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목숨, 산 목숨!

정광설 2009.03.18 17:49 조회 수 : 349



"나는 죽을 수 밖에 없다.
죽어야 벗어날 수 있지, 아니면 어떤 방법이 있어 이 아픔을 가려줄 수 있단 말인가?

우울하고, 외롭고, 슬프고,
의욕은 눈 알갱이 만큼도, 눈꼽 만큼도 없고, 죄책감은 물밀듯이 밀려오는데,
이런 나를 당신이 과연 도와줄 수 있겠냐?"는 눈초리를 보내며,

"다른 정신과에도 다녔지만 아무 도움이 안되서, 누군가와 상의했더니 당신을 소개해 줘서,
다시 한 번 속는 셈 치고 오기는 했지만, 당신이 과연 이렇게 힘든 나를 무슨 수로,
어떻게 도울 수 있겠냐?"는 표정으로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이었다.

이야기가 진행되며 어려워하는 이유가 드러났다.
아니 본인이 그것이 이유라고 나를 설득(?)시키고자 열심히 설명하는 것이었다.



결혼 초부터 남편은 다혈질이라, 조금만 마음에 안들면 냅다 소리지르고,
몽니를 부리는 바람에, 남편이 항상 무섭고 조심스러웠다 한다.  
남편은 아주 일방적으로 자기가 하고싶은 대로 하고 사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자신은 따듯하고, 감싸주는 것을 좋아하는 스타일인데,
남편은 바쁘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잘 때는 등을 돌리고 자기가 일수였고,

자기가 생각이 있을 때면 일방적으로 잠자리하고,
자기 욕구만 일방적으로 풀고 나면 등 돌리고 자곤 했다는 것이다.

내가 외로운 마음이 들고, 안아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무서워서, "또 무슨 핀잔들을까?"하는 생각에, 말도 못 꺼내며 살아온 세월이었다는 것이다.

십 수년을 그렇게 말도 제대로 못하고, 감정 표현은 엄두도 못내고,
상처 잘 받고, 여린 성품의 자신은, 가슴만 끌어 앉고 살아온 세월이었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며, 남편의 하는 일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일이라선지,
그나마 어쩌다가라도 가까이 하던 것 조차 뜸해지고,
언젠가 부터는 거의 없어지다싶이 됐다는 것이다.

나는 평생을 외로움에 시달리며 정을 그리워하며 지내왔고,
그래선지 부부관계 생각도 더 나곤 했지만,
남편이 피곤해 하는 모습을 보면 요구하기도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남편을 귀찮케 안하면서도,
나의 외로움도 달랠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생각났던 것이다.

그것은, 마음은 원래의 자리에 그대로 놔두고, 남편도 편히 놔두고,
나의 외로움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대용품(?)을 찾아 활용하는 것이었다.

여자라서 그런지 가능성을 열어놓으니까, 오래지 않아 대용품을 구할 수 있었다.
몇회에 걸쳐 남편을 귀찮케도, 힘들게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도 그리 만만치 않고,
이것 저것 마음에 걸리는 것도 많고, 찜찜한 생각도 들어서 몇번 그러다 그만두었단다.
그리고는 그때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과도 소원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삼년이 흐른 요즈음에 와서야,
그것이, 그때의 생각이, 그때의 행동이 잘못이었다는 생각이 물밀듯이 밀려오고,

그때의 동료들을 그동안 내가 멀리하다 보니,
그 사람들이 내 얘기를 여기 저기 소문내고 다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힘들기 짝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남편을 보면,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제 나이 좀 먹으니까 기도 좀 꺽였는지 철이 든 것인지,
은퇴한 후로는 전과 다르게 부드럽게도 나오곤 하니까, 더욱 남편보기도 미안하고,
죄책감이 들어서 못견디겠다는 것이었다.

남편에게 미안하다고, 내가 용서받아야 된다고 말하니까,
"무슨 소리야, 내가 용서를 빌어야지!"하면서,
되레 미안해 하는 모습을 보이니 더 죽겠다는 것 이었다.

솔직히 얘기를 해야하는 것인지,
뭘 모르니까 자기도 미안하다고 하면서 나를 위로하고 그러는 것이지,
솔직히 말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고, 과연 용서를 해줄른지도 의문이고,
이렇게 힘드느니 그냥 죽는 수 밖에 없다는 생각만 든다는 것 이었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며, 흙 흙 흐느끼며 겨우겨우 이야기하는 내용이,
구구절절 가슴 속 깊이에서 울려나오는, 한맺친 내용 뿐 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힘든 나를, 누가 과연 도울 수 있고, 치료할 수 있겠는가?
도저히 죽는 길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 아닌가? 그럼, 당신이 이런 나를 고칠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절규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고칠 수 없다는, 고쳐질 가망성이 없다는 결론을,
스스로 미리 내려가지고 오는 경우에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입으로는 나를 어떻게 고칠 수 있겠냐고 말하면서,
의사를 쳐다보는 그 눈에서는, "나 좀 제발 도와주세요!"하는 빛이 철철 흘러 넘치는 그 여인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할지,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지, 난감함을 아니 느낄 수 없었다.

난감함을 느끼면서도, 우선은 너무 서두르지 말자고,
달래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약을 처방하고, 염려하는 마음으로 첫 진료를 마무리 하였다.



그리고 사흘이 흘렀다.
직원이 들고온 챠트에 그 여인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어땠을까?" 궁금한 마음으로 진료실 문을 열고 맞이하는데, 이게 웬말인가?

전혀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것 이었다.  
이름도, 얼굴도, 지난번 진료받은 그녀와 같은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는데,
다른 사람이었다.

밝고, 해맑게 웃는 모습이,
지난번의 그녀는, 죽음의 그림자가 짖게 드리워져 있는 듯한,
거의 반은 죽은 듯한, 죽음의 냄새가 흠씬 배어 있었다면,

오늘의 그녀는 생기가 넘쳐 흐르고 있었고,
얼굴에서는 생명의 빛이 반짝이고 있었고, 살아있는 냄새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어리둥절해 하는 의사의 모습을 보며,
그럴줄 알았다는 듯이, "선생님 놀라셨죠?"하면서 쏟아놓는는 이야기는 이러했다.



자기가 죽을 궁리만 하느라 식구들을 챙기지 않았더니,
애들과 남편이 자기보다 먼저 죽게 생겼더라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안되겠다, 나는 어디갔거니,
남편을 위해서라도 내가 살아야 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생각이 바뀌어, "살아야 겠구나!"하고 마음 먹으니,
그동안 그렇게 어려웠던 마음과 생각들이 거의 없어지다싶히 되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훌륭한 정신과 의사라서,
내가 몇마디 해준 말에 환자가 감동을 받아서 그렇게 엄청난 변화를 보이게 된 것일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망상에 지나지 않는 생각일 것이다.



생각이 죽으니,
죽음의 기운이 짖게 드리운, 죽은 사람이 되더니만,

살아야할 이유를 발견하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생각이 살아나니까 사람이 살아난 것이다.



아직 온전하게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면서,
앞으로는 열심히, 이제까지 못한 만큼, 남편과 아이들에게 정성을 쏟으면서,
내 인생도 아울러 추슬리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며, "도와주세요!"하며 웃는 환자를 보면서,

생각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었다.



생각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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