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를 하다보면, 많이 힘들어 하며, 도움이 필요해서, "나 좀 도와주세요!"라며 상담을 요청해 오기는 했는데,
막상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내가 하는 말이 상대에 전달되지 않고 튀어나오는 느낌을 주며,
진행이 어렵고, 벽 앞에서 혼자 이야기하고 있는 느낌이 들고, 자꾸 끊기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토 달고, 변명하고, 한 문장을 거의 끝까지 듣는 경우가 없고, 자기 맘에 안드는 이야기는,
의사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말하는 그 의사를 멀건히 그냥 바라보고만 있고,
자기 주장이라기 보다는 자기 변명에 급급하고, 자신이 그때 그럴수 밖에 없었던 이유만 열심히 설명하고,
그런 점을 지적하면 여기까지 힘들게 찾아왔는데도 자신의 주장에 동조 안해 준다고 삐치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반응하다보면 오히려 스스로를 불행의 늪으로 빠지게 만드는 결과가 됩니다!"면서,
불행의 늪에 계속 빠져 들어가지 말라고 이야기하면, 삐지고, 서운해 하고, "왜 나만 뭐라 하세요?"하면서
"진짜 당신이 거기 그 꾸정물 통에 꺼꾸로 쳐박혀 있을만 하군요!"하고 동조해 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고상한 말로 공감이지, 세상에 공감처럼 조심스럽게 반응해야 하는, 대인관계에 있어서의 반응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끔하게 된다.
자칫하면, "의사도 그랬어! 내가 그럴만 하다고!"라거나, "니가 환자래!"라고 하거나, "니가 틀린거래. 의사가 그랬어. 니가 나쁜거라고
그랬다니까!"라거나,
"내 생각이 맞다고 고개 끄덕이면서, 너무 어려우셨겠군요 그랬어. 왜 그랬겠어, 니가 틀렸다는 뜻이지 뭐긴 뭐야!"하면서,
그나마 겨우 유지되던 관계의 마지막 끈 마져 과감히 끊는 데 응원군으로서, 크게 일익을 담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오늘 온 30대 후반의 주부다.
"선생님! 선생님이 시키시는 고대로 했더니 문제가 해결됐어요! 남편 엉덩이 다독거려 줬더니 너무 좋아하고요,
날 보고 사랑한다 소리도 하고요, 맨날 내가 이쁘데요!"
그런데 내가 확실히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어요. 집에서는 선생님이 시키시는 대로하니까 집에서의 문제는
해결이 됐는데, 새롭게 나간 직장에서 또 집에서 그전에 힘들었던 것과 똑같은 갈등이 또 생기네요.
그것으로 보아서는 확실히 내가 문제인것 같아요!"하면서,
의사의 말을 한마디라도 놓칠새라 바짝 다가 앉으며 귀를 기울이는 것 이었다.
기분이 참 좋아지는 진료였다. 정신과 의사로서의 보람을 한 껏 느끼게 해주는 환자분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정신과 의사로서의 만족을 느끼고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자세로 의사에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이미 도움을 확보한 것과 같은 효과가 본인에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문제를 대하는 태도나, 상대의 말에 반응하는 양식이,
비단 정신과 의사와의 면담시에만 그렇게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 대인관계에서도 그와 똑같은 현상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며,
그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면담할 때 처럼, 그러한 것을 지적하고 고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은 없고,
그런 행동 패턴에 따른 부정적인 반응만이 쓰나미처럼, 결국에는 자신을 덮어 씌우게 되는 것이다.
나는,
상대의 말을 듣는 형인지,
아니면 상대의 말을, 그렇게 말하는 의도를 튕겨내며, 내 말만 할려고 애쓰는 형인지,
스스로 헤아려 보는 것은, 보다 발전적인 대인관계를 위해 충분히 가치가 있는 명제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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