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가는 엄마!

정광설 2004.11.10 17:50 조회 수 : 2405

군대에 있을 때 일이다.
부대별로 시합이 있어 10km를 완전군장하고 뛸 때였다.
군의관은 응급환자 발생에 대비해서, 제일 뒤에 앰뷸런스를 타고 따라가게 돼 있었다.

목표지점에 거의 다와 가는데, 부대원 전체가 이제 지쳐서 허덕이고,
같이 뛰던 중대장들도 구호소리가 작아지고, 나이든 대대장도 같이 좀 뛰어주다 지친듯 했다.

젊은 마음에 차에서 뛰어 내려, 마지막 2km구간을 구령을 불러주며 함께 뛴 적이 있다.  
끝나고 같이 뛰어줘서 도움이 됐다고 칭찬을 들은 적이 있어,
지금도 군인들 행군하는 것을 보면 그 생각이 나곤한다.



요즘은 입시철이 다가오면서,
그야말로 마라톤의 마의 35km를 돌파 할 때 처럼, 모든 수험생들이 어려움을 느낄 때가 됐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수험생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염려도, 격려도 하고 있다.


그 때  옆에서 응원하고 같이 뛰며, 수험생 보다도 더 고생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고생하며,
정작 알아주는 사람은 별로 없이, 혼자서 속만 태우는 사람들이 이 시대의 어머니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한국의 어머니들의 교육열,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마음과 열정이,
오늘의 한국 사회의 발전과 번영에 결정적인 밑거름이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럴려다 보니 어머니들의 고생은 극히 당연한 것으로 자타가 공인하고 있는 것 같다.



진료실에서 고3 여학생이 힘든 것을 호소하며,
같이 오신 엄마를 막 나무래고 화를 내는 경우를 접할 때가 있었다.
의사 앞에서 엄마는 쩔쩔매며 변명을 한다.


" 이젠 나이가 들어......",  새벽에는 깨워주고 밥 차려주고 그랬는데,
12시 넘어서 집에왔을 때 야식도 제대로 안준다고, 졸고 있다고 애가 야단이라는 것 이었다.
엄마가 고생하는 것은 극히 당연하다는 논리이다.


이런 어머니도 계신가 하면 너무 앞서가서 탈인 어머니도 계시다.
며칠 전 50대 어머니가 재수생 딸과 면담 요청을 했다.


딸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30분만 하면 여기저기 온 몸이 안 아픈데가 없다며 난리니 어떻게 하냐고....
나도 재수 해 봤지만 안 아펐다.  다른 집 애들도 안 아프단다.  
새벽에 깨워줘도 안 일어나고, 학원에서 수학, 영어 수강하래도 안 듣는다고 딸의 문제점을 나열하는 것 이었다.


고개 숙이고 있던 딸은,  "요즘은 암기과목 할 때에요!
우리 엄만 너무 욕심이 많아, 나를 너무 몰아세워요!"하는 것 이었다.


어머니는 이젠 화가난단다.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줬는데,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아프다고 핑계만 대니,
애 얼굴만 봐도 신경질이 난다고 호소하는 것 이었다.
수험지도서를 구해보니, 작년보다 20점은 높아질 전망이라는데,
애는 그것도 모르고 엄마 말을 안듣는다는 얘기였다.


어머니가 너무 앞서 가서,
딸은 끌려가는 느낌을 "싫다!"라는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고 있는 상태였다.
엄마는, "너 잘되라는게 왜 싫으냐!" 하고, 나무래고, 달래고, 사정하다,
이젠 지쳐서 살아온 지난 삶이 다 허무하고, 어디론가 뛰쳐나가고 싶은 심정에 빠져있는 것 이었다.


이렇게 해서 아픔을 사서 겪으며 사는 어머니들이 참 많으신 것 같다.
자식이 좀 맘에 안들면, 특히 성적이 어머니의 기대에 못 미칠 때,
너무 지나치게 마음 상해해서, 오히려 그것이 자녀의 냉정을 흐뜨리고, 본인은 본인대로 힘들고 한 경우다.


내 마음에, 내 기준에 맞아야 되는데, 그렇지 못해서 스트레스 받는 경우이다.
열심히 뛰는 자녀라면, 옆에서 보조를 맞추어 같이 뛰며 격려해 줄 수 있으면 더 말할 나위 없고,
힘들어 같이는 뛸 입장이 아니면, 열심히 박수만 쳐 주어도 큰 힘이 되는 것이다.


어머니로서의 소임도 이정도 선이면 좋을 것 같다.
공부를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삶의 의미가 공부 하나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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