는 악역을 담당할 운명이란 말인가?"하며,
자신의 운명을 탓하고 한탄하지 않고,

그냥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바람에 나뭇 잎이 흔들리듯,
자연의 한 현상으로 있는 것이고,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이성과 자유의지란,
자연세계에서는 찾을 수 없는 특별한 기능과 능력을 본래 가지고 태어난 관계로,

자신이 짐승처럼 단지 존재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즉, 인간이란 동물로서 자연계에 존재하고 있을뿐이라는 사실을,
일부러 영성을 계발하고 발휘하지 않아도 어렴풋이나마 감지하고 인식할 수 있다.

인간다운 인간이고자 하는 깨달음의 아픔은 거부하면서도,
짐승 수준의 자연현상에 머물러 있는 자신의 현실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것이다.



짐승은 스스로 짐승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따라서 짐승인 현실을 불행해 하지 않고,
그냥 자연의 흐름대로 본능에 의해 생존하다 소멸될뿐이지만,

인간은 감춰질 수 없는 본래 태어날 때 이미 부여받은 영성으로 인해,
자신의 짐승스러움을 인식하고, 거부하고, 불행을 느끼게 된다.

그렇기에 생존의 유지를 위해 몸부림 치고,
온갖 정성 다하여 생존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면서도,
온갖 정성을 다하여 짐승수준의 생(生)을 붙잡고 집착하면서,
그럴수 있어서 보람과, 포만과, 행복과 평안을 누리기 보다는,
불안과 불행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본래 짐승이 아니어야 할 존재가,
깨달음을 통해 본래의 존귀함을 회복하려 하기 보다,
격(格)에 맞지 않는 생존의 유지란, 짐승 수준 되기 위한 노력만을 하고 있으니,
비록 편안은 확보했을지라도, 만족과 보람과, 행복과 평안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산 자의 땅에 있음이여!"라는 글을 대하며,

산 자의 땅에서,
나는 과연 살고있는 자인가,
아니면 단지 생존에 급급하는 자인가를 생각해 본다!


"존귀하나 깨닺지 못하는 자는 멸망하는 짐승과 같도다!"라는 말씀을 상기하며,
나는 짐승같이 살며 스스로 멸망으로 미끄러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되돌아 본다!


짐승은 그나마 짐승인 것을 불행해 하지 않는데,
나는 귀한 기회를 외면하고, 스스로 짐승되어,
불행을 쫒아가며, 불행만을 곱씹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돌이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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