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어 대가리!

정광설 2003.04.18 17:23 조회 수 : 1996

  면담을 하다보면, 마음을 상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것이 특별한 사건이나 무례에서
비롯되기 보다는, 흔히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일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음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부모 자식 사이의 사안들은 더욱 그런 것 같다.

  아들의 무심함을 서운해하는 아버지, 며느리의 진취적인 현대적 사고방식과 행동에
소외감과 역할에서의 불안을 호소하는 시어머니,

  "알아서 해라!" 하고는, 얼마나 제대로 하는지 불만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만 보고만
계시는 부모님께서, "진정 무얼 원하고 계시나?"하고 전전긍긍해 하는 아들, 며느리들
의 호소를 들을 때 마다,  

  비록 사소하게 느껴지는 작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눈치만 보며 기다릴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털어놓고 이야기 하는 것이, 작은 오해가 쌓이고 쌓이다가 곪아터져서 큰 일
로  불거져 버리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예순이 조금 넘은 아주머니였다.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하나뿐인 아들 키우며, 그 아
들 의지하고 열심히 살았다고 한다. 아들이 똑똑하고 공부도 잘하고 어머님께 효성도
지극해서, 혼자 온갖 어려운 잡일해가며 사는 나날들이, 아들 바라보고 사는 재미에 힘
든 줄 몰랐다 한다.

  아들이 장성해서 30대가 되고 좋은 직업도 갖고 드디어 결혼도 하게 되었는데, 며느
리도 참하고 어른 공경할 줄 아는 사람이라 뿌듯한 마음이었다 한다. 주위 사람들도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혼자 고생하며 아들만 믿고 살더니, 참 잘됐다!"고 칭찬과
격려와 부러움을 보냈다 한다. 직장관계로 비록 아들 내외가 먼 곳에 있어도, 마음으로
는 항상 함께 하는 듯 하여 외로운 줄 몰랐다 한다.

  그러던 어느날 며느리에게서 소포가 하나 왔다. 라면박스였다. 명절 가까이라 무엇을
보냈을까 하는 궁금한 마음에 열어보니, '북어대가리'만 가득 들어있었다는 것이었다.

  "이럴수가..." 망연자실(茫然自失)한 마음에 며칠을 힘들어 하다 찾아왔노라 말씀하
시는 것이었다.

  "자식 키우면 다 이런건가? 어려서 형편이 어려워 먹을 것을 구하기 힘들 때, 그래도
밤새워 공부하는 자식 놈 영양보충 시키느라, 겨우 북어 한 마리 토막내어 국 끓여 갖
고는, 에미는 어두일미(魚頭一味)라 북어대가리가 맛있으니, 타박거리는 살코기는 너
나 먹어라 하고, 일부러 지 놈, 좀 더 먹이려고 한 소리지, 이럴수가..... 며느리도 그렇
지, 지 남편이 뭐랬는 지는 몰라도, 그래도 그렇지 그걸 명절 선물이라고 보냈나...... "


  눈물 반, 말씀 반, 겨우겨우 사연을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푸념도 아니고 원망도 아닌,
지나온 삶에 대한 진한 회의가 느껴졌다.

  아주머니 이야기를 죽 들으며, 아들이 결코 효도를 모르는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느리도 지성이란다.

  아마 어머니가 워낙 강력하게 하신 말씀이 아들의 뇌리에 꽉 밖혀, 북어를 먹을 기회
가 있을 때면, 어려서 어머님이 북어 대가리 맛있게 잡수시던 것 본 생각에, "여보!
당신이 먹고 싶어도 북어 대가리는 어머님이 특별히 좋아하시니, 당신이 좀 참고
어머님을 위해 정성껏 모아서 보내 드립시다"하고 아내를 설득했으리라.


  '효(孝)'란, 시간이 가고, 자녀가 성장하면 저절로 하게되고, 할 수 있는, 세월 가면
주름 생기듯 저절로 가능해 지는 것은 아닌 것이다. 어려서부터 어른을 공경하고, 관심
을 갖고 어른의 마음을 헤아리며,작은 마음을 함께 나눔으로 얻을 수 있는 기쁨을 맛보
고, 이런 마땅히 행할 바람직한 행동을 했을 때의 칭찬과 격려와 축복을 경험하고,
이렇게 행할 수 있도록 교육받고 양육받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의례껏 뭐든지 주는 것으로, 자녀들은 당연히 사랑을 받는 것으로만
경험하며 성장했을 때, 이 자녀들은 커서도 받는 것만을 기대하는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마땅히 행할 바를 어려서 배워야하는 것이다.

  마땅히 행할 바를 아이에게 가르쳐야ㅐ 하는 것이다.

  그래야 나이 먹어서도 이에서 떠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은 주고 받는 것이다.

  어려서부터의 경험이 지극히 중요한 것이다.

  나는 자식을 잘 키운다고 생각하며, 북어 대가리 먹기만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부모님께 나는 열심히 효도한다고 생각하며, 혹 북어 대가리만 드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0ㄱ*#+ㄷㅈ

작성자 : 콩알아빠  at 2008-07-29 18:06 Mod.  Del.
예전에 '우동 한그릇'이란 수필집이 있었는데 '북어 대가리'라는 제목으로 책을 쓰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가슴 뜨끔해가며 글을 읽고 반성하고, 댓글 달고 갑니다...





이헌섭
2008-08-21 16:54 정원장 글 잘 보고 있네.
예전에 병원에 가 보고 얘기만 들어주고 돈 받는 직업을 부러워했는데ㅋㅋㅋ
동기중에 제일 빨리 결혼한것도 또한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2002년 5월에 동창회에 나오고 못보았는데
이제 모임에도 얼굴좀 비치시게.^&^  
      






















* steelblue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4-03-13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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